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agara Falls
선착장을 나온 세 사람은 말수가 적었다. 아직 폭포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로 걷다 보니 어느새 관광지 중심가로 들어서 있었다. 요란한 간판과 가게들이 빽빽하게 늘어선 거리에는 관광객들이 넘쳐났다. 준호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밥 먹자. 배고프다.”
"그러게. 어디 가지?”
“따라와. 내가 또 다 알아놨지.”
세 사람이 들어간 곳은 적당히 두꺼운 샌드위치를 파는 곳이었다.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되는 관광지 물가를 피해 준호가 미리 알아본 곳이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준호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꺼냈다.
"아까 보트에서 형일이 표정 봤어? 우비 입을땐 그렇게 궁시렁대더니.”
"눈도 못 뜨면서 고개 들고 보려고 난리 치던 거?”
"맞아 그거. 근데 또 마지막에 선착장 돌아가면서 제일 오래 쳐다보고 있었잖아.”
형일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태영이 맞은편에서 물컵을 손에 쥐고 창밖을 보며 말했다.
"근데 진짜 잘 왔다. 나이아가라. 오길 잘했어.”
“그렇지?"
"응. 오기 전에는 그냥 폭포 하나 보러 간다고 생각했는데.”
"어. 그게 아니더라.”
음식이 나왔다. 세 사람은 그다지 말없이 먹기 시작했다. 폭포의 여운이 식탁 위에도 잔잔하게 남아 있었다. 한동안 조용히 먹던 형일이 고프로를 꺼내 방금 찍은 영상을 틀었다.
"찍힌 거 좀 봐봐. 어때?”
"어 잘 나왔는데?”
"근데 조금 아쉽다. 실제로는 훨씬 더 멋있는데.”
“그렇지?"
“여긴 실제로 와야 하는 곳이네 진짜.”
형일이 다시 고프로를 가방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준호가 포크를 내려놓고 말했다.
"이제 어떡할래. 밥 먹고.”
"뭘 어떡해. 더 놀아야지. 야경 있잖아.”
"야경이 몇 시였더라.”
"해 지면 시작한대. 8시? 9시? 그때부터 조명 바뀐대.”
"그럼 시간 좀 있네.”
“여기 뒤쪽에 시간 보낼 거 많다고 했어. 가보자.”
이럴 때 가장 믿을만한 건 언제나 준호의 준비성과 정보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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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지답게 메인 거리는 관광객을 위한 오락 시설이 곳곳에 있었다. 아케이드 게임장, 미니 볼링장, 4D 체험관, 그리고 길거리 간식 가게까지. 형일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입구부터 요란한 아케이드 게임장이었다.
"야, 들어가자. 나 저런 데 오래간만이다.”
"나도 오래됐네. 가자.”
두 사람이 앞장서서 들어갔다. 태영도 따라 들어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후의 게임장은 아이들과 커플,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온갖 기계가 쉴 새 없이 효과음을 내며 동전을 삼키고 있었다.
"야 저거 농구 있다. 야 준호 저거 해봐.”
"뭐? 왜 나야.”
"너 농구 잘하잖아. 포인트 많이 먹어.”
"포인트 먹어서 뭐 해.”
"상품 교환하면 되지. 어서.”
형일이 준호를 농구 슈팅 기계 앞으로 밀었다. 얼떨결에 자리에 선 준호가 기계를 들여다보더니 이내 팔을 걷어붙이기 시작했다. 형일은 옆에서 준호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시도, 두 번째 시도, 기계에서 짧은 점수 소리가 울렸다.
"야, 잘하는데?”
"원래 잘하거든?”
"그래 모아봐. 나중에 뭐 교환하게.”
태영은 두 사람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케이드 기계들 사이를 슬슬 돌아다니며 어떤 게 있나 구경했다. 레이싱 게임, 리듬 게임, 낚시 게임. 구석에 있는 클로 머신 앞에서 잠깐 멈췄다가 그냥 지나쳤다. 딱히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둘러보는 게 지금은 충분했다. 저쪽에서 형일이 큰 소리로 웃는 소리가 들렸다. 준호가 뭔가 실수를 한 모양이었다.
"야 그걸 어떻게 놓쳐!”
"팔이 잠깐 꼬였잖아!”
“그러니까 그게 왜 꼬이냐고! 왼손은 거들 뿐. 몰라?”
태영은 소리가 나는 쪽을 보고 피식 웃었다. 두 사람이 농구 기계 앞에서 어깨를 부딪치며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형일이 한 번 해보겠다고 자리를 차지하고는 팔을 벌리며 준비 동작을 취했다. 준호가 옆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봤다.
“보여줄게."
"어디 해봐.”
“봐봐."
