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슬픔과 만 개의 피로
야경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다. 멀리 있으니까 안 보여서 그렇지 저 빌딩 안의 불빛이란 따지고 보면 퇴근도 못하고 일하는 과로의 흔적이지 않은가. 여기서 보니까 줄줄이 빨간 게 예뻐 보여서 그렇지 퇴근길 정체된 차량 안에서 겪는 짜증은 또 어떻고. 어떻게 남의 피로를 보고 '예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남의 짜증을 알면서 '멋지다'라고 환호할 수 있을까. 함부로 감탄하기가 미안해졌다.
그런데 얄궂다. 왜 탄성을 내지르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멋진 걸까. 한 발짝 떨어져 보면 그럴듯해 보이는 게 인생의 속성이라 야경도 그런 걸까.
도시의 높은 곳에 오르면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한 애정이 넓어진 시야만큼 웃자란 느낌이었다. 거리의 쓰레기도 욕지거리도 작은 점처럼 아득히 멀리 있었다. 도시의 치부는 생략되어 풍경 속으로 함몰되고 방 안의 작은 전깃불에 불과했던 불빛은 점점이 모여 거대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보기 싫은 꼴은 보이지 않고, 가까이서 볼 땐 몰랐던 부분의 퍼즐이 짜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도시가 자기 안의 사람들에게 건네는 고백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어깨 높이의 담장이 이어지는 골목길을 걸을 때나, 지루하게 앉아 버스를 기다릴 때나, 높이 솟은 마천루 밑에서 사그라져 버릴 것 같은 몸뚱이를 추스르며 걸을 때는 짐작도 할 수 없었던 도시의 또 다른 모습. 지난 대낮에 거리에서 봤던 내 모습은 초라하고 낡아 흐르듯 지나쳐도 좋은 일상의 단면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라고, 실은 이런 모습을 품고 있었다고 고백하는 듯 한 도시의 위용에 반해버렸다.
이 밤의 불빛을 모두 합한 만큼이나 크고 밝은 용기로 빛나던 어떤 이의 고백이 떠오르는 밤. 어둠 속에서 오히려 도드라졌던 누군가의 마음을 기억해내는 밤. 천 개의 슬픔과 만 개의 피로가 모여 단 한순간의 고백을 발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