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1] 이거나 해볼까 1

태영이 이야기

by 자두와두

저희 회사에 지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제한된 인원으로 인해 아쉽게도 합격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귀하의 앞날에 더 좋은 기회가 함께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수도 없이 받아본 문자가 또 하나 더 추가되었다. 간결하고 명백한 말이었음에도 태영은 회사의 채용 사이트에 접속해 다시 한번 결과를 조회했다. 하지만 문자가 잘못 오는 경우는 없었고, 조회 결과는 문자 메시지의 내용과 동일했다.


태영은 핸드폰을 덮고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면접 날, 면접관과 웃으며 대답도 하고, 면접관끼리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대답도 생각보다 잘 나왔고,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마지막에 면접관이 "고생하셨습니다" 대신 "수고하셨어요, 기다려 보세요"라고 했을 때, 태영은 그 말을 필요 이상으로 오래 붙잡고 있었다. 기다려 보세요. 그 말이 뭔가를 의미하는 것 같았지만, 모든 면접자에게 하는 말이었나 보다.


한숨을 내쉰다. 크게 나오지도 않았다. 그냥 조금 길게 내쉬는 숨이었다.




오전 10시가 조금 안 된 시간, 태영은 일어나 커튼을 젖힌다. 창밖으로 이미 해가 제법 올라와 있다. 아파트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는 아무도 없다.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났다는 뜻이었다.


세수를 하고, 방을 쓸었다. 쓸 것도 딱히 없었지만, 밀대를 꺼내 한 바퀴 돌린다. 그리고 싱크대에 쌓인 컵 두 개를 씻고 나서야 헬스 가방을 챙긴다. 헬스장은 집에서 걸어서 8분 거리다. 이 동네로 이사 온 이유 중 하나가 헬스장이 가깝다는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이사의 기준이 될 만한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때 중요하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헬스장에는 평일 오전답게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은퇴한 것 같은 중년 남성 두 명이 런닝머신 위에서 빠르게 걷고 있었고, 프리웨이트 구역에는 태영 또래처럼 보이는 남자가 혼자 덤벨을 들고 있었다. 태영은 그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스트레칭부터 시작한다. 평소보다 조금 오래 풀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한 시간 남짓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냉장고에는 계란이 세 개 남아 있다. 밥을 짓기엔 쌀이 얼마 없었지만, 어차피 혼자 먹을 거라 한 줌만 씻어 넣는다. 계란 두 개를 후라이 해서 간장을 뿌려 먹는다. 앉아서 먹는 동안 핸드폰을 열었다 닫기를 몇 번 반복한다. 딱히 확인할 것도 없었다.

오후가 되면 노트북을 펼친다. 채용 사이트를 돌아다니는 건 늘 하는 일이었다. 즐겨찾기에 가득한 채용 공고 사이트를 하나씩 들어간다. 새로 올라온 공고들을 훑어보는데, 자격 요건을 보면 볼수록 어딘가 한두 가지씩 걸리는 게 있었다. 경력 2년 이상. 관련 자격증 보유자 우대. OO 툴 활용 가능자. 딱히 안 되는 것은 아닌데, 딱히 자신 있게 지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애매한 지점에서 탭을 닫았다 열었다 하다 보면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3시가 되면 가방을 챙겨 학원으로 향했다. 태영이 다니는 학원은 집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였다. 중소형 영어학원으로,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가르치는 곳이었다. 태영이 거기서 맡은 건 주로 중학교 1, 2학년 반이었다. 강사가 됐을 때 영어를 잘해서라기보다는 가르치는 걸 그럭저럭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


수업 전까지는 잡무가 있다. 프린트 뽑고, 출석부 정리하고, 원장이 부탁한 자료를 찾아 정리해 두는 것들이다. 별로 어렵지 않았다. 4시부터 수업이 시작되면 태영은 교실 앞에 서서 애들이랑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시간이 꽤 빠르게 간다. 애들은 시끄러웠지만 나쁘지 않다. 적어도 거기 있는 동안은 다른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됐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는 건 10시이다. 칠판을 지우고, 교재를 정리하고, 원장에게 인사하고 나오면 10시 20분쯤 됐다. 버스에 올라타면 자리는 대부분 비어 있었다. 창에 기대서 밖을 보다 보면 집이 가까워졌다. 씻고,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고 눕는 게 하루의 끝이었다.


