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Wien-München 10일, prologue
이번 여행엔 인스타 업로드를 아직 안 했다.
24시간이면 휘발되거나 긴 글을 읽기 힘든 플랫폼보다는 글 쓰는 공간에 상세히 남기고 싶었다.
다만 글쓰기 창을 열었더니 밀려오는 부담에… 그간 얼마나 짧은 글 작성에만 익숙해져 있었나 싶다.
올 추석 연휴에 어딜 갈까 생각만 하다 어느덧 두 달 앞이 되었고 유럽행 비행기 표값은 200만 원부터 시작이었다.
이래저래 찾다 보니 코로나 전 금액을 유지하고 있던 유일한 스케줄..!
4년 전에 타 봤던 항로인 뮌헨행 에어차이나를 선택했고 오래 아껴뒀던 여행지 빈에 가게 되었다.
왜 빈인가
코로나 이후 첫 유럽이니 가장 특별한 곳에 가고 싶었다.
왜 빈이 특별한가에 대한 긴 이야기
나는 피아노 전공을 못했지만 어릴 때부터 원했다.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론 레슨을 받지 못했는데
초등학생 땐 예중을 중학생 땐 예고를 고등학생 땐 음대를 가고 싶어 했다.
혼자만 생각했지 아무도 몰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릴 잡았다.
피아노를 계속 했더니 취미에도 경력이 붙는 건지 연주할 기회가 종종 생겼다
내 직업 앞에는 늘 '피아노 치는'이란 수식어가 붙었지만 마뜩잖았다.
내가 하는 일이 피아노 치는 나를 수식하길 원했다.
나도 평가받고 싶었다. 음악을 잘 아는 사람들 속에 있고 싶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던, 주제파악을 너무 잘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가여웠다.
이제는 정말 피아노 학교에 가야 했다.
2018년, 나이 서른에 입시를 시작했다.
거의 회사 - 연습실 - 집만 오갔다.
연습실을 회사 근처, 집 근처 두 군데를 구해서 점심시간에까지 연습을 했다.
옷을 잘 입는 걸 좋아하는 내가 매일 같은 셔츠를 입고 구멍이 난 줄도 모르고 다니고 있었다.
바흐 토카타 하나, 베토벤 소나타 하나를 피아노 건반을 처음으로 눌러보는 사람처럼 시작했다.
좁은 방에서 메트로놈에 소리를 맞추는 훈련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레가토는 시간과 공간과 물리의 합을 맞추는 작업이었다.
음악 덕에 행복한 건 가끔 오는 행운이었다.
사람들과 멀어지고 대화할 줄을 모르게 됐다 자주 울었다 예민하고 섬세하고 신경질적인 시간이었다.
스트레스로 체중이 8kg이 불었다.
가끔 오는 행운이 희망이 될 뿐이었다.
그래도 와중에 뭔가가 조금씩 쌓이긴 했다.
매일 똑같은 일과를 보내면서도 서로 다른 매일의 기록이 남은 것처럼
유쾌하다거나 불쾌하다거나 할 수 없는, 내가 메트로놈 안에서 쪼갠 템포 조각들 같은 그런 무언가..
그렇게 살다 1년이 지난 어느 날
내가 이 토카타만큼은 누구보다도 잘한다는 생각이 드는 연주를 해냈다.
녹음하고 있지 않았고 그저 모든 연주가 그러하듯 휘발되어 버렸다.
내가 들었고 내가 인정했다는 사실이면 됐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피아노전공에 서류를 냈다.
학생 머릿수가 중요한 어느 학교에서는 먼저 연락이 오기도 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최고의 학교 교수들께 평가 받고 싶었다.
전공했던 지인으로부터 그 학교에서 지난 10년 동안 학사편입으로 딱 1명-그것도 같은 학교 타전공자였는데 특출해서 음대 교수들로부터 레슨을 받았다던-을 뽑았으나, 결국 졸업은 못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도전 자체가 어린 시절의 나에게 보상이자 선물이었다.
내 얼굴 사진이 붙은 입학지원서마저 소중해서 사진을 몇 번이나 찍었다.
우편으로 보내도 될 서류를 회사에 반차를 내고 가서 직접 제출했다.
캠퍼스를 걸었고 연습실에서 잠깐 피아노를 쳐 보고 학식을 먹고 돌아왔다.
내 실력으론 갈 수 없는 학교인 건 잘 알고 있었지만
내 간절함은 그 쯤 되는 곳에서나 보이고 싶은, 나에게 너무 소중한 것이었다.
내 연주가 어떻든 그 학교에서 해야 했다.
비가 쏟아지던 날 아빠 차를 타고 시험을 보러 갔다.
짧은 연주를 마치고 비처럼 울면서 음대 건물을 나왔다.
2년 간의 입시생 생활을 마쳤다.
불합격했고 그 해 합격자도 없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학교에서는 아마추어를 위한 콩쿠르와 모임을 만들어 주셨다.
현재 소속되어 있다.
입시가 끝나고도 몇 달은 더 힘들었다.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은 입시 생활 2년 반은
내 삶에 다시없을 괴로움이고 소중함이었다.
다시는 학교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학 합격장이 없어도 졸업장이 없어도 될 만한 것을 이미 구했다.
늘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돌보아 주던 음악은
내가 다가가자 비로소 나를 빛처럼 안아주기도 했다.
빛은 짧지만 뜨거운 모든 것이다.
종교가 없는 내가 추앙하는 것
클래식 음악이고 바흐 베토벤이다.
이런 나에게 성지란 바흐가 계신 라이프치히,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의 빈이었다.
라이프치히는 2019년에 방문했다.
그렇다면 코로나 이후 첫 유럽행은 베토벤을 만나러 갈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