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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PD Aug 11. 2015

추억에서 현재까지, 비디오 게임 - #2 추억 보정

추억의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맞을까?

내가 진짜 감명받으면서 재미있게 했던 게임 중에 <천외마경2>라는 게임이 있다.


중 2였나, 3였나 정도로 기억하는데 당시에 부모님께 굽신굽신 러쉬를 해서 산 PC 엔진듀오로 출시된 동양풍 RPG (역할 수행 게임)로 잡지에서 한눈에 보고 반해 버렸다.

천외마경 2의 표지

천편 일률적인 서양 중세 판타지 RPG에 염증이 났을 때인지라 어떻게든 구하려고 용산에 수시로 들락날락 거렸지만, PC 엔진 듀오 자체가 한국에 정식 발매가 안된지라 해당 기종의 게임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였다. 게다가 당시 <천외마경2>는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어서 더더욱 수입이 어려웠던 걸로 기억한다.


천신만고 끝에 웃돈을 주고 구한 <천외마경2>는 나에게 게임의 신세계를 보여주었다. 애니메이션으로 나와도 손색이 없을 것처럼 세련된 캐릭터들,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감과 동서양의 매력이 적절히 조화된 세계관이 나의 몰입도를 극한으로 올려주었고 당시에 최첨단 기술인 애니메이션 컷씬과 성우 음성 삽입은 “아 이것이 진정한 게임의 미래로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캐릭터 디자인



난 공부에 지장 받을 정도로 그 매력적인 세계에 깊게 빠져 매일 밤잠을 설쳐가며 몇 시간씩 플레이 했던 기억이 난다.


간단히 추억을 되살릴 겸 게임에 대해 설명하자면, 기본적으로는 권선징악의 플롯을 따르는 게임이며, ‘지팡구’라고 하는 일본의 옛모습을 가진 곳에 핀 암흑란이라는 꽃을 조종해 세상을 정복하려는 신 ‘요미’와 그에 맞서는 불의 일족의 이야기이다.

불의 일족. 패션 센스가 뛰어나다

에도 시대 일본을 배경으로 하지만 엘리베이터라던지 워프 장치 등을 쓸 수 있는 점이 동양풍 판타지 게임으로서의 독특한 매력을 갖게 만들었다.


일본의 국민 게임 <드래곤퀘스트>급으로 올라간다는 야심찬 기획으로 나온지라 300명의 스탭이 동원되었고 지브리 음악으로 유명한 히사이시 죠가  음악을 맡았다.


아무튼 누가 물어봐도 내 인생 최고의 게임 중 하나로 꼽던 이 <천외마경2>, 오리지널 출시 후 약 15년이 지나 원작 모습 그대로 PSP(소니의 휴대용 게임기)로 재발매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들뜬 마음으로 바로 사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켰는데…


이건 내가 기억하던 그게임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천외마경2 PSP 버젼이다. 다시 그 시절로 갈 수 있을 줄 알았으나...

풀 애니메이션과 음성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던 컷씬은 마치 종이 인형극처럼 어색한동작과 뻐끔뻐끔이였으며 캐릭터는 어쩜 이렇게 조악한 픽셀로 구성해놨는지...또 지금 기준에 맞지 않는느릿느릿한 대사와 노가다를 수반한 촌스러운 게임 진행은 마치 긴머리 휘날리던 첫사랑을 다시 만났더니 푹퍼진 아줌마가 되어 있던 슬픈 일화를 연상케했다.


PSP판...이라기보다 단순 에뮬 이식이였던 천외마경2 PSP판

이런 현상을 소위 ‘추억 보정’이라고 부르는데, 말그대로 추억 속에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부분만 강조해서 기억하는 현상이다. 이렇게 추억 보정으로 아름답게 기억되던 게임에 대한 환상이 와르르 깨지고 난 뒤에 나는 왠만해서는 레트로 게임은 손대지 않는다.


