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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 4] 3개월, 여름방학의 끝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끝

by 자두치킨 Sep 13. 2024

내 나름의 교육철학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많이 뛰고, 놀고, 상상하고, 시도하면서, 위험하거나 잘못된 행동 외에는 제약을 두지 않는 방목형이었다. 주변 부모들이 일찌감치 아이들을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5살이면 으레 유치원으로 옮겨 갈 때도 나는 첫째가 7살이 돼 졸업할 때까지 어린이집을 고집했다. 아이가 한국서 다녔던 어린이집의 교육 방침이 나의 놀이교육의 가치관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첫째 딸의 초등학교 입학이 다가올 즈음 고민에 빠졌다.

지금까지 엄마들과의 커뮤니티를 일절 만들지 않았고 학구열이 빚어낸 교육기관들의 온갖 풍문에 귀를 닫았으나 과연 초등학교 입학 후로도 원칙을 고수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학원을 가지 않으면 친구를 사귈 수 없고 아이들 서로를 무한 경쟁 상대로 만드는 대한민국의 교육 생태계에서 과연 내 원칙대로 아이가 커갈 수 있을까?


과거 EBS에서 충격적인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성남시에 소재한 두 개의 초등학교 사이 거리는 몇 백 미터에 불과한데 한 곳은 학급생 수가 초과이고 다른 한 곳은 폐교 위기에 놓여 있다. 그 이유는 후자의 학교가 LH임대주택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다닌다는 이유로 동네 아파트 거주민들이 기피해서란다. 엘사(LH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아이들을 얕잡아 부르는 몹쓸 신조어)의 뜻을 알게 됐을 때에도, 임대아파트와 구별되게 외벽 페인트칠을 해 달라는 주민들을 뉴스에서 접했을 때에도 이만큼 충격적이진 않았다.


작은 땅덩어리, 밀집된 조직 사회에서 어떻게든 옆 사람보다 먼저, 더 높이 올라가려고 고군분투하는 필사적인 경쟁체계는 대한민국의 지리적 한계와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 평소 지론이라, 그 사회에 적응해서 살던가 그럴 수 없다면 물리적으로 나를 빼내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론 끝에 남은 것은 선택과 실행뿐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놀게 하려고 캐나다로 왔다.


알파벳송만 겨우 부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멍크턴에 있는 '뉴커머센터(임시거주 중인 아이들의 교육을 관할하는 기관)'를 찾았다. 피부색은 제각각이었지만 똑같이 빛나는 눈망울을 한 아이들이 새로운 동양인 가족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몇 개의 국기가 진열돼 있었는데 그중에 놀랍게도 태극기가 있다. 전 세계의 하고 많은 국기들 중 태극기가? 다소 놀랍고 의아했는데 태극기를 마주치지 마자 느꼈던 안도감 같은, 정체 모를 뜨거움은 무엇이었을까. 아이러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XXX?"

딸아이의 이름이 호명되자 일가족이 용수철처럼 튕기듯 일어섰다. 아무도 내색하진 않았지만 우리의 발길이 닿는 모든 장소마다 긴장감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졸려도 눈이 감기지 않고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 모르는 하루 일과의 연속이었다.


임시거주가 가능한 비자 서류와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온 예방접종 증명서, 재학증명서, 출생증명서 등 구비서류들을 모두 제출하자 검토를 마친 담당자는 아이가 입학할 학교 정보와 French or English 클래스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천천히 또박또박 설명해 주었다. 단어 하나하나에 수많은 뉴커머를 응대한 관록이 스며 있었다.


"2학년으로 입학하면 되겠어요. 집 주소 근처인 'OO스쿨'이 배정될 거예요. 그전에 간단한 영어평가를 하고 아이의 영어 수준에 맞춰 뉴커머 대상으로 Strong Start라는 과정이 선행됩니다. 영어평가 일정은 메일로 알려드릴게요."


한국에서 3월에 입학해 겨우 한 달 반만인 4월 중순에 휴학하고 캐나다로 왔는데 2학년이라고? 잠깐 어리둥절해 있자 담당자가 좀 더 천천히 쉬운 언어로 부연했다.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간 방학이고 지금 5월이라 아쉽게도 방학 전까지 한 달 간만 다닐 수 있는 학교는 없답니다. 방학 후 9월부터 새 학년이 시작돼요. 영어평가하는 날에 정확히 안내해 드릴게요."


아뿔싸. 생뚱맞은 9월에 새 학년이 시작될 줄은, 방학이 이토록 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왜 하필 9월 직전에 캐나다로 이동하는지 알았을 텐데 연초에 새 학기가 시작될 것을 당연시 생각했던 내 불찰이었다.

하지만 미리 알았더라도 캐나다행 일정에 변동은 없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은 언제든 닥칠 수 있고 최선의 방법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4개월 동안 신나게 놀아보자!'라고 마음을 먹는다.


"부모님을 위한 가이드와 책 한 권을 드릴게요. 이 책은 아이들에게 꼭 읽어주시고요."

받아 든 책의 제목은 'All Are Welcome'으로 제목 그대로 모든 이들을 환영한다는 내용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히잡을 쓴 아이, 아이의 부모가 둘 다 남성인 가족, 휠체어를 탄 아이, 피부색, 눈동자색, 헤어스타일은 물론이고 옷차림도 관습도 문화도 종교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모여 서로 존중하며 공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책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을 내밀지 않아도 다분히 감동스러웠다.