형일의 공이 림에 맞고 튕겨 나왔다. 준호가 느릿느릿 말했다.
“봤어."
“방금은 그냥 워밍업이야.”
“그래그래."
태영은 그 모습을 보며 잠깐 멈춰 서 있었다. 딱히 끼고 싶지는 않았다. 저 두 사람 사이에 들어가면 나도 웃고 같이 떠들게 될 텐데, 그게 귀찮다기보다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냥 바라보는 게 좀 편하게 느껴졌다. 두 사람이 저렇게 웃고 있다는 것이, 묘하게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참 후에 형일이 태영을 찾아 두리번거리더니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야 태영! 뭐 하냐 빨리 와봐! 저기 핀볼 있다!”
"어, 가봐도 되겠다.”
태영이 형일 쪽으로 걸어가자, 형일이 기다렸다는 듯 핀볼 기계 앞으로 태영을 끌었다.
"너 핀볼 해봤어?”
"어렸을 때.”
"나도. 근데 요즘은 진짜 없잖아 이거. 한번 해봐.”
태영이 자리에 서서 기계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속도가 빨랐다. 태영이 순식간에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형일과 준호가 옆에서 응원인지 방해인지 모를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야 왼쪽! 왼쪽!”
"아 저거 놓쳤잖아 지금!”
"시끄러워."
태영이 말은 짧게 했지만, 실눈을 뜨며 집중했다. 공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게임이 끝났다. 형일이 점수를 보더니 감탄했다.
"야 꽤 하는데?”
"어렸을 때 많이 했어.”
"한 판 더?”
“오케이.”
세 사람이 차례로 기계 앞에 서며 내기를 시작했다. 누가 제일 점수를 많이 내나. 준호가 중간중간 포인트 카드를 꺼내 점수를 기록하는 척했다. 형일이 자기 차례에서 공을 빠르게 잃어버리자 억울하다며 다시 하겠다고 나섰다. 태영이 그건 규칙에 없다며 막았다. 준호가 심판이라며 끼어들었다. 게임장 안이 세 사람 때문에 조금 더 시끄러워졌다.
어느 순간 태영이 포인트가 쌓인 카드를 들고 기계 앞에 줄을 서 있는 형일과 준호를 보다가, 아까 게임장에 들어오기 전 잠깐 느꼈던 그 감각을 다시 떠올렸다. 딱히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각이었다. 두 사람이 저렇게 신나 있는데, 나는 저기서 조금 빠져서 바라보고 싶었다는 것. 이게 피곤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인지는 잘 몰랐다. 그냥 그랬다는 것만 알았다.
"태영, 너도 빨리 와봐! 저기 링 던지기도 있어!”
형일이 저쪽에서 소리쳤다. 태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볍게 대답했다.
“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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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기 시작하자 세 사람은 다시 폭포 쪽으로 걸었다. 하늘이 주황색으로 번지고, 공기가 한층 서늘해진다. 폭포가 보이는 전망대에는 어느새 야경을 보러 온 사람으로 붐비기 시작한다. 밤이 되자 폭포에는 자연광이 아닌 조명이 쏟아져 그 색을 바꾼다. 처음에는 하얀 조명이었다가 이내 파란색, 초록색으로 바뀌며 폭포가 조금씩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낮에는 쏟아지는 물의 양에 압도되었다면, 지금은 색깔이 바뀔 때마다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되는 것 같았다. 세 사람은 난간에 기대 나란히 섰다.
"이게 또 다르네.”
"그렇지? 낮에 본 거랑 완전히 다르다.”
"오기 잘했다, 진짜."
형일이 고프로를 꺼내 조명 바뀌는 장면을 찍기 시작했다. 준호도 핸드폰을 들었다. 태영은 그냥 두 손을 난간에 올린 채 폭포를 바라봤다. 조명이 보라색으로 바뀌었다. 물보라가 그 색을 받다가 이내 희게 흩어졌다. 형일이 준호와 무슨 조명이 제일 예쁜지 말다툼을 시작했다. 준호는 파란색이라 했고 형일은 보라색이라 했다. 서로 자기가 맞다고 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태영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폭포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폭포는 낮에도, 지금도, 똑같이 떨어지고 있었다. 조명이 바뀌어도 물은 그냥 쏟아지고 있었다. 그 변함없음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딱히 왜 그런지는 몰랐다. 그냥 그랬다. 조명이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야 태영, 이건 어때? 빨간색.”
"좋네."
태영이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폭포를 바라봤다. 준호가 슬쩍 태영을 봤다가 시선을 돌렸다. 형일은 이미 다음 조명을 기다리며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물은 계속 쏟아졌다. 조명은 계속 바뀌었다.
태영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