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멈춘 날 , 나는 돈을 처음 보았다
무너짐 속에서 처음 마주한 현실
무너지지 않은 줄 알았던 엄마가, 멈춰있던 날.
나는 돈을 몰랐다.
아니, 알 필요조차 없었다.
돈은 언제나 어머니를 통해 흘러왔고,
나는 그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사람이었다
돈을 쓸 줄은 알았지만,
그게 어떤 무게로 전해지고 있었는지 몰랐다.
그 무지는 오랫동안 내 안의 자신감을 무너뜨렸고,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공부는 정말 싫었다.
매일 하라는 말에 질려 있었고, 나는 자유롭고 싶었다.
하지만 어딜 가든 “공부 잘하면 성공한다”는 말뿐이었다
그게 정답처럼 들리는 세상이 싫었다.
성공 = 공부 = 돈이라는
단순하면서도 무서운 공식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공식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더더욱 일부러 무시하려 했다.
그들이 믿는 방식대로는 살고 싶지 않아서.
그 시절, 우리 집은 나름 부유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모든 걸 쏟아부었다.
전 과목 과외, 학원, 또 학원.
왜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그냥 싫었다.
그나마 태권도장 가는 날이 작고 소중한 행복이었다.
그 무렵, 나는 무의식 속에서
“어머니가 다 해줄 거야”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어머니가 정해준 길이
정답일 거라며
어른들은 왜 매일 뉴스를 보며
코스피, 코스닥 지수에 한숨 쉬는 걸까.
그게 뭔지도 모르겠고, 재미도 없고, 시끄러웠다.
주식은 그냥 도박 같아 보였고,
신문을 보는 어른들이 그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차트가 오르내리는 걸 보면
그냥 올랐을 때 팔면 되는 거 아닌가?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주식은 게임 같았고, 돈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인생 공식은 산산조각 났다.
부모님의 이혼, 재정적 붕괴.
그날 처음, 나는 어머니의 뒷모습에서 울음을 보았다.
그토록 강했던 엄마가
작고 흔들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슬픔보다, 당황보다, 먼저 찾아온 건 분노였다.
“엄마가 다 해준다며.”
“엄마가 말한 길만 가면 된다고 했잖아.”
왜 하필 지금, 왜 내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이 타이밍에…
지금 돌아보면,
그 원망은 어머니를 향한 게 아니라
내 무력함을 감추기 위한 어린 나의 방어였다.
나는 철이 없었고,
동생에게도, 어머니의 고통에도 무심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처음으로
돈이 내 자유를 가져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돈은 내게 위협이 되었고,
삶을 묶을 수 있는 무서운 존재로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주식을 떠올렸다.
돈이라는 괴물을 이해하고 이기고 싶었다.
어깨너머로 보던 어머니의 노트북,
캔들, 숫자, 차트,
“이 가격 되면 불러줘”라는 말.
“왜 지금 안 팔아?”
“지금 팔면 되잖아.”
그 물음에 어머니는 웃기만 했고,
아무도 내게 끝까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나는 직접 주식을 시작했다.
증권계좌 개설, 캔들, 매수, 매도, 세금, 보조지표, 재무제표…
볼 게 너무 많았다. 사람마다 기준도 달랐다.
그리고 깨달았다.
주식도 결국은 공부였다.
그토록 싫어하던 공부 말이지.
30분도 못 버티고 컴퓨터를 꺼버렸다.
그제야 어른들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들이 왜 그렇게 공부하라고 했는지.
시간이 흘러, 군대에서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부의 추월차선」
그 책은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이 되었고,
내게 처음 말을 걸어온 ‘시스템 밖’의 존재였다.
돈은 단순히 ‘얼마를 버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돈은 나에게 속도였고, 구조였고,
자유를 사고파는 환율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구조 안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