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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Jul 22. 2021

자영업 부모님을 둔 첫째 딸

자영업 하시는부모님들께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빠는 이미 자영업의 길로 들어서 지금까지도 장사를 하고 있으시다. 엄마도 22살 어린 나이에 아빠와 결혼을 했고 아빠의 일을 같이 도와서 하다가 막내가 태어난 뒤부터는 10년이 넘도록 아모레퍼시픽에서 방문판매 일을 하셨다. 우리 부모님은 이렇게 우리 삼 남매를 키워오셨다. 누군가는 오히려 본인 가게에서 장사를 하시니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30년 가까이 지켜봐 온바로서 절대 그렇지 않다.


어릴 적에는 아빠가 평범한 샐러리맨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막내가 태어나고 17년 만에 온 가족이 밖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을 만큼 아빠 평생에 가족과 보내는 여유란 없었다. 사장이니 하루쯤은 문을 닫고 우리와 시간을 보내주었을 법도 하지만 그러지 못하셨다. 그 당시에 아빠에게는 가족들과 보내는 여유 따위는 가질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무거우셨던 거 같다.


PC방을 운영했던 아빠


내가 고등학생이 될 무렵 동네에 아빠가 PC방을 개업하셨다. 거의 10년 가까이 운영을 하셨는데 불행 중 다행인 건 코로나 19가 발생하기 전에 일찍이 문을 닫았다는 점이다. 처음 오픈에는 너무 바빠 온 가족이 주말, 평일 시간 날 때 일을 도왔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게 상황이 점점 좋아지지 않자 24시간으로 운영하던 PC방에 아르바이트생을 줄이고 새벽 3~6시 문을 닫고 그때 쪽잠으로 버티며 지내오셨다. 고등학교 때 집에서 가끔씩 마주친 아빠를 마주하면 단 한순간도 말똥말똥한 눈을 본 적이 없었다. 늘 기운이 없으셨고 항상 잠이 부족해 우중충한 모습이었다.


그러다 20살 무렵 미국으로 떠나게 되며 가게 일을 돕지 못했는데 나의 빈자리를 대신했던 건 막냇동생이었다. 밖에서 뛰어놀기에도 바쁠 시간에 학교, 학원 끝나면 아빠 PC방으로 달려와 초등학생 때부터 그렇게 일만 하면서 지냈다. 우리 가족한테 이 시기는 막내에게 빚진 기분이다. 부모님은 오죽 마음이 더 쓰릴까 싶다. 엄마도 화장품 일에 아빠 가게까지 신경 쓰느냐 많이 힘든 나날들이었다. PC방을 했던 이 기간이 우리 가족한테는 가장 힘든 시간들이었으며 기억에 남은 아빠의 모습들이 늘 안쓰러웠다.


쉬어가도 괜찮아요


어릴 적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낡은 앨범들을 들춰보면 부모님이 서울 곳곳 안 데려간 곳이 없었다. 밤에는 호프집에서 일하시고 낮에는 쉬기에도 바쁘셨겠지만 내 두꺼운 앨범들에는 부모님의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쩌면 이 점도 첫째의 특권이었다. 그에 반면 나의 막냇동생은 어릴 적 아빠와 단 둘이 시간을 보냈던 적이 없다. 어린 시절 아빠와 유대감을 많이 쌓지 못해 아쉬움이 크지만 엄마와 내가 최선으로 막내와 시간을 보내려 해 주었다. 아빠에게 여유가 없었던 건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 여유롭지 못한 상황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그랬을 거다.


성인이 되고서야 아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나가버린 우리의 어린 시절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시간 그리고 만들어진 유대감은 성인이 돼서도 지속된다. 나와 둘째에게는 어느 정도 아빠와 보낸 시간들로 추억이 쌓여있지만 막내를 보면 마음이 많이 아리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아빠에게 돌아가 이야기해주고 싶다. '쉬어가도 괜찮다고', '우리와 더 많은 시간 보내자고' 말이다.


일에 치여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고 가족을 위해 일을 하는데 어느 순간 정말 누굴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을 정도록 지치는 순간이 올지 모른다. 아직 부모가 돼보지 않아 모든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바라는 건 그저 함께하는 시간들이다.


세상에 모든 부모님들께 이야기하고 싶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더라도 가끔씩은 내려놓도록 노력하고

가족들의 품에서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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