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0] 가장 많이 한 말 1

Niagara Falls

by 자두와두

“저기 있다! 뛰어!”


준호의 다급한 외침에 형일과 태영이 뒤따라 뛰기 시작했다. 커다란 캐리어를 아예 끌어안고 전력 질주하는 세 사람의 모습은, 도움을 주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 정도로 간절해 보였다. 이 와중에 형일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탑승장이 왜 이렇게 숨어 있어!”

“말할 힘 있으면 뛰어!”


준호는 숨이 차서 대답도 못 하고 달리기만 했다. 이런 간절함이 통했는지, 버스 문을 닫으며 운전석에 올라탄 기사님이 세 사람을 보고는 문을 다시 열어두었다. 이른 아침의 질주는 버스 자리에 앉아서야 겨우 끝이 났다.


"허억... 나 폐가 터질 것 같아. 숨이 안 쉬어져.”


형일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옆자리에 앉은 준호가 형일을 노려보며 말했다.


“야, 정류장 어딘지 안다며? 시간 넉넉하다고 했어, 안 했어?”

“넉넉할 줄 알았지. 탑승장 찾는 게 10분이나 걸릴 줄 알았냐.”

“알았어야지, 이 자식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구글맵에는 그냥 정류장만 나와 있었다고!”


형일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역까지 잘 도착하면 버스가 바로 있을 줄 알았던 형일은 넉넉하게 출발 10분 전 도착이라는 계획을 세웠으나, 그 10분은 Union Station 전체를 누비며 버스를 찾는 데 사용했다. 조금이라도 덜 뛰었다면 버스를 타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찔해진 준호는 다시 한번 형일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미리 확인을 하라고 했잖아. 어제 내가 뭐라고 했어?"

“확인했... 허억, 이게 이렇게 숨어있는 건 어떻게 확인하는데.”

“블로그 후기 보면 어떻게 찾는지 나온다고 했거든!”

"언제? 언제 그랬는데?"

"어제저녁에!"

"어제저녁에 너 맥주 마시면서 잤잖아!”


준호가 할 말이 없어졌다. 맞는 말이었다. 어제저녁 숙소에서 맥주 한 캔 마시고 9시에 잠들어버렸으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태영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탔으니까 됐지. 조용히 해. 민폐야 너네.”

“그래 하, 아직도 진정이 안 되네 후….”


세 사람이 투닥거리는 사이 버스는 출발했다. 토론토에서 나이아가라 폭포까지는 약 1시간 30분 거리였다. 창밖으로 온타리오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근데 진짜 겨우 탔네. 이거 놓쳤으면 어쩔 뻔했어."

준호가 중얼거렸다. 형일이 옆에서 대답했다.

"다음 버스 타면 되지 뭐."

"다음 버스가 2시간 뒤야, 임마."

"...진짜?"

“응."


태영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잠시 조용해진 버스 안에서 형일이 배낭을 뒤적이며 고프로를 꺼냈다.


“아, 아까 찍을걸. 나중에 봤으면 좀 재밌었을 것 같은데.”

“그거 찍었으면 이거 못 탔다.”

“그럼, 유튜브 각 아니야?”

“너 국제미아 각이 아니고?”


준호가 핀잔을 줬지만, 형일이 당당하게 반박했다.


"그래도 찍어야 하는 거 아니야? 영상 분량 부족하다며.”

"...그건 맞네. 근데 나중에 찍자. 폭포 가서."


준호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형일이 고프로를 다시 배낭에 넣었다. 태영이 옆에서 물었다.


"근데 우리 지금까지 영상 얼마나 찍었어?"

"음... 밴프에서 좀 찍었고, 토론토에서도 찍었으니까... 한 2시간?"


준호가 대답했다. 형일이 거들었다.


"편집하면 10분도 안 되겠는데?"

"그러니까 오늘 많이 찍어야지. 나이아가라가 하이라이트잖아."

"오케이. 그럼 폭포에서 열심히 찍자.”


세 사람은 각자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온타리오 호수의 푸른 물빛이 햇살에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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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아가라 폭포는 아직 보이지도 않는 거리에서도 웅장한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뿜어낸다. 정류장에서 내려 사람들이 몰리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저 멀리서 파도 소리처럼 낮고 넓게 깔리던 것이 발걸음을 옮길수록 점점 선명해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하늘 전체에서 쏟아지는 듯한 굉음이 되었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 시야가 열리는 순간, 세 사람의 걸음은 제각각 저도 모르게 멈췄다. 폭이 670미터에 달하는 말굽 모양의 절벽 끝에서 강물 전체가 57미터 아래로 한꺼번에 떨어지는데, 이런 숫자는 폭포의 웅장함을 조금도 설명해 주지 못했다. 물이 절벽 끝에 닿는 순간 잠깐 초록빛을 띠다가 허공으로 내팽개쳐지며 하얗게 부서지고, 아래에서는 물보라가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그 구름이 바람에 따라 이쪽으로 밀려오면, 얼굴에 가느다란 수분이 스치며 물 냄새가 코를 채운다. 물보라 너머로 희미하게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오전의 햇살이 딱 그 각도에서 뿌려지고 있었다.