딱히 힘든 것도 없었다. 딱히 즐거운 것도 없었다.




"야, 근데 솔직히 그거 나쁘지 않은 거 아니야? 지옥철 만원 버스로 출퇴근할 일도 없고, 애들이랑 있으니까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시급도 꽤 쳐주지 않나?"


준호가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두 사람이 앉은 곳은 동네 뒷골목 구석에 있는 호프집이었다. 안쪽 테이블이라 환기가 잘 안 됐지만, 안주 가격이 다른 데보다 천 원씩 싸서 자주 오는 곳이었다.


"돈은 뭐, 나쁘지는 않아. 사고 치는 애들도 딱히 없고.”


태영이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 준호가 이어서 말했다.


"그럼 뭐가 문제야. 나는 하루 종일 집에서 노트북이나 붙잡고 있는데, 지영이가 너처럼 좀 살라고 하더라. 그런 게 갓생을 사는 거라고 맨날 잔소리해.”

“그게 그거랑 같냐.”


태영이 짧게 받아치며 짧은 한숨을 뱉었다. 그러곤 안주로 나온 먹태를 한 조각 뜯으며 말했다.


"그게 계속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학원도 솔직히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아. 요즘 애들이 많이 빠지고 있거든. 원장도 내색은 안 하는데 맨날 저기압이고. 이럴 때 제일 먼저 잘리는 게 나 같은 알바지. 그리고 설령 안 그렇다 해도, 그게 평생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취업을 해야 하는데, 영 안 되는 거잖아 이게. 오늘도 하나 떨어졌어."

태영이 별다른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준호가 잠시 태영을 바라봤다.

"어디?"

"물류 회사. 면접 분위기 좋아서 기대했는데, 이번에도 안되더라.”

“그래도 면접까지는 잘 가네. 그러다 보면 이제 합격도 하겠지.”

“서류고 면접이고가 뭐가 중요하냐. 결국 떨어진 건데.”


태영이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준호는 할 말을 찾는 것 같았지만, 딱히 나오지 않는 듯 그냥 잔을 들었다.


“형일이처럼 지방에라도 내려가 봐야 하나. 근데 그럴 만큼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근데 뭔가 스펙이 더 필요한 건 아니야? 왜 떨어지는 것 같은데?”

"뭔가 딱 꽂히는 게 없는 거지. 나한테도 그렇고, 보는 사람한테도 그렇고. 대학교 때 뭔가를 열심히 파고들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포트폴리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들 뭔가 있잖아. 한 가지씩. 근데 나는 그냥, 뭐, 평범하게 다닌 거야. 그게 이렇게 되더라고.”


태영이 오징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큰소리로 하소연하는 것도 아니었고, 눈이 빨개지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사실을 늘어놓는 것 같은 말투였다. 그게 준호는 오히려 더 마음에 걸렸다.


“그러고 보니까 나도 막상 취업할 때 되니까 그런 게 있는 것 같긴 하더라. 나도 컴공이라 그나마 프리랜서라는 길도 있었던 건데, 그게 없으면 좀 막막하겠다."

"막막한 것도 아니야 사실. 그냥 좀, 답이 없는 것 같은 느낌. 그게 그건가.”


태영이 말하다 잠깐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열심히 하면 되는 건지, 방향을 바꿔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뭔가를 새로 시작해야 하는 건지. 어느 게 맞는지를 모르겠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뭔가를 섣불리 말했다가 다른 소리가 될 것 같아서였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맥주를 마셨다. 호프집 안은 금요일 저녁답게 조금씩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 누군가 건배를 외쳤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