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쳐, 게임, 키덜트...우주의 얕은 덕후 설명서
키덜트 또는 마니아들이 하는 취미 생활을 고상하지 못한 말로 덕질이라고 한다.
많이 아시다시피 이는 일어의 '오타쿠(オタク )' 를 '오덕후'라는 뭔가 이미 땀과 안경이 묻어 있을 듯한 한국식 발음으로 바꾸고 '오덕후질 -> 덕후질 -> 덕질'로 축약한 것이다.
초반에 R모 커뮤니티 등에서 자조적으로 쓰일 때는 꽤 부정적인 뉘앙스였는데 요새는 그냥 ‘축덕 (축구 덕후)’ ‘밀덕 (밀리터리덕후)’ 등 다방면에서 적당히 응용해서 쓰는 것 같다. 일본에서도 ‘오타쿠’라는 말이 매우 부정적인 의미였다가 지금은 많이 순화됐다.
‘덕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콘텐츠에 대한 덕질이다.
즉, 어떤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게임 등에 깊게 빠져들고 관련된 지식과 숨은 뜻까지 모두 파악하는 경우이다.
혹시 주변에 <공각기동대>의 설정에 담긴 각종 철학이라든지, <스타워즈>의 가계도를 완벽히 꿰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 콘텐츠 덕후라고 보면 된다.
특히 일본의 경우 협소한 생활 공간의 제약 + 문화적 성향 때문에 콘텐츠 자체를 깊게 파고드는 경우가 많고 또 이를 만족시켜줄 만한 전문 서적들도 넘쳐나는데, <에반게리온>만 해도 원화집, 동인지, 용어사전, 독해집 등 수백 권의 관련 서적이 존재하며, 또 ’슬램덩크로 배우는 우정론' '원피스에서 배우는 업무 기술' 등 논문 수준의 책들도 잘팔려 나간다.
또 다른 하나는 제품에 대한 덕질이다.
이는 소위 ‘콜렉터’로 불리는 부류로 어느 정도의 콘텐츠 이해도를 바탕으로 관련 물품 수집에 에너지를 쏟는 사람들이다. 고가의 고퀄 피규어, 한정판 상품에 지갑을 초토화 시킬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컨텐츠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깊은 것은 아니다. 지인 중에는 <원피스> 원작을 거의 보지 않고 캐릭터가 매력있어서 모으는 분도 있고 <건담> 시리즈를 전혀 보지 않고 건프라를 100체 이상 가진 분도 계시다.
단순히 "덕후"로 포괄하기에는 꽤 다른 성향을 보이는 두 타입이지만 사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두 가지를 같이 갖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아래는 노무라 경제 연구소에서 조사했던 오타쿠의 6가지 욕구이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런 욕구들이 얼기설기 뭉쳐 있는 것이 바로 덕심의 본질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이 30대라면 <슬램덩크> <드래곤볼>에 뜨거운 추억을 갖고 있을 것이고 조금 더 젊은 세대라면 <원피스> <나루토>를 접해봤을 것이다.
이러한 컨텐츠들은 게임, 피규어, 프라모델 등의 형태로 끝없이 재생산되며 우리는 그것을 소비하며 당시 두근거렸던 감성을 오랫동안 보존한다. <드래곤볼>의 경우 최근까지도 연간 2천억 대 관련 매출을 올린다고 하니 그 비지니스의 규모와 또 그 수혜자(?)가 얼마나 많은지 유추해볼 수 있다.
컨텐츠에 매력을 느낀다고 꼭 콜렉터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을 호시탐탐 노리는 섹시한 아이템들의 유혹에 넘어갈 가능성은 단연 높다.
그리고 그 유혹에 넘어가면 그 뒤로 멈출 수 없는 잔고 소멸의 길이 기다리고 있다. 왜 많은 콜렉터들이 하는 말이 있잖은가. “하나도 안가진 사람은 있지만 하나만 가진 사람은 없다” 라고…
이 블로그에서는 이렇게 섬세하고 예쁘고 복잡한 덕후 월드에 대해 이야기 해볼 생각이다. 깊게 다루는 블로그, 카페는 워낙 많으니 필요하면 그쪽을 참고하시고 여기선 막 컬쳐콜라보퓨전원소스멀티유즈 같은 느낌으로 ‘철없는 어른’의 취미 생활을 얇고 넓게 흝어보도록 하자.
다음 편 부터 가슴에 강렬한 뽐뿌가 오는 멋진 아이템들을 하나씩 소개해보고자 한다. 신용카드를 최대한 멀리 두고 읽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