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마음

부지런한 글쓰기에 대하여

by 식이

한 티비 프로그램에서 좋은 연애를 두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변해가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드는 것’이라 했는데, K와의 연애가 딱 그랬다. 특목고로 모자라 S대까지 조기졸업한 그는 명석한 전두엽과 따뜻한 심장을 지닌 사람이었다. 특히 문화, 예술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그의 지적호기심 덕택에 샌님은 커녕 힙스터로 보일 지경이었다. (남을 놀릴 때나 ‘힙스터’를 입에 올리는 모습은 K를 더 힙하게 보이게 했다.)


K는 때때로 그의 글이 기고된 동아리 문집을 내게 선물하곤 했다. 나는 총명함이 묻어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그의 글들을 좋아했다. 담백-한 문장들을 켜켜이 쌓아 대담하게 풀어나가는 방식이 마치 알맹이 없는 겉멋을 혐오하는 K의 모습과도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연인끼리 쓰는 일기 앱에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는데, 문장과 표현 하나하나가 어찌나 풍부한지, 마치 고급 양식집에서 나이프질을 하는 기분이었다. 반면, 이에 부흥하고자 내나름 고심해 써낸 글들은 죄다 촌티가 베어있어 비린내가 나는 듯했다.


내 글처럼 나는 모든 방면에서 어설프고 서투른 것만 같았다. ‘디오니소스 적’이라는 (내 고향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는 결코 통용될 수 없는) 표현으로 자연스레 농담을 주고 받는 K와 그의 대학 동기들을 보며, 내 글이 세련되지 못한 건 바로 내 부족한 견문과 학식 탓이라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어떻게든 이 틈을 메워야 나도 그들의 우아(?)한 대화의 화자가 될 자격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글방을 운영하며 엮은 이슬아 작가의 에세이, <부지런한 사랑>에 인용된 글방 아이들의 글을 접하며 내 단단했던 콤플렉스에도 물렁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K와 이 작가, 그리고 아이들의 글에서는 하나같이 어떤 감칠맛이 났다. 빠삭한 지식 대신 마음이 담긴 글들. 맛깔나는 글들은 무심한 순간들을 재치있게 포착하는 공통점을 지녔다. 이 작가가 인용한 박민규 작가의 말, ‘좋은 글은 노인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과 소년의 마음으로 쓴 노인의 글’로 나뉜다고 했던가. 그때 K가 쓴 글이 빛났던 건 노련함이 아니라 그가 간직해오던 소년스러움에서부터 왔음을, 나는 깨달았다.


섬세한 시선으로 일상을 관찰하는 K는 그가 채집한 감각들을 재료로 글을 요리한다. 그때의 기억을 재현하기 위해 재료를 아끼는 법이 없다. 요리고 글이고, 정성이 다 하는 거다. 반면, 시간부족과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현대 어른’은 효율성을 핑계로 가급적 경제적인 언어로 표현을 아낀다. 해를 거듭할수록 표현에 군색해지는 데다, 더 많은 게으름이 스며든다. 진부하고 무해무익한 어른의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수다스런 아이가 말을 아끼지 않듯, 글쓰기 모임을 통해 나는 내가 잊고 있던 소년의 마음을 끄집어내고자 한다. 지금은 소년과 노인, 그 무엇도 아니지만.


K는 내 생일마다 중고 서적(정확히는 한국 현대소설)을 선물해주곤 했다. 한창 읽을 때는 내가 소설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일상 속 작은 행동과 사건을 소설 속 문장으로 묘사하는 묘한 버릇이 생기기도 했다. 평소라면 읽지 않았을 한국 소설들. 덕택에 나는 지금도 매년 젊은작가상 수상집을 챙겨 보고 있고, 즐겨읽는 한국 작가도 생겼다. 지금의 내 변덕스런 취향의 기반을 다지게 한 것도 모두 그의 지분이 크다. 그덕에 나는 하찮게만 느껴지던 감각들을 주워 담는 법을 배웠고, 이 재료를 아낌없이 쏟아부어 감칠맛 나는 요리를 할거다. 자, 이제 펜을 들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