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이야기
5. 홋카이도의 시골, 타이키에서의 생활. 그 두 번째 이야기
시간이 뒤죽박죽. 글의 순서도 엉망진창이다.
(꼭 내 머릿속을 들킨 것만 같이 부끄럽다.)
시골에서의 와타루의 시간은 잔잔하고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흘러갔다.
홋카이도의 타이키의 인구는 5,500명 정도.
건너 건너 모두가 다 알고 지내는 사이이다.
페이스북에서 친구 추가를 5,0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
어쩌면 사교성 좋은 누군가의 페이스북 친구 수만큼의 인구.
도쿄에서는 각자의 생활이 바빠 옆집에 누가 사는지 조차 모를 정도인데
여기서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누가 결혼을 했고, 이혼을 했는지 그런 입 소문은 바람처럼 흘러가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좋게도 나쁘게도 끈끈하게 이어져 있는 곳이다.
그걸 즐기느냐 마느냐는 마음가짐에 딸린 게 아닐까?
와타루는 어떻냐 하면,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즐기는 타입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힘들었다고 한다. 어르신들의 보이지 않는 텃세에다가 어차피 금방 떠날 사람에게 정 주지 말자는 무언의 약속 같은 것도 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는 정기적으로 열리는 마을의 이벤트(잔치라고 해야 하나..)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시간이 나면 사람들과 어울려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고 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그런 것들이 참 스트레스였을 것 같은데 와타루는 그냥 자연스러웠다고 했다.
아마 무리를 해서 그 속에 끼어들려고 했던 것이 아니어서 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생활하면서 그 속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그는 지금까지도 타이키쵸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랜만에 글을 쓰니 왜 이렇게 정리가 안될까. 하하.
*홋카이도의 시골, 타이키(大樹町)의 생활이 시작되다. 세 번째 이야기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무 농장에서의 일을 정리하고 도쿄에 돌아가는 날.
마을의 이벤트에서 친해진 목장 사장님(소마상) 가족들이 배웅을 해주었다.
아 아쉽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런 씩씩한 마음으로 도쿄에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마상 가족들과는 그동안의 타이키 생활 속에서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소중한 인연이다.
소마상은 부인인 유키카상과 목장을 경영하며 세 아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
술을 좋아하시는 소마상과 술을 사랑하는 와타루는 나이를 뛰어넘는 뜨거운 우정으로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고 한다?!
세명의 아이들과도 매우 사이가 좋아서 주말에는 늘 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 와타루와의 이별이 아이들에게도 소마상 부부에게 있어서도 매우 아쉬웠을 터.
늘 장난치고 놀던 아이들조차도 그 이별의 묘한 기류를 감지했는지 그 날은 매우 조용했다고 한다.
버스 타는 곳까지, 아니 공항까지, 아니다. 그냥 삿포로까지 데려다줄게 라면 그들의 배웅은 조금씩 더 거리를 늘려갔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그래도 역시 이별은 다가오는 것.
작별 인사를 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서로 아쉬움에 마음속에 큰 구멍이 생긴 채.
아. 이제 정말 일상으로 돌아가야겠구나 마음을 다잡으려 했을 때,
소마상에게서 전화가 왔다.
와타루 우리 목장에서 일하지 않을래? 아니 꼭 해줬으면 좋겠어.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소마상 부인인 유키카상이 이 아이(?)를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았다고 한다.
성실하고 밝고 정직한 청년을 위험한 도시에 내보내기 전에 우리가 좀 데리고 있어야겠다.
뭐 그런 부모 같은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와타루는 삿포로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타이키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이번 여행은 조금 더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금도 와타루에게 인생에서 제일 행복하고 충실했던 때를 물어보면,
소마상의 목장에서 일했던 그 시간들
이라고 한다.
서운하지 않냐고?
음. 조금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나 또한 와타루가 가장 행복했을 그때에 그를 만났고,
그 시간들이 와타루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기에 가끔 그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시절의 와타루를 상상해 보기도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의 가장 행복하고 빛났던 시간은 언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