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라는 터널을 지나는 창업가의 마음

도망치지 않고 제 손으로 끝맺음을 지어본다는 것의 무게

by 식이


[감상]

갑옷과 검을 얻는 실패의 시간


이사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책 <실패를 통과하는 일>을 펼쳤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공사다망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이 책은 아주 시의적절한 이정표였다. 성공 방법론과 무용담이 범람하는 시대에, 자신의 바닥을 정직하게 기록한 이 실패담은 무엇보다 귀하다.


사업 초기, 나에게는 '내가 반례가 되겠다'는 패기로운 태도가 있었다. 대표나 브랜드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전형적인 모습에 저항하고 싶었다. 어딘가 허술하고 ADHD를 가진, 실수와 부족함을 숨기지 않는 대표라도 충분히 사업을 잘 꾸려나갈 수 있다는 모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브랜드를 운영하며 부족함을 드러내는 일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조직과 고객이 갖는 인상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나는 점차 소극적인 태도로 변해갔다.


물론 이 책은 조직을 떠난 창업자의, 말하자면 '이제는 말할 수 있는' 회고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박소령 (전)대표가 이 생태계에서 끝내 채우지 못했던 부분을 기록으로 메워냈다는 점에 깊은 존경을 표하고 싶다. 그녀는 이를 실패담이라고 말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책을 통해 사업 시작 당시 품었던 '콘텐츠를 통한 선한 영향력'이라는 포부를 다른 방식으로 실현해 냈다. 매체가 플랫폼에서 책으로 달라졌을 뿐, 그녀는 실패를 새로운 형태의 성공으로 치유하고 승화시켰다.


사업이란 미리 알았더라면 감히 덤비지 못했을 일들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 고통스러운 실패를 통과하는 만큼 창업가는 단단한 갑옷과 날카로운 검을 얻게 된다. 이 책은 고군분투하고 있는 로우리트의 과거,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 상상해 볼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목차처럼 느껴졌다. 특히 마지막까지 도망치지 않고 제 손으로 책임감 있게 마무리한 모습은 부럽고도 존경스러웠다. 저자의 가장 큰 강점은 자신의 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와, 그 진솔함을 나눌 수 있는 인연들을 곁에 두고 끝까지 걸어온 힘이라고 생각한다.


담지 못한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겠지만, 어쨌건 새해 첫 책으로 이 기록을 만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갈무리]

실패를 통과하며 새긴 5가지 성찰


01. 왜 창업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최종 의사결정권 자여야 하는가 (p. 314)

창업자는 회사가 잘못됐을 때 “가장 크게 망하는 사람”이다. 저자는 결국 의사결정권자를 정하는 기준을 이렇게 요약한다. “누가 가장 큰 타격을 받는지 생각하자. 바로 그 사람이 의사결정자다.”(p.314) 창업자는 주주나 팀원보다 훨씬 큰 핵심 이익(skin in the game)을 걸고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모호해지는 순간마다 “이 결정이 틀렸을 때 누가 가장 많이 잃는가”를 떠올려야 한다. RACI를 회사 일에는 잘 적용하면서도, 정작 ‘회사와의 결별’이라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에서는 초기에 RACI와 Accountable를 못 박지 못해 큰 혼란과 비용을 치렀다고 고백하는 대목은 특히 인상적이다.


02. VC 투자는 정말 우리에게 맞는 선택이었는가 (p. 243, p. 317)

저자는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VC 투자를 받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2017년에 덥석 VC 대상의 펀드레이징을 시작했다. … ‘스타트업은 VC 투자를 받아야지’라고 다들 말하니까 나방이 불에 뛰어들듯 나도 따라갔다.”(p.243) VC 자본은 성장 속도와 기대치를 정해버리고, 회사의 결을 바꾸는 힘을 가진다. 그래서 그는 시간이 지나 “좋은 VC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꺼내든다. “좋은 VC란, 내가 사라지는 9개 쪽일 때, 즉 회사를 정리해야 할 때 얼마나 창업자에게 우호적인 의사결정을 해주는 곳인가?”(p.317) 10개 중 9개가 사라지는 현실에서, 후속 투자보다 “정리의 순간에 어떻게 행동하는가”가 훨씬 더 본질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통찰이다.


03. 말이 아니라 문서(written document)를 믿자 (p. 273, p. 322)

M&A 파트에서 저자는 스타트업·중소기업 M&A의 현실을 이렇게 전한다. “우리 회사가 팔릴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 기준은 과거 실적, 현재 가격, 미래 성장성이다. … M&A는 결국 숫자로 증명되어야 성사될 수 있다.”(p.273) 그리고 잠재 인수자들이 “인수하고 싶다”고 말한 뒤 실제 딜이 끝까지 가는 비율은 3~5%에 불과하다고 말한다.(p.273) 이 경험 끝에 그가 뽑아낸 교훈은 단호하다. “비즈니스 협상에서 말은 아무런 의미도 구속력도 없다. … 말이 아니라 행동을, 행동이 아니라 이메일과 계약서를, 오로지 문서(written document)만 믿자.”(p.322) ‘느낌이 좋았다’는 회고는 협상 결과와 아무 상관이 없었고, 회의 후 합의사항을 정리한 한 통의 이메일, 조항 하나 더 챙긴 계약서가 회사를 지키는 최후의 안전장치가 된다는 메시지다.


04. 좋은 사람이 아니라, 좋은 대표가 되라는 말의 뜻 (p. 221)

레이오프를 앞두고 한 주주는 저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좋은 사람이 되지 말고, 좋은 대표가 되면 좋겠다.”(p.221) 레이오프 이후 그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어둔다. “대표의 JD (Job Description) 0번은, 욕을 먹는 것이다. 그리고 욕을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p.221) 누군가의 인생에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결정을 내리면서,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저자는 “사랑받으려고 대표를 하는 게 아니다. 좋은 회사라는 결과로 보여주면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버텼다고 회고한다. 레이오프는 창업자와 팀 모두에게 깊은 상흔을 남기지만, 결국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가”보다 “좋은 대표로 책임졌는가”가 남는다는, 잔인하지만 현실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05.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내 손으로 마무리하는 것 (p. 325, p. 330)
회사의 매각과 정리를 결심한 뒤 1년 2개월. 그 시간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그사이에 수많은 실수와 굵직한 실패와 감정적 좌절을 맛보았지만, 그럼에도 나 자신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것이 딱 한 가지가 있다. 도망가지 않았다는 것, 회피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끝까지 내 손으로 직접 마무리했다는 것이다.”(p.325) 김연아 선수가 소치 동계올림픽을 마친 뒤 “메달보다 끝까지 버틴 나 자신을 토닥였다”는 인터뷰를 떠올리며, 저자는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은 실패의 기록에서 멈추지 않는다. “365일 내내 생각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것, 호기심과 아이디어가 샘물처럼 솟아나는 일을 하고 싶다.”(p.330)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실패를 통과한다는 것은 성공의 반대편에 서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 내 책임을 다했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지점까지 걸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문장이다.




박소령 작가 북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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