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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 3-②] 이케아로 가는 길 260KM

새살림 차리기 프로젝트 2.

by 자두치킨 Aug 24. 2024

집에서 옆 동네인 용인의 이케아까지는 불과 20분 정도로 가까워서 우리 가족은 종종 이케아로 나들이를 가곤 했다. 원가에 충실한 이케아 아이스크림을 할짝거리며 신나 하는 아이들과 쇼룸을 돌아보는 동안 인테리어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고 가성비도 좋으니 그야말로 일석 삼조였다. 


캐나다 뉴브런즈윅주의 옆동네인 노바스코샤주. 이곳의 주도인 핼리팩스에도 이케아가 있다. 

여기서 260km만 달려가면. 차디찬 마룻바닥에서 지새우던 새벽이 나를 이케아로 이끌고 있었다. 


그렇다. 이 모든 계획은 그날 새벽에 이루어졌다. 먼저, 이케아 온라인으로 주문했던 가구들을 직접 픽업할 대책을 강구했다. 가구들을 모두 실어오려면 우리 차로는 역부족이다. 두 아이를 카시트에 앉혀 동행해야 하니 뒷좌석을 접을 수도 없어 공간 확보는 불가능하다. 이 동네의 캐내디언들이 몰고 다니는 낡은 GMC 트럭이 몹시도 부럽기도 한 새벽이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도로변에서 스치듯 봤던 U Haul 이 불현듯 떠올랐다. U Haul(유홀)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셀프 스토리지 서비스로 큰 짐을 옮기거나 셀프이사를 할 때 주로 이용한다. 

유레카! 

유홀 앱을 다운로드하고 예약 및 결제 정보를 세팅하는 동안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아침이 밝자마자, 비몽사몽 간인 짝꿍에게 오늘의 스케줄을 속사포로 브리핑했다.


"이케아 온라인 배송으로 주문했던 가구들을 방문 픽업하는 것으로 변경하고 오늘 이케아로 출발할 거야. 당장 준비해야 돼. 유홀을 렌트해서 당일치기로 핼리팩스를 다녀오자. 여기서 핼리팩스 이케아까지 3시간 정도 걸려."


으레 짝꿍은 '그러자' 할 것이었으므로 나는 곧바로 온라인 이케아에서 방문 픽업으로 배송정보를 변경하며 말을 이었다.


"온라인으로 유홀 예약을 해 뒀어. 돌아오는 Oneway로. 아이들과 동행해야 하니 우리 차로 핼리팩스를 가서 유홀 트럭을 빌린 후 자기는 트럭을, 나는 아이들과 우리 차를 타고 두대로 멍크턴에 돌아와 차를 반납하자. 그래야 차 한 대의 기름값은 조금 줄일 수 있지. 예약이 확정되면 연락 준대."

그리곤 초조하게 유홀의 연락을 기다렸다. 


몇 시간 뒤 핼리팩스 지점에서 멍크턴 지점으로 반납할 수 있는 차량이 없다며 원하는 스케줄을 충족시켜 줄 인근 지점으로 예약사항이 옮겨졌다는 내용의 문자가 왔다. 

그런데, 그 인근지점이 핼리팩스에서 3시간이란다. 엥? 이곳 멍크턴에서 핼리팩스까지도 3시간인데? 꼴랑 이 허무한 문자를 받기 위해 지금까지 기다렸단 말인가.

허탈함을 느낄 새도 없이 왕복 6시간 여정에 마음이 바빠진 나는 유홀 온라인 예약을 취소하고 가까운 지점을 방문해 정면돌파하기로 했다. 그러나 유홀 직원 역시 당일 Oneway 스케줄은 불가능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빠른 결정이 필요할 때다.

지금은 무엇보다 시간 단축이 최우선이므로 Oneway를 포기하고 차 2대를 왕복하기로 서슴없이 결정했다. 짝꿍은 홀로 트럭을, 나는 아이들을 태워 우리 차로.


