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가지 인생의 법칙>과 <신의 위대한 질문> 함께 읽기
왜 선한 사람들도 고통을 받는 것일까?
유년 시절의 얕은 생각은 세상을 선과 악으로 쉽게 나눈다. 만화 영화를 보면 선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고 악은 무찔러야 할 적이다. 시간이 지나 12세, 15세 관람가 영화를 보면, 보호받아야 할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장면이 많아진다. 물론, 이때까지도 선한 사람들이 어려움을 견디고 악한 이들을 쫓아낸다. 하지만, 19세 이상 관람가 영화에서는 선한 이들이 항상 이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현실은 더 비극적이다. 특히, 20세기 인간의 역사는 비극의 연속이었다.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위안부 성노예라는 비극이 있었고, 냉전 시대에는 소련의 볼셰비키 혁명, 중국의 문화 혁명으로 인한 잔혹한 사건들도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6.25 전쟁과 광주 학생운동에서 한 없는 슬픔과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아직 생존하고 있다. 비극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우리의 삶을 혼돈 속에 빠뜨려 망가지게 한다.
“인간은 비극을 통해 성장한다. 비극은 과거의 자신을 송두리째 부인하고 희생하라고 강요한다. 그래야 새로운 자기가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가지 인생의 법칙> 저자는 우리의 삶이 놓여있는 혼돈과 질서에 대해 말한다. 질서는 신이 만들었다. 깜깜한 혼돈 속에서 우주를 창조하고 자연법칙이라는 질서를 들여놓았다. 생명의 탄생과 진화의 과정도 혼돈보다 질서가 선택되어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태초의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혼돈 속에서 살아가듯 인간이 자의식을 가지게 되면서 질서는 깨어지기 시작한다. 신이 만들어둔 울타리를 벗어나듯 의식이 발달한 인간은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간다.
생각해보면 신이라는 존재도 인간의 의식이 만든 거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이 신이라는 존재를 떠올리게 했고 신의 말씀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구원을 받고자 했다. 하지만, 이제 인간은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자의식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생겨나게 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의 삶은 과거보다 더 큰 혼돈을 가져왔다. 더 이상 정형화된 질서는 없다. 그렇다고 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그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하고 그 소리에 따라 살아가던 삶이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이라는 존재를 통해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더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신이 존재하면서 동시에 사탄이 존재하듯이 세상의 질서와 혼돈은 공존하는 거다. 양자 물리학이 빛이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라는 이중성을 긍정하듯이 우리의 삶은 질서와 혼돈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혼돈 속에 내던져진 사람에게 그런 말이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이 만든 질서 속에서 구원을 받는 것보다 질서와 혼돈을 인정함으로써 얻는 깨달음이 팍팍한 삶에 더 큰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신의 위대한 질문>의 저자는 신의 질문 속에서 우리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 말한다. 신은 우주를 창조했고 질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신의 질문은 우리를 안정된 질서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네가 어디 있느냐”는 물음은 어떤 길을 걷고 있느냐는 물음과 같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큰길 위에서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자에겐 그 길이 너의 길이냐며 묻는다. 부끄럽고 죄 많은 길은 가는 자에게 그 길이 옳은 길이냐며 추궁한다. 좁고 힘든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자에겐 외롭고 힘든 시간을 신이 함께 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이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부여한 달란트는 모두 다르다. 따라서 걸어가는 길도 달라야 한다. 다른 길을 걷는다는 건 혼돈 속에 내던져지는 것과 같다. 하지만 혼돈의 시간과 공간을 거치지 않으면 내가 가야 하는 길이 맞는지 알 수 없다. 때로는 사람들 무리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때로는 외딴 길에서 평온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친 이에게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주어진다.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확인하고 그 달란트를 사용할 수 있는 사명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주춤한다. 이전의 모든 관계와 기득권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순간은 자신만 알 수 있다. 이때 우리 내면의 목소리는 신의 목소리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자신만의 길을 찾은 자에게는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며 신이 묻는다. 이제 과거의 이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새로운 이름을 통해 새로 태어나게 된다. 그것이 거듭남이다. 거듭남은 의미 없던 삶에 의미가 생긴 것이다. 그 의미로 인해 삶은 생명에 더해 사명을 얻게 된다. 그 사명을 완수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그의 길을 밟아감으로써 새로운 길이 생긴다. 누군가는 그 길을 따라 같은 사명을 얻는다.
고통은 피하고 싶은 감각이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을 느끼며 살도록 진화되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혼돈은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는 혼돈의 과정을 통해 자신을 찾아간다. 신이 인간에게 던지는 질문, 인간이 스스로 발견한 삶의 법칙 모두가 혼돈의 과정을 긍정한다. 삶의 의미와 사명을 찾아가는 필연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영웅들의 신화를 보아도 혼돈의 과정은 항상 있었다. 안정된 곳을 떠나 세상을 경험하면서 자신만의 재능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재능을 통해 이루어야 할 사명을 찾아낸다. 사명을 통해 세상 사람들을 돕고 희생을 통해 삶을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