'다양성을 자랑하는 이민자의 나라인 캐나다에 온 이상, 이 사회에 일원이 되기 위해선 네 편견을 깨트려야 해'라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며칠 뒤 영어평가를 하러 뉴커머센터에 재방문했다. 영어평가는 하나 마나였다. 나는 제대로 영어교육을 시킨 적도, 평가를 위해 영어를 벼락치기시킬 마음도 없었기에 그저 첫째 딸아이 특유의 호기로운 대답이면 잇츠 오케이였다.

"왓?????"

어깨를 으쓱하며 '네가 무어라 말하는지 나는 몰라'라는 의미를 단 한 음절에 담아 상황을 종료시키는 딸.

그 당당함과 자신감만 탑재하라고, 정 모르겠으면 한국어로 말하거나 몸짓으로 설명해도 된다는 별 도움 안 되는 잔소리로 파이팅을 전했다.

딸이 아는 단어는 기껏해야 '원투쓰리포~~~ 나인텐'이라는 노래 구절일 뿐일 텐데, 상냥한 선생님은 다행히도 아이가 몇몇 단어를 알고 있다면서 발음도 좋으니 걱정 말라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특히 'purple' 발음이 good 이라며 엄지 척을 한다.

그날 내내 딸은,

'펄뽈' '펄뽈'이라며 선생님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보라색' 의미의 단어를 수없이 떠들어댔다.


딸의 영어가 제로베이스와 다름없다는 것을 불필요하게 확인한 후 4주 간의 캠프가 시작됐다. 당사자인 딸을 제외하고 초긴장 비상대기 3인조는 미션임파서블을 수행하기로 한다.

미션 1. 스쿨버스를 태운 뒤 손을 흔든다.

미션 2. 스쿨버스를 쫓아간다.

미션 3. 학교에서 잘 내리는지 확인한다.

미션 4. 집으로 돌아간다.

미션 5.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로 간다.

미션 6. 스쿨버스를 잘 타는지 확인한다.

미션 7. 스쿨버스 하차 정류장으로 먼저 도착해 기다린다.

미션 8.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딸아이와 감격의 포옹을 한다.

우리 가족은 며칠간 첩보영화를 찍었다.

그럴 거면 스쿨버스는 뭐 하러 탔냐고? 그야 딸이 원해서다.그럴 거면 스쿨버스는 뭐 하러 탔냐고? 그야 딸이 원해서다.

우리의 우려가 무색하게 딸은 진정으로 캠프를 즐겼다.

매일 아침마다 "캠프 가려면 얼른 일어나야지." 라며 엄마 아빠를 깨웠다. 어쩌다 곤히 자는 딸아이를 깨우기 미안해서 "오늘은 캠프 가지 말까?" 하고 물으면 벌떡 일어나 준비하는 딸에게 너무도 감사한 날들이었다.


4주간의 캠프가 종료된 후 중간중간 단기 써머 캠프도 다니면서 여름을 지냈다. 그럼에도 개학까지는 아직 2개월이나 남았다. 이 기나긴 방학 동안 매일 뭘 하며 보내야 한담.  

그러다 지금이야말로 온전히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천금 같은 시간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타고난 살림꾼인 짝꿍이 전적으로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돌봤고 나는 워킹타임이 적은 일자리 덕분에 주중 3일을 종일 쉬기도 했다. 보고 있는데도 보고 싶은 아이들의 얼굴을 쓰다듬고 온 가족이 뒤엉키면서 많이 웃는 시간들로 차곡차곡 채웠다.


'지금 이 시간의 가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 그리고 다신 없을지 몰라.'


놀이, 문화시설이 취약한 캐나다 시골에서 나는 습관적으로 지도앱을 열고 수많은 공원들을 발굴해 매일 거닐었다. 아이들은 나뭇가지와 자갈만 보아도 숨넘어갈 듯 까르르 웃었고 나는 해맑은 웃음에 전염돼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이름만 공원이지 숲에 자갈길을 깔아 둔 것이 전부라 수갈래의 갈림길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 여러 차례. 그럼에도 다음 날이면 또 다른 숲을 찾아 싱그러움을 만끽했다. 덕분에 하루가 다르게 아이들은 까매져갔지만 찌들었던 내 일상은 점차 정화되는 중이었다.

Moncton, NB  'IRISH PARK'Moncton, NB  'IRISH PARK'
Riverview, NB 'Mill Creek Nature Park'Riverview, NB 'Mill Creek Nature Park'
Saint John, NB 'Lily Lake'Saint John, NB 'Lily Lake'
Fredericton, NB 'The Green'Fredericton, NB 'The Green'

바람이 나뭇잎을 간질이는 소리,

호수에 햇빛이 부서지는 소리,

뿌리가 다정하게 흙을 감싸 안는 소리,

도토리가 다람쥐를 먹여 살리는 소리,

오리 가족들이 단잠에 빠져 꿈꾸는 소리,

부드러운 물결이 대서양의 거친 파도가 되려고 행진하는 소리,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는 이 수많은 소리들.

'ALL ARE WELCOME.'  '누구라도 모두 환영해.'라고 품어주는 소리들이 치유의 숲을 이루고,

나는 이 소리를 감상하려고 먼 곳의 공원까지 찾아다녔는지 모른다.

녹슬어버린 내 감각이 아주 천천히 재시동을 거는 것만 같다.


그렇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4개월의 여름을 베짱이마냥 놀면서 우리 가족만의 시간들로 엮어 일개미처럼 비축해 두었다. 길고 긴 방학의 끝은 또 다른 여정의 시작. 언제고 닥칠지 모르는 겨울이 찾아오면 그때마다 이 여름을 꺼내보며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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