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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gon Jun 21. 2023

홀리가든

에쿠니 가오리의 문장들

'두 잔째 마시는 실론티에는 들쭉날쭉하게 잘린 얇은 레몬 조각이 흐물흐물 맥없이 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루즈하고 반복적인 그리고 혼잣말을 듣는 듯한 조용한 책이 있을까. 마지막 역자의 말을 덮는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을 꺼내든건 여러번이지만 마지막 결말 그것도 어찌보면 알 수 없는 끝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작가의 말을 읽지 않았더라면 '음 지루한 책이군' 하며 덮고 한동안은 에쿠니의 소설을 펼치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어떠한 사건이 있다기 보다 우리가 그저 일상적으로 지내는 시간들, 커피 혹은 홍차를 고르는 식의 하루의 여분의 시간들 그 아름답고 소중한 고요한 시간들에 집중한 이 책은 지금 내가 물을 마시며 멍 때리는 시간, 깨끗이 닦아내지 못한 흔적이 약간 남은 손톱에 투명한 네일 폴리쉬를 공들여 올리는 여분의 시간을 특별하다고 말해준다. 뭔가를 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소중한 날들을 이야기 한다.


22.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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