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의 한 허름한 집에서 녹슨 철문을 열고 지혜와 유진이 걸어 나온다. 조금 열린 철문 안쪽에서는 은은하게 향냄새가 조금 풍겨오는 듯했다. 문을 닫고 향냄새가 더 이상 나지 않으니, 지혜는 괜히 안심한 듯 편해진 표정으로 유진에게 말했다.
“야 너 어떡하냐. 그렇게 핫맨 찾더니 다음 연애는 5년도 넘게 걸리겠다?”
“그러니까. 용하대서 왔더니 무슨 뭐? 35살에 만나서 37살에나 결혼을 해? 그 전엔 남자도 없는 팔자야? 진짜 기분 나빠서, 내가 그 전에 무조건 남자 만날 거야. 2인 숙소로 예약해서, 양기 잔뜩 받아서 올 거야. 두고 봐.”
맘대로 할 거면 거금을 들여 점을 보자고 졸라댄 이유가 궁금했지만, 사소한 건 넘어가기로 했다. 씩씩거리는 유진을 건드렸다간 꽤 피곤해질 것을 직감한 지혜는 유진의 말을 들으며 후 토크를 위한 카페로 향했다.
“넌 좋겠다. 결혼할 남자가 되게 잘난 사람이라잖아. 하긴, 지훈 씨 정도면 괜찮긴 하지? 빨리 결혼해. 결혼 하고 운이 트인다잖아.”
“근데 그 말이 진짜면, 넌 진짜 5년은 연애 못 하는 거 아니야?”
“아니? 핫맨 만나러 갈 거라니까? 내 얘기할 때는 조상님 잠깐 다른 데 가셨을 거야. 아니면 다른 사람이랑 착각했던가.”
지혜가 들은 좋은 말들은 진짜고 유진이 들은 나쁜 말은 틀린 말이라는 결론이었다. 앞뒤가 맞지는 않았지만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유진의 어깨가 조금 가라앉은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듣고 싶은 말을 딱히 듣지 못한 유진에 비해 지혜는 좋은 말만 잔뜩 듣고 왔기 때문이다. 흥분이 가라앉자 이제야 유진은 지혜의 표정을 보고는 말했다.
“근데 넌 왜 좋은 말 듣고 와서도 별로 안 좋아해? 인생이 되게 창창하다잖아. 너한테는 안 좋은 말 하나를 안 하던데.”
“아니 뭐,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고 진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그런데, 좀 진짜 같지 않았어? 막 말투도 봐. ‘이렇게 될 거야’도 아니고 ‘이렇게 된다시네요’ 였잖아. 그 말투 듣고 소름 돋았잖아, 나. 우리 옆에 누가 있었던 거 아니야 진짜?”
유진은 안 좋은 소리를 하던 것은 금세 잊고 다시 신이 나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지혜는 떨떠름하면서도 조용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뭐, 신인지 뭔지 영적인 뭔가가 있었다는 말이잖아?”
“신인지 뭔지는 너무 벌받을 말이지 않아?”
“아무튼, 그 무언가가 옆에서 말을 해주고, 무당은 그 말을 전달해 줬다. 근데 그럼 그 신은 미래가 어떻게 된다는 걸 어떻게 아는 걸까? 영적인 존재가 있는 건 그렇다 치는데 그 존재가 내 미래를 어떻게 알아?”
“음, 뭐.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신이니까?”
지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테이블에 놓여 있던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평소에도 스스로 납득을 해야만 뭐든 이해를 했던 지혜는 30분 내내 듣고 온 자신의 창창한 앞날이 그저 근거 없는 말처럼 느껴졌다. 지혜의 미지근한 반응에 유진은 이번엔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이게 좀 그러면, 사주를 보러 갈래?”
“사주는 뭐가 달라?”
“다르지! 사주는 일종의 통계 같은 거래. 생년 일시를 가지고 그동안 살아온 사람들을 분석해서 만든 거야. 그럼, 오늘 점 본 것보다는 조금 근거가 있는 얘기잖아. 어때? 나 전에 사주 본 데서 연락처도 받았어. 봐봐.”
유진이 연락처와 주소가 적힌 명함을 건넸다. 지혜는 명함을 받아서 잠깐 보고는 손사레 치며 말했다.
“그렇긴 한데, 아유 나는 됐어. 오늘 점 본 거 믿고 살지 뭐. 그것도 꽤 비싸잖아. 그렇지?”
“똑같이 한 5만 원 하겠지?”
“됐어, 그럼. 그 돈으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지혜는 다 마신 커피잔이 올려진 쟁반을 반납하고는, 손에 들려 있던 명함을 괜히 들춰보았다. 잠시 고민하던 지혜는 명함을 가방에 아무렇게나 넣어놓고는 이미 밖으로 나간 유진을 따라 카페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