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절벽에 지은 성채안 죽은자의 계단
피에몬테를 떠나기 전 마지막 목적지로 사크라 디 산 미켈레(Sacra di San Michele)를 택했다. 여행 가이드북은 이곳을 알프스 초입에 자리 잡은 천 년 역사의 수도원이라 소개하며 기독교의 수호성인 미카엘 대천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웅장한 건축물이 정확히 언제, 누구에 의해, 왜 지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10세기 말에서 11세기 초 사이라는 애매한 추정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이라곤 중세 순례자들의 중요한 경유지였다는 사실뿐인데, 이런 불확실성이 오히려 이곳을 더욱 매혹적으로 만든다.
어떤 이들은 성 미카엘 대천사가 직접 이 장소를 점지했다고 믿는다. 누군가의 꿈에 나타나 계시를 주었다는 식의 이야기인데, 이런 종류의 신비주의적 설명에 대해서는 뭐라 말하기가 곤란하다. 어쩌겠는가, 나타났다는데!
다만 이곳의 지리적 위치만큼은 정말 흥미롭다. 사크라 디 산 미켈레는 프랑스의 몽생미셸, 이탈리아 풀리아의 몬테 산탄젤로와 함께 거의 완벽한 일직선상에 놓여있다. 줄로 그으면 완벽한 하나의 직선으로 보여 '성 미카엘 라인'이라 불린다. 수도원 바닥의 연한 색 돌이 이 신비한 선의 중심을 통과한다고 하는데, 그 위에 서면 특별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나 뭐라나. 7분 이상 머물면 안 된다는 금기의 속설도 있다. 내 생각에는 기다리는 뒷사람을 배려하는 영리한 거짓말 같지만.
이런 모든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제쳐두고서라도 이 수도원의 존재 자체가 경이롭다. 신에게 자신을 바치는 삶이 가장 고귀하고 사치스러운 삶으로 여겨졌던 시절의 유산이랄까. 처음 마주했을 때의 감정은 그리스 메테오라를 방문했을 때와 비슷했다. 도대체 수도사들은 왜 이렇게 험난한 곳만 골라 수도원을 지었을까 하는 의문이 솟았다. 어쩌면 신에 대한 헌신의 크기를 육체적 고난의 정도로, 산의 높이로 측정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운전하다 처음 수도원을 발견했을 때는 모두가 눈을 의심했다. "저기 보이는 게 진짜 건물인가 봐. 꼭 바위산 같지 않아?" 미 선배가 먼저 알아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다. 마치 북유럽 신화의 거인들이 바위를 깎아 만든 건물을 쌓아놓은 듯한 모습이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내 첫 반응은 "도대체 왜 여기에 지었을까?"였다.
물론 신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험지를 골랐다는 건 이해하지만, 매일 이 계단을 오르내린 수도사들의 심정이 궁금했다. '주여, 이 모든 고행을 헤아려주소서'라고 기도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여긴 불청객들은 절대 오지 못할 거야'라는 실용적인 계산 때문이었을까.
산을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고되다. 날씨가 특별히 덥지도 않고 길이 험하지도 않았지만, 저 아득한 높이에 자리 잡은 수도원을 올려다보며 걷다 보면 어느새 숨이 가빠졌다. 다행히도 주변 풍경이 이 고단함을 달래주었다. 잠시 멈춰 서서 산기슭을 내려다보면 알프스의 웅장한 산맥과 초록빛 들판, 아스라이 보이는 마을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이런 풍경을 매일 감상하며 살았다면, 수도사들의 삶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도원으로 내부의 계단 길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특히 '죽은 자의 계단'이라 불리는 구간은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으스스했다. 수백 년 동안 이곳에 묻힌 수도사들의 무덤 위를 걸어가는 셈이니까. 말 그대로 살아있는 방문객들이 죽은 자들의 안식처를 밟고 지나가는 것이다. 계단을 따라 수도원 깊숙이 들어갈수록, 이곳의 역사와 신비는 더욱 짙어졌다.
숨이 차서 잠시 쉬어갈 때마다 뒤를 돌아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마주치는 풍경은 놀랍다. 알프스의 초록빛 수사 계곡과 아래쪽의 작은 마을들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졌다.
"수도사들이 멋진 경치를 독차지하려고 여기 지은 거 아냐?"
“맞아. 이 정도면 평생 살아도 아쉬움은 없겠어.”
미 선배의 농담에 후니도 동의했다. 나 역시 동감이다. 물론 누군가 대신 계단을 오르내려 준다는 조건이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수도원 내부는 시간이 멈춘 듯했다. 거대한 석조 벽들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마저 경건하게 들린다. 특히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벽에 걸린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Intinerario di Gerusalemme)' 지도였다. 아일랜드에서 시작해 바다를 건너고 유럽을 관통해 이스라엘까지 이어지는 순례길을 보며, 중세 순례자들의 믿기 힘든 여정을 상상해 보았다. "이 길을 정말 걸었다고?"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들에 대한 연민과 동시에, 그 대단한 여정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수도원의 창문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설명하자면··· 글쎄, 이런 클리셰를 피하고 싶지만 '숨이 멎을 듯하다'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계곡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광경은 마치 IMAX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서서 신이 창조한 세상을 조망하는 기분을 만끽했다. 수도사들은 매일 이런 풍경을 보며 살았을 텐데, 자연스레 경건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물론 요즘 기준으로는 "이런 전망이면 집값이 천문학적일 텐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겠지만, 자연이 주는 경외감만큼은 시대를 초월하는 듯하다.
사크라 디 산 미켈레를 그저 '멋진 수도원'이라 부르기엔 뭔가 부족하다. 이곳은 인간의 믿음, 신앙, 고난, 그리고 경이로운 자연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하나의 서사다. 그 장엄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일까, 움베르토 에코의 걸작 <장미의 이름>의 영감이 되었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다. 실제로 이런 문학적 연관성 때문에 많은 책벌레들과 역사 마니아들이 이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고 한다. 우리야 주차장까지 차를 몰고 왔지만, 꽤 많은 여행자가 산 아래서부터 걸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진지한 순례자적 접근 방식이 멋지고 감탄스러웠다. 물론 당장 차에서 내려 걷고 싶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엔진을 발명한 천재도 멋지고 감탄스러웠다. 경탄하며 감사했다.
우리의 하루는 드디어 캠핑장에서 마무리한다. 만보계가 3만 보를 찍을 만큼 오르내리고 걸었더니 다리는 천근만근이었지만, 묘하게도 마음은 가벼웠다. 평원에 자리 잡은 캠핑장은 넓고 아름다웠다. 텐트를 치느라 한바탕 땀을 쏟은 후 캠핑 의자에 몸을 묻고 맥주를 마셨다.
바람이 불면서 하늘을 마치 우리를 위해 준비한 듯한 완벽한 노을로 물들였다. 벅찬 마음에 수도원들을 떠올렸다. 수도사들과 순례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움직인 하루였다. 우리는 그에 합당한 마무리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오늘을 겨우 맥주로만 마무리하는 건 옳지 않아."
"맞아, 수도사들은 분명 와인을 마셨을 거라구."
마트에서 구입한 3유로짜리 와인을 나누는 동안 하늘에 별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충분히 경건한 마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