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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책방 Apr 19. 2022

실력이 꼬장이 되지 않기로

물러나는 중입니다

'난 이제 얘네들이랑 같이 일 못해. 생고생하며 도와줬더니 결과가 뭐야? 이딴 식으로 만들어놨어.’

 잠깐 이야기하자고 해서 사무실에 올라갔더니, A감독이 한바탕 속상한 마음을 토해냈다. 잔뜩 화가 난 말투였지만, 어렴풋 다른 감정선이 보였다. 여러 감정이 마블링처럼 엉켜있을 때, 사람들은 종종 가장 나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낸다. 겉으로 드러난 실망, 분노의 아래에는 기대와 애정, 안타까움이 흐른다. 하지만 분출된 감정은 속마음을 가려버린다.

 얼마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나는 A감독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프로젝트의 틀이 잡히면 후배들에게 인계하고 우리빠져야 한다는 사실도 설명했다. 우리의 역할은 원할한 제작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과정이 매끄럽지 않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A감독은 시네마틱 촬영의 필요성과 공감이 부족했던 시기에 영화 제작 현장을 찾아다니고 전문과정을 수료하며 실력을 키웠다. 쇄빙선이 얼어붙은 북극해를 끊어나가듯 꾸역꾸역 자료를 구하고 장비를 구입했다.  모든 과정을 그는 혼자서 뚫어냈다. 그의 실력과 노하우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여느 방송사에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는 영상미를 구현해  것은 A감독의 노력 덕분이었다.  후배들에게 일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싶었다. 요즘은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영상미를 갖춘 채널이 많다. 좋아보이는 것은 왜 좋아보이는지를 가르쳐 주고 싶었다.


 처음엔 우왕좌왕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후배들은 자신감이 생겼고 의욕넘쳤다. 책임감이었을까?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지나칠 정도로 주도적으로 일을 끌고 가서 책임 연출자인 내게 상의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생겨났다. 들러리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섭섭함이 커질수록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아졌다. 나의 조언은 그들에게 '해봤자 안된다.' 소리로 인식되었다. 내가 그들의 자유로운 방식을 방해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는 나도  서글펐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예상했었지만, 막상 겪으니 감정을 추스리기 쉽지 않았다. 국장님과 상의해 적절한 때에 프로젝트에서 빠지기로 결정했다.

 섭섭한 마음은 혼자 삭혔다. 내가 초짜배기 PD였을  선배를 무시하고 버릇없이 굴었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고, ‘이렇게 세대가 바뀌는 거야하며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을 거라고 '혼자' 위로했다. 3개월이 지났을 지점, 프로젝트에서 빠지고 나의 일로 돌아왔다. 몇 개월 미뤄두었던 일을 다시 시작하려니 좀처럼 몰입이 어려웠다. ‘코로나만 후유증이 있는게 아니구나!’

 그리고 오늘, 그동안 후배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A감독이 폭발하고만 것이다.

'처음에 배우겠다고 한 녀석들이, 나한테 한 번도 가르쳐달라고 한 적이 없어. 뭐가 좋은 것인지 뭐가 나쁜 것인지 볼 수 있는 눈도 없으면서, 일을 우습게 알잖아요.'

 A감독이 후배들에게 직접 화내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었다. 아마 그 친구들은 A감독이 쏟아내는 거친 말에 상처를 받았을 테고 한 번 틀어진 관계는 쉽게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감정의 깊은 골에는 불신과 비난이 흘러들어와 고일 것이다. 언제고 다시 만나 일해야 하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한번 멀어져 버리면, 다시 얼굴을 맞대고 일하기 어려워진다. 나는 A감독이 뒤섞인 감정들에서 긍정의 감정을 분리해 내길 바랬다. 고심하다 번득 스치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감독님도 사실 그 친구들 잘 해내길 바라잖아요?" 순간 그의 화가 멈추었다.  

'그렇죠. 그건 그래요. 에이 참'

 화는 가라앉았지만, 다시 하긴 힘들 것 같았다.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면 즐겁게 일하기 힘들다. 나도 마찬가지였으니 그에게 더 이상 부탁하기 어려웠다. 얼마 후 A감독도 프로젝트에서 빠졌고, 후배들끼리 이런저런 시도를 했지만, 실적을 내지 못 해고 프로젝트는 종료됐다. 이 프로젝트는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후평가를 하며 여러 문제점들이 지적되긴 했지만, 나는 이번 실패가 기술의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아! 실력이 꼬장이 되어버렸네."

 내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나의 조언이 그들을 위축되게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게 했다면 그건  책임이다. 기술과 경험을 알려주는데서 멈췄어야 했다. 선택과 결과는 그들의 몫이기에,  과정조차 그들에겐 경험이기에. 실패 혹은 성공했을지 모를 도전을  과거의 경험으로 았다. 이건 실력이 아니라 꼬장이다. 내가 좋아보이는 것이 그들에게도 좋아보이는 것이 아니란 것을 몰랐다. 후회됐다. 내가 제일 싫어했던 선배의 모습을 내가 반복하다니. 프로젝트에서 빠질 때 우려하는 이들에게 ‘이제는 저들이 알아서 잘 할 거다’고 말 한 것은 일종의 방관이 아니었을까? 더이상 같이 고민하고 같이 도전하기 귀찮다는 회피가 아니었을까?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영화 [해피 플라이트]가 떠올랐다. 첨단 장비가 도입되면 모든 과정이 자동화가 된 항공시스템에서 노년의 선배들은 할 일 없이 퇴직을 기다리는 신세였다. 갑작스러운 항공 사고로 시스템이 먹통이 되어버린 순간, 그들의 활약이 펼쳐진다. 감동과 재미를 듬뿍 주었던 영화였다.

 ! 그러나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관료주의와 정신이 존경받는 일본에서나 상상할  있는 일이다.  무의식 속에는 영화  조연들처럼 장인정신이 선배의 미덕으로 세겨있었나 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은 디지털 시대에 맞으며 한국보다 훨씬 뒤처지고 있다. 지금 변화가 가장 빠르게 나타나는 분야가 뉴미디어다. 나는 이제 후배들과 함께 일할  있는 기회가, 나의 경험을 전할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들은 더이상 내게 가르쳐 달라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롭고 빠르게 변하고 있다. 코로나19 뉴미디어와 디지털콘텐츠 급속히 전환되고 있고, 후배들도 나도 처음 경험하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내가 배워야하는 때다.  경험과 실력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건 후배들의 시선을 함께 따라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그들과 함께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고, 그들에게 배워야 한다.

 이제 '주도권을 그들에게  '. 또다시 프로젝트가 실패하지 않도록, 실력이 꼬장이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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