이케아 가구의 부피를 유홀 직원에게 대략 알려주었더니 VAN(스타렉스급)이면 충분하다며 차량 내부를 보여준다. VAN이면 트럭보다 운전하기도 수월해 다행이다 싶었다.

VAN을 본 아이들의 설렘도 잠시, 카시트가 없으니 VAN에 탑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는 낙심한 표정으로 아빠를 끌어안으며 작별이라도 하는 듯 아쉬움의 인사를 나눴다. 아빠만 외따로 이동하는 것이 아쉬운 것인지, VAN을 타지 못하는 아쉬움인지는 아이들만이 알 것이다.

짝꿍이 VAN을 운전하는 것도, 캐나다에서의 장거리 이동도 처음이라 나와 짝꿍은 서로 토닥이며 몇 번이나 손을 흔들었다.

짝꿍이 앞서고 내가 그 뒤를 따르기로 한다.

한국에서도 두세 시간 거리는 당일치기로 수도 없이 나다녔던 우리다. 걱정할 것은 없었다.


출발.

아이들은 엄마인 내가 아빠를 놓치기라도 하면 난리를 쳤다. 아빠가 신호를 건너면 '빨리! 빨리!'를 외쳐댔고 아빠가 신호에 멈추면 아빠다! 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걱정할 것은 짝꿍이 아니라 내 귀청이었다.


뉴브런즈윅의 고속도로는 한산하다. 

좌우로 빼곡한 나무들이 드넓은 하늘을 시샘하듯 더욱 짙푸르다. 캐나다 도착 후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면서도 미세먼지 수치가 1~3 사이를 오가는 캐나다 시골마을의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한없이 편안해졌다. 감기에 중이염까지 더부살이하던 두 아이에게 아직까지 한 번도 감기가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하늘’에 고마웠다. 왜인지는 몰라도. 그래서 '하늘님'이라고 하는 건가?

밤이면 너른 하늘을 따뜻하게 덮어주는 노을을 바라보다가 울컥, 제각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변화무쌍한 하늘의 명작에 감동이 밀려와 절로 목이 메는 순간. 내가 이곳에 왜 왔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대지의 품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달린 지 두 시간 남짓, 혼자 VAN을 운전 중인 아빠의 걱정은 잊은 지 오래. 배고픔과 생리현상으로 힘들어할 아이들을 위해 우리는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짝꿍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에 나오는 출구로 진출해 팀홀튼에서 만나기로 한다. 거의 모든 출구에는 팀홀튼이 있다.


생이별 후 재회라도 하듯, 팀홀튼에 내리자마자 아이들이 아빠에게 와락 안긴다. 

간단히 도넛으로 요기를 하고 아메리카노를 한잔씩 좌석 옆에 꽂은 후 한번 더 서로를 독려하며 무사히 종착지에서 재회할 것을 약속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을 더 달리자, 눈에 익은 노란 글씨가 보인다. 멀리서도 보일만큼 거대한 IKEA간판이 '이케아에 온 것을 환영해'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정확히 3시간 20분 만에(휴게시간을 포함해) 이케아에 입성했다. 


이케아 픽업 센터에서 직원에게 온라인 오더 넘버를 보여주자 이미 준비돼 있는 모든 구성품을 내어준다. 짐부터 차곡차곡 VAN에 실은 후 이케아에 온 김에 더 둘러보기로 했다. 레스토랑은 한국만큼 메뉴가 다양하지 않아 대충 끼니를 때우고 필요 물품을 쇼핑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이미 오후 4시 30분. 살림살이를 장만하는 일이다 보니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하고 시계를 보니 클로징 타임인 8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제야 우리는 아직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정확히는, 아이들을 제대로 못 먹였다는 사실). 부랴부랴 근처의 식당을 검색해 봤으나 문을 닫았거나 곧 닫을 예정인 레스토랑들 뿐이었다. 


