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은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기 전부터, 테러방지법안의 반헌법적 독소조항의 삭제/수정을 요구하였고, 필리버스터가 계속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일관되게 독소조항의 삭제/수정 요구를 하고 있다.
아래는 야당에서 삭제요청하는 테러방지법의 대표적 독소조항이다.
1. 영장 없는 감청을 무분별하게 확대하는 테러방지법 부칙 2조 2항
2. 영장 없이 금융거래 자료를 국정원에 제공할수있게하는 부칙 2조 1항
3. 위치·출입국·통신·금융거래 등의 정보수집권을 확보하게 되는 국정원에게 추적조사권까지 부여하는 9조 4항
바둑에 있어 최고 고수들은 10수 앞을 예상하고 자신의 수를 둔다고 한다.
이는 협상에서도 마찬가지.
'상대방의 다음 수'를 예상하고, 이에 대한 '나의 대응 수'를 준비하는 것은 협상의 기본이다.
1) 여당과 정국회의장의 직권상정에 반박할 수 없이 강력한 '대응 수'를 준비한 야당
정의화 국회의장이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자, 같은날 여당은 김광진의원을 필두로하여 무제한 토론에 돌입하였다. 사실 정의장의 직권상정은 이미 지난달부터 여당의 강력한 압박 속에 어느정도 예견되어 있었고, 이러한 수를 사전에 읽은 야당은 47년만에 필리버스터라는 초강수를 두어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직권상정 당일, 김광진 의원의 5시간 33분, 은수미의원의 10시간 18분의 필리버스터는,
여당의 직관상정이라는 '다음 수'에 맞서는 '대응 수'로 야당이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나온 것을 반증한다.
2) 야당의 필리버스터에 대응하지 못하며, 협상의 주도권을 뺏긴 여당.
이에 반해 여당은, 야당의 초강수에 그 어떤 의미있는 대응책도 마련하지 못한 채, 협상의 주도권을 빼앗긴 모습이다.필리버스터 행위에 대해 법률적으로 반박을 하지도 못하고 있으며, 쟁점이 되고 있는 대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들에 대해 명쾌한 해명도 없다.
'삼삼오오 모여, 이게 도대체 뭐야. 어떻게 해야하는 거야' 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모습이다.
1) 법률적 차원
야당의 필리버스터 행위에 대해, 여당은 강건너 불구경 난 듯 바라보고만 있다.
기껏해야 '총선을 앞두고 공천받으려고 그러냐!' 는 식의 의미없는 꼬투리를 잡는 정도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 필리버스터는 의회 안에서의 다수파의 독주를 막으려고 이뤄지는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행위다. 국회는 지난 2005년 5월 국회법을 개정하면서 본회의 안건에 대해 재적의원 3분의 1(100명) 이상의 서명으로 필리버스터를 국회의장에게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지금 이순간 야당의원들이 진행하는 필리버스터는,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합법적인 행위인 것이다.
2) 배수의 진을 치고도, 협상의 여지를 열어두는 세련된 협상기법.
더욱 놀라운 것은, 배수진을 치고 47년만의 초강수를 두고 있는 야당이, 무조건적인 반대투쟁을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야당은 필리버스터라는 행위를 통해 여당을 압박하면서도, 여당과의 협상의 여지를 드러내며 독소조항 삭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예컨대 더민주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우리 당은 독소조항 배제를 위한 협상을 여러 차례 요청한 바 있지만 새누리당은 이를 계속해서 묵살하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명분 싸움에서도 결코 지지 않는 모습이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는 하버드로스쿨 협상연구소 다니엘 샤피로의 저서로 협상학계의 최고의 베스셀러 중 하나이다.
이에 따르면 많은 경우에 있어 우리는 '감정적인 이유로 의사결정을 하고, 이성적인 근거를 마련한다.'
김광진의원이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5시간을 넘게 발언하는 모습, 그리고 가녀린 은수미의원이 10시간을 넘게 발언을하고 나오며 동료의원들의 품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 등은 언론과 SNS를 통해 무한히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이미 많은 국민들은 감정적으로 동요되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감정적 동요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이성적 근거를 찾고 있다.
그것이 바로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인 것이다.
야당이 보인 철저한 준비 속에 이루어지는 합법적 투쟁,
국민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 삭제'라는 명분,
여론의 감정을 자극하는 야당의원들의 투쟁 이미지,
그리고 협상의 문을 열어두고 해결의지를 드러내며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려는 야당의 세련된 협상 태도,
총선을 앞두고, 국민들의 표심에 일희일비하고 있는 여당에서, 이러한 형국이 오래되면 좋을 것은 결코 없을 것이다.야당의 입장에서는, 총선 직전이라는 타이밍과 여론과 국민의 힘을 등에 업고,
핵심이해관계인인 국민을 통해 여당을 압박하는 가장 좋은 수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협상에 있어 가장 뛰어난 협상가는, '잃을게 없는 판을 짜놓고 협상을 시작하는 자'이다.
이번 필리버스터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야당에게는 잃을게 없는 신의 한수'이다.
1)직권상정한대로 통과한 경우.
총선을 앞두고 분열과 이탈로 출혈투성이였던 야당은, 이번 필리버스터를 통해 다시 단합된 야당의 힘을 보여주고, 국민들에게 야당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이러한 형국에서 여당이 직권상정한 이번 법안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억지로 통과를 시킨다 한들, 오히려 여당이 국민들의 역풍을 맞을까 걱정해야 할 판이다.
2) 야당의 수정안을 받아들인 경우
여당이 야당의 수정안을 받아들이면, 야당으로선 합법적 투쟁의 '승리'를 쟁취한 것이 된다.
총선을 앞두고, 이것보다 야당 내부적으로, 그리고 대국민 차원에서 확실한 선거운동은 없어보인다.
야당이, 합법적 수단으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을 위해 독소조항을 삭제하는 것.
이것은 그들이 바라는 최고의 시나리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