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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수 Aug 12. 2019

지나간 미래

< 1984 >와 < 멋진 신세계 > 함께 읽기


우리는 인간답게 살기 원한다. 그런데, 인간다운 삶이란 뭘까?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라는 SF 만화영화를 TV에서 보았다. 미래의 기계 인간에게 엄마를 잃어버린 한 소년이 영원한 삶을 찾아 우주를 여행하는 이야기다. 그 소년(철이)은 키가 작고 못생겼지만 그와 함께 여행하는 가이드(메텔)는 긴 금발의 늘씬한 미녀다. 은하계 먼 곳에 기계 인간의 삶을 주는 별이 있는데 소년은 그 별까지의 긴 여행을 하는 동안 많은 인간과 존재들을 만난다.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를 거치며 소년은 생명과 존재와 삶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존재들 간의 경쟁과 갈등 사이에서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고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그의 여행은 어찌 보면 오디세이 같은 긴 서사시다. 그에겐 분명한 목표가 주어져 있지만 조금씩 그 목표가 진짜 목표가 맞는지 혼란스럽다. 영원한 삶은 그의 희망이고 당연히 쟁취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원한 삶을 얻은 사람들의 삶은 부러워할 만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영원이라는 시간을 얻은 대신 삶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다. 소년은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영원한 시간 그 자체보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침내 소년은 긴 여행 끝에 영원한 생명을 주는 별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도 갈망했던 영원한 생명을 포기한다. 그가 원하는 삶은 그게 아니었던 거다. 기계 인간이 되어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있지만 그건 인간다운 삶이 아니었다. 인간다운 삶은 고통스럽다. 언젠가 죽어갈 부질없는 목숨을 이어가면서도 하루하루의 생존이 쉽지 않고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렵고 조직은 갑갑하고 사회는 잘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기계 인간의 삶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이 전혀 필요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지만 마음껏 할 수 있는 무엇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쉽게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기계 인간의 삶은 <멋진 신세계>에서 살아가는 미래 인간들의 삶과 유사하다. 

인간 자체가 기계는 아니지만 기계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진다. 만들어진다는 말의 의미는 그 사용 목적을 갖고 있다는 거다. 인간은 대량 생산되고 하나하나의 인간에겐 태어날 때부터 해야 할 역할이 주어져 있다. 그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질 뿐만 아니라 역할을 수행하면 행복감을 느끼도록 조작된다. 아주 단순한 일을 하는 존재가 있고 아주 지적인 일을 하는 존재도 있다. 게다가 우울함이나 허무함이 찾아오면 그걸 쉽게 해결하고 다시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마성의 약이 제공된다. 다양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잘 구축되어 있다.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없기에 갈등도 충돌도 거의 없다. 그저 안정되고 그저 평온할 뿐이다.


<1984>년에서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 

사람들이 엄격한 감시와 통제 속에서 살아간다. 20세기 초 이미 인간은 전체주의를 경험했다. 하지만 1984년의 무서움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모두 통제한다는 거다. 통제는 언어의 단순화와 이중적 사고로 구체화되고 심화된다. 우리의 생각은 언어로 표현되기에 언어를 단순화하면 생각도 좁아진다. 주어진 단어 안에서만 표현이 가능하다. 과거의 모든 기록과 문학 작품들도 단순화된다. 다양하고 풍요롭던 인간의 과거 지혜가 모두 사라지는 거다. 이중적 사고는 더 과감한 통제 방법이다. 모든 사실은 쉽게 왜곡된다. 지배 계급의 사상과 논리에 맞게 과거와 현재의 모든 기록이 매 순간 바뀐다. 하지만 그것을 수정하는 사람들조차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훈련된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듯 진실을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도록 스스로를 기만한다. 그들의 삶은 권력의 도구일 뿐이다. 


<1984>와 <멋진 신세계>를 읽으며 현대의 조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정부조직이나 군대가 아니면 조직에 속해 일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산업혁명으로 기계가 발달하고 대량생산 체계가 만들어졌고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게 되었다. 제조업이 아니더라도 주식회사 형태의 사업조직이 생기면서 투자자의 자금으로 경영자와 노동자가 함께 일하는 방식이 발달했다. 사람들은 조직의 힘과 효율성을 알게 되었고 이제 현대의 대부분의 일은 조직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조직의 힘과 효율성을 얻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요한 것이 있다. 조직 내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위계질서가 있어야 하고 함께 일하는 방식을 구축해야 한다. 개개인이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분업화는 필수적이고, 통일된 프로세스를 만들고 운영하기 위해 관리체계도 필요하다. 각각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고 그 일에 만족을 얻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으면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처음부터 맞는 곳에 배치될 가능성은 낮고 시간이 흘러 잘할 수 있게 된다 해도 행복감을 얻지 못할 수 있다. 더구나 능력의 차이로 인해 단순 노동자와 관리자는 구분되고 그들 간의 갈등은 어쩔 수가 없다.


<1984>의 세상은 권력과 풍요를 누리는 소수 지배 계급과 겨우 먹을 것을 얻는 노동자 계급으로 나눠진다. 다만 지배 계급에 속한 당원들은 철저한 감시 속에 말과 행동을 억압받고, 노동자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국내 기업들의 운영 방식은 이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조직이 커질수록 경영진은 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부의 지시가 하부까지 신속히 전달되고 실행되길 원한다. 핵심 요직에 앉은 이들이 그러한 지시를 받고 전달하며 그 결과를 보고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들의 역량과 충성심은 오랜 시간을 걸쳐 검증된다. 검증이 되면 승진이 빠르고 중요한 정보를 다루며 따라서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불편한 것이 많지만 권한이 크고 급여 수준도 높다. 역량과 충성심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관리자로 승진하기는 어렵다. 언행은 자유롭지만 시간이 흐르면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관리자도 노동자도 쉽지 않은 삶이다.


역량과 충성심을 인정받더라도 압박이 강한 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한 때는 역량을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관리자로서 인정받기 위해서 애썼다. 하지만, 조직의 통제에 매여있는 삶이 갖고 태어난 기질과 맞지 않았다. 과도한 책임의식과 윤리적 경계를 넘나드는 조직의 요구가 힘들었고 그 대가로 제공되는 권한과 물질적 풍요는 큰 의미가 없었다. 


미래엔 조직을 운영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할까? 

소수의 관리자에게 권한을 집중하지 않고 개인들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위임하는 경영 방식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변화는 먼저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는 일이다. <멋진 신세계>처럼 자리에 맞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그 일에 행복감을 느끼도록 조작할 수 있다면 조직으로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가장 높은 효율과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까. 


인간을 조작할 수 없다면 타고난 기질과 성향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타고난 역량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역할을 부여하고, 최고의 팀워크를 발휘하도록 팀을 구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까지 개인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도구인 MBTI를 적용할 수도 있다. 성격유형을 연구하는 심리학이 더 발달한다면 보다 체계적으로 개인의 성향을 구분하고 관리하는 노하우가 쌓이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온다면 <멋진 신세계>에서처럼 조건반사를 통해 인간의 성향을 조작하는 일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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