'곱게 늙고 뒤끝 없이 가자'는 물 건너갔다.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엄마에게는 보살펴 주고 싶은 어린 아이고 형제들에게는 코 찔찔이 막내 동생이다. 토끼 같은 손주보다 강아지 같은 조카보다, 팔자 주름이 움푹 파이고, 기미가 쏟아져 칙칙한 마흔 후반의 내가 그들에게 우선순위이자 챙겨주고 싶은 어린 아이다. 80세, 100세가 되더라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곱게 늙지도 뒤끝 없이 가지 못해도 좋다. 그냥 그렇게 그들의 귀염둥이 베이비로 평생 살고 싶다.
부모님께서 이민을 가신 지 벌써 10년이 흘렀다. 태어나서 칠십 년 동안 살던 고국을 떠난다는 것, 부보님께는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딸 셋 중 큰딸과 둘째 딸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막내딸인 나는 홀 시어머니가 계신 장남과 결혼을 하고 세 아이를 낳았다. 그런 막내딸에게 본인들이 짐이 될까 봐, 다 컸지만 타국에서 혼자 사는 둘째 딸이 외로울까 봐, 부모님은 자신보다 자식을 위해 어려운 결심을 하셨다.
2024년 11월 초
월요일 오전, 대부분 회의로 시작한다. 그날도 심각한 사안으로 대표에게 깨지고 있었다. 회의실 분위기는 무거운데 카카오톡 전화가 계속 왔다.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엄마였다. 회의 중이라고 톡을 보냈지만 전화를 계속하셨다. LA는 일요일이라 아빠도 언니도 같이 있을 텐데 무슨 일로 계속 전화를 하신 건지,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신 건지 걱정이 되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나: 엄마, 무슨 일 있어?
엄마: 아니, 다음 주 토요일이 네 생일이잖아.
나: 그래서 전화한 거야?
엄마: 그렇지. 저번에 한국 가서 보니까 너 겨울에 입을 겉옷이 변변치 않은 것 같아서 엄마가 거위털 겉옷 샀어.
나: 아이고. 괜찮은데. 그 돈으로 엄마 필요한 것 사.
엄마: 너 요즘 고3 아들 챙기느라 정신없을 것 같아서 엄마가 쌌어. 택배로 보낼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잘 입어. 엄마가 해줄 수 있을 때 받아.
나: 넵. 택배 받으면 입고 사진 찍어 보낼게요.
엄마: 아 그리고 작년에 엄마 코트 산 거 있는데, 그것도 보냈어. 젊은 사람들 입는 스타일이라 엄마는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아.
나: 그래?
'그래?'라고 대답하면서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엄마가 말한 그 옷은 지난해, 장례식에 입고 갈 겉옷이 없다며 급하게 한인이 운영하는 엄마의 단골 옷가게에서 구입 한 코트다. 그렇다면 확실히 '프롬 코리아' 제품으로 동대문이나 남대문 도매시장을 통해 미국으로 수출된 일명 '보세'의류다. 내가 직접 코트를 보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도매가 약 오만 원에 LA로 수출되어 LA 한인 옷가게에서 백 불에서 이백불 사이로 판매되었을 거라 예상할 수 있다. 이런 경로를 거친 코트는 다시 국제 배송을 거쳐 한국으로 역수출이 되는 거다.
수학은 잘 못하지만 대충 계산을 해보자. 역수출되는 그 코트의 가격은 최소 원가의 5배 이상 (판매가:원가의 4배+ 국제 택배비: 원가 정도+ 우체국 왕복 기름값+ 택배 상자 구입비용)으로 한화 30만 원 내외가 된다. 그 정도 돈이면 국내 아웃렛에서 질 좋은 옷을 살 수 있다. 생각할수록 돈이 아까웠다. 엄마에게 쓸데없는 곳에 돈 쓰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 못했다. 여든이 넘으셨지만 아직 자식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어 행복한 엄마의 들뜬 목소리에 내 머릿속 계산기를 꺼버렸다.
나: 엄마가 고른 옷이면 안 봐도 나한테 딱인데. 생일 덕분에 옷이 두벌이나 생기고 정말 땡잡았네.
엄마: 택배 받으면 연락해라. 그리고 네 건강은 네가 챙겨야 해. 특히 지금은 네가 건강해야 너희 가족도 건강해지는 거니까.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일해라.
나: 걱정 마세요. 운동도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어요. 엄마도 날 추워지니까 감기 조심하세요.
부모님 생신이나 행사가 있을 때, 나는 손쉽게 계좌로 용돈을 송금한다. 하지만 엄마는 종일 쇼핑몰을 돌며 나를 위한 선물을 고르고 택배 사무실에 가서 선물을 붙인다. 나는 매년 엄마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던지고 당연한 듯 선물을 받는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던 일이자 통화였다. 하지만 그날따라 지극히 평범한 엄마의 전화가 유독 특별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말처럼 갱년기 호르몬 변화 때문일까? 아니다. 요즘 대입 준비로 힘들어하는 큰 아이에게 그저 곁에 있는 것 밖에 해줄 것이 없는 나를 보면서, 아주 정말 조금 부모님의 무조건 적이고 무한한 사랑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그 사랑 덕분에 내가 살아갈 수 있었고 지금까지 내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게 되어 감사하다.
내일모레 쉰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생일날 부모님께 선물을 받으면 신나 하는 주제에, 나 정도 나이를 먹었으면으니 연로하신 부모님을 보살펴 드리는 게 당연하다며 부모님의 생각을 무시하고 내 의견을 강요하고 명령하는 내 모습이 우습다. 멀리 계시면 보고 싶고 그립다. 한국에 오시면 더 잘해드리고 함께 여행도 가고 사진도 많이 찍자고 다짐도 한다. 하지만 다짐은 그때뿐, 막상 한국에 오시면 나도 모르게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해댄다. '내년에 오시면 잔소리 싹 뺀 다정한 딸이 되겠노라'고 다시 다짐해본다.
2024년 11월 13일 저녁
퇴근해 집에 오니 식탁 위에 파스텔톤 하늘색 숏패딩과 검정 반코트가 올려져 있었다. 보자마자 엄마가 보낸 생일선물이라는 걸 알았다. 20대나 어울릴 만한 컬러와 디자인의 숏패딩을 보며 '엄마의 눈엔 아직도 내가 어린 스무 살이네.'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인증샷을 찍어 카톡으로 엄마에게 보냈다. 다음날 엄마의 답장에 피도 눈물도 없던 내가 펑펑 울고 말았다.
['누구냐, 넌?' 편 등산 후기]
지난주 '누구냐, 넌?'편에서 큰 아이 수능 시험날, 딸 친구들이 함께 산행을 가겠다고 했다. 정말 가겠나 싶었는데, 반 여자애들 중 2명만 빼고 총 12명이 참석했다. 쌍둥이 딸들까지 포함해 총 14명의 여학생들과 광교산 형제봉 산행을 완료했다. 이번 산행을 통해서 청소년들에게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아 싹 사라졌다. 형제봉 정상에서 찍은 단체 사진을 볼수록 내 마음이 행복해지고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형제봉 산행기는 꼭 기록으로 남겨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