그나마 다운타운에 있는 초밥집이 10시까지 영업이라 서둘러 출발했는데  예상치 못한 유료도로를 맞닥뜨렸다. 통행료는 $1.25. 차가 2대이니 $2.5이 필요했다. 문제는 현금으로만 결제가 가능하다는 것.  

다행히 차 안에 있던 동전을 모아보니 통과는 가능했는데 집에 돌아갈 때 지불할 현금이 없었다. 톨게이트에 걸려 있는 우리는 회차도 할 수 없어 일단 내달렸다.

밤 9시를 조금 넘겨 초밥집에 도착해 아이들을 챙겨 먹이면서도 머릿속은 현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가 걱정스러웠다. ATM 지급이 몇 시까지 가능할지 모르는데 편하게 밥이 넘어갈 리 없었다. 


초밥을 입안에 대충 욱여넣고 은행을 찾아 나섰다. 짝꿍의 트럭을 바짝 쫓으며 TD뱅크 지점 몇 군데를 돌았으나 모두 닫혀있다. 구글맵에 24시간 Open으로 명시돼 있는 지점도 마찬가지였다. 짝꿍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인적 없는 대로변에 트럭을 정차하더니 우리 차로 와서는 잠깐 기다리라며 혼자서 어디론가 걸어갔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거리에서 짝꿍의 뒷모습이 사라진 곳을 두려움 어린 시선으로 응시했다. 아이들과 나는 한마디 말도 없이 5분을 50분처럼 기다렸다. 돌아오는 짝꿍의 모습을 발견했을 땐 안도의 탄식이 절로 나왔다. 

아는 이 하나 없이 세상에 오롯이 우리 가족뿐이었던 찬란하게 두려웠던 5분. 그 5분 새에 짝꿍이 현금을 마련해 왔다. 편의점 카드깡으로. 

* 은행에 방문하지 않고도 현금을 인출할 수 있도록 거의 모든 스토어에서 카드 결제금액을 현금으로 캐시백해 준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됐다.


짝꿍의 무사귀환을 만끽할 시간이 없었다. 시간은 밤 10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우리도 쉴 틈 없이 3시간을 달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한번 안전운전을 약속하며 차에서 잠들 아이들에게 미리 굿 나이트 인사를 했다.


짝꿍과 나는 온전히 밤의 지배를 받는 캐나다의 고속도로를 홀린 듯 달렸다. 하늘에 있어야 할 '달'이 무시무시한 크기로 정면에서 우리 가족을 비추고 있었다. 이렇게 큰 달은 처음 본다. 이 속도로 달리다가는 저 달이랑 부딪혀 내가 산산조각 날지도 몰랐다.


'가는 동안 제발 동물을 치지 않도록 해 주세요, ' 

'앞서가는 짝꿍이 졸지 않도록 해 주세요, ' 

'우리 가족 모두 안전하게 도착하게 해 주세요, ' 


마주 보는 달과 밤하늘에 간절히 기도한 덕분인지, 우리 가족을 실은 두 대의 차량이 무사히 집 주차장에 안착했다. 밤하늘을 밝히는 별들이 은하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유난히도 밝은 새벽 1시였다. 


침대 매트리스만 먼저 마룻바닥에 옮긴 후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뉘었다. 나머지 가구들은 트럭에 그대로 두고 다음날 정리하기로 한다. 나와 짝꿍은 긴 말 대신 서로를 끌어안고 '고생했어' 단 한마디로 고마움과 무사 안위를 전했다. 더 말할 기운도 없었지만.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한밤 중 캐나다의 고속도로 운전은 실로 위험천만하다고 한다. 불빛을 향해 돌진하는 황소만 한 사슴이자 캐나다의 대명사인 '무스'를 맞닥뜨리게 되면 폐차는 기본이고 사람 목숨이 무스에게 달렸다고 하니, 우리가 보았던 무스 그림의 표지판은 무스를 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무스에 받히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였던 것이다.


그러니 우리 가족을 지켜주었던 것은 그날의 달, 별, 하늘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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