그 앞에서, 근 며칠간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를 오늘도 내뱉으며 세 사람이 넋을 잃고 서 있었다.


"미쳤다 진짜.”

“...우와."


주변에는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소리를 지르며 떠들고 있었지만, 세 사람의 귀에는 폭포 소리만 들렸다.


"여기 진짜... 오길 잘했다."

"진짜."


형일이 중얼거렸다. 준호가 옆에서 대답했다. 잠시 후, 준호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형일도 고프로로 이것저것 찍었다. 태영은 그냥 맨눈으로 폭포를 바라봤다.


"야 태영아, 너도 찍어.”

"...아니 괜찮아. 그냥 볼래.”

"왜? 나중에 후회하는데?”

"이런 건 눈으로 감상해야지.”


태영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준호는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형일은 영상을 찍으며 폭포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절벽의 바로 앞까지 다가간 세 사람은 난간에 기대서서 한참동안 폭포를 바라봤다. 말이 필요 없이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한 15분쯤 그렇게 서 있었을까, 형일이 물었다.


“이제 좀 내려가 보자. 이제 공원 시작인 거잖아.”

“가자, 갈 수 있는 데는 다 가보자.”


형일이 가리킨 곳은 폭포 옆으로 펼쳐진 넓은 공원이었다. 퀸 빅토리아 파크를 중심으로 하는 이 공원은 폭포를 따라 강변 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데, 잔디밭과 나무들 사이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폭포가 각도마다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폭포에 눈을 떼지 못하고 걷던 형일이 말했다.


"너무 멋있다 진짜. 나 여기 살까? 이런데 살면 너무 행복할 것 같지 않냐.”

"그래, 네가 애국하는 길은 그것뿐인 것 같다.”

"뭐래. 내가 회사 다니면서 낸 세금이 얼마인데 인마.”

"너한테 낭비된 세금이 더 많지 않을까.”

"백수는 조용히 하자 태영아.”

“넌 왜 백수 아닌 척하냐.”


그사이를 못 참고 세 사람이 티격태격했다. 공원 안으로 들어서니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5월 말의 캐나다 날씨답게 햇살은 따뜻한데 그늘로 들어서면 서늘했다. 잘 가꿔진 잔디밭에는 돗자리를 편 가족들과 관광객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고, 강 쪽으로 난 산책로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보였다. 세 사람은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얼마 걷지 않아 준호가 불쑥 말을 꺼냈다.


"형일, 너 오늘 고프로 배터리 확인했어?”

"응. 만충.”

“메모리카드는?"

“...어."

“어?"

"어, 응. 넣었어.”

"왜 말을 끊어서 해?”

“넣었다고."

“봐봐 빨리. 없으면 숙소 잠깐 가게.”

"진짜 넣었다니까. 내 말을 왜 못 믿어?”


형일이 억울하다는 목소리로 배낭을 뒤지며 말했다. 잠깐 부스럭대던 형일은 고프로를 배낭에서 꺼내 메모리카드를 직접 확인해 보였다.


"봐봐. 있잖아.”

“오, 잘했어. 나 줘 이제. 보트에선 내가 찍을게.”

“우리 보트 타?”

“엉. 저기. 위에서 내려봤으면 이제 밑에서 올려도 봐야 하지 않겠어? 가자. 저기 가서 표 사서 가면 돼.”


오늘도 앞장서는 준호의 뒤에서 태영이 말했다.


“쟤 오늘따라 조금 재수가 없다. 그치.”

“그러게. 신난 것 같은데 왜..”


태영과 수군대던 형일이 앞장서 가던 준호가 뒤를 돌아보자, 말을 멈췄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후다닥 준호를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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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진짜.”

“...우와."


겨우 몇 분 전에 했던 말이 또 세 사람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멀리서 들렸던 웅장한 굉음이 이제는 사방을 둘러싸고 울려왔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라 하늘 전체가 진동하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거대한 소리였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물의 장벽을, 세 사람은 물보라가 날아드는 것도 잊은 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날아드는 물보라도 이겨내는 장관이었다.


"이거 진짜... 와야 하는 거였네."


준호와 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비를 입어야 하는 불편함과 작은 배의 울렁거림에 조금 불평하던 형일이었지만, 배가 다시 선착장으로 가는 그 순간까지도 눈을 떼지 못한 것도 형일이었다.

세 사람은 흠뻑 젖은 우비를 벗어두고는 선착장을 빠져나왔다. 아쉽게도 지키지 못한 바지 밑단이 무거웠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 지금 뭐 본 거야.”

“...폭포."

"아니 그걸 아는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였어?”

“대단했지."

"맞아. 와, 진짜.”


형일이 배낭에서 고프로를 꺼내 확인하다가 말했다.


"이거 잘 찍혔으려나.”

"찍혔겠지 뭐.”

"근데 이거 영상으로 보면 별로일 것 같은데.”

"그럴 거야. 저건 가서 봐야 돼.”

"그러게. 저건…"


짧은 대화를 나눈 세 사람은 선착장을 나갈 때까지도 말이 없었다. 표현할 단어는 ‘우와’ 밖에 없었지만, 감격, 혹은 경탄스러움이 한 켠에 남아 말을 잇지 못한 채 조용히 선착장을 빠져나갔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