게임 업계에 있어서 더 그런지 모르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너무나도 불편하고 촌스러운 게임설계가 눈에 많이 띄고 결국 그런 것에 신경 쓰다 보면 게임을 온전히 즐기기 못하기 때문이다. 게임자체가 별로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다만 게임플레이 외적인 요소들이 현세대 게임과 비교하면 덜 다듬어져 있기 때문에 쓸데없는 데에 정신이 팔려 막상 게임에 집중을 못한다는 얘기다.


유명한 액션 게임인 ‘록맨’ 은 화려한 3D 그래픽으로 무장을 했다가 2008년 출시한 9탄에서 갑자기 80년대 그래픽으로 회귀해서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게임 자체는 잘만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즐겁게 하지 못했다. 역시 ‘아 이건 왜 자동으로 세이브가 안되는거야. 아 도대체 왜 에너지는 이거 밖에 안주는거야’ 같은 다분히 시대착오적(?)인 생각이 자꾸 방해했기 때문이다.

2008년 작이라곤 믿기지 않는 록맨 9



레트로 게임을 즐기는 방법?


옛날 게임들을 기념 삼아 꽤 사서 갖고 있긴 한데 이러한 이유로 더이상은 플레이하지 않는다. 그럼 혹시 수집가분들은 직접 플레이하시는걸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레트로 게임을 좋아해서 ‘인서트코인’이라는 브랜드로 픽셀 브로치를 제작하는 디자이너, 손유리씨의 말.


 요새 게임은 거의 하지 않아요. 온라인 게임도 안하구요. 옛날 8bit 게임부터 파이널 판타지류의 고전 RPG 까지만 딱 좋아해요. 그 정도에서 좀 멈춰 있는 것 같아요ㅎㅎ


하지만 그녀는 소장한 레트로 게임기로 플레이 하기에는 이를 멋스럽게 재현해줄 모니터가 없거나 연결 자체가 불안정해 에뮬레이터로 플레이하는 경우가 실질적으로 더 많다고 한다.

인서트코인님이제작하시는 레트로 픽셀 브로치

한편 레트로 게임 수집가인 박재원님께서는 주기적으로 플레이를 하시는 편이시라고 이야기한다.


 최근에는 2가지 방식으로 레트로 게임을 플레이하는데요, 빈도는 월 1~2회 정도됩니다. 다소 음성적인 에뮬레이터는 역시 편의성이 좋지만 실제 기기로도 가끔합니다. 아무래도 가끔 돌려줘야 하기에 메인터넌스 차원이 더 크지만요. 이렇게 실제로 가동하다가 멀쩡한100v 기기 퓨즈를 날려 먹은 적도 있습니다...ㅎㅎ


그럼 이렇게 다시 플레이하면 실제로 재밌을까? 나의 <천외마경2>같은 상황이 되지는 않을까?


저는 게임 자체보다 추억을 회상하는 목적이 더 큽니다 .단순히 추억 없이 본다면 조악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당시의 각인이 있고, 그 시절에 수작을 만들어 내기위한 스탭들의 고민과 통찰력을 생각한다면 즐거움은 배가 됩니다. 플레이 방식에 따라서도 각각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데요, 저는 에뮬레이터로 플레이할 때도 레트로 아케이드 기판용 타이틀을 주로 합니다. 콘솔을 연결 하는 경우는 다소 번거롭지만 진정한 ‘손맛’을 느낄 수 있죠. 가변저항 방식으로 센터를 맞추어 가며 만져야 했던 Apple II Joystick이나 <릿지레이서>가 처음 플레이스테이션에 나왔을 때 사용된‘네지콘’을 비틀며 하는 손맛은 비교할 수 없는 재미입니다.
박재원님의 레트로 게임기 콜렉션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고전 게임은 게임으로서 바라보기 보다 그때의 시대상을 대입해서 볼 때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마치 85년에 나온 <백투더퓨처>를보며 ‘CG는 왜 저래’ ‘촬영 기법이 이상하잖아’라고 불평을 늘어놓는다면 그 컨텐츠가 주는 진짜 재미를 느낄 수 없듯이 그 당시로 돌아가 추억과 함께 즐기는 것이 바로 고전 게임을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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