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몰락과 무의미

#25

by 빨간우산

인류가 그동안 쌓아놓은 문명의 탑은 쌓아올릴수록 저마다 다른 위를 향하는 탓에 하늘을 가릴 지경에 이르렀다. 두터워진 지붕은 그 무게를 지탱하느라 곳곳에 균열이 나기 시작했고 결국은 여기저기 무너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무너짐의 반경과 속도란 엄청난 것이어서 지금까지 쌓아올린 그 모든 노력을 한꺼번에 비웃을 만 했다.

우리는 지금, 3,000년 지구촌이 쌓아올린 문명의 추락 한가운데 살고 있다. 지구가 엄청난 속도로 스스로를 회전시키고 태양 주위를 돌기위해 전속력으로 질주해도 그 안의 생명체들이 그 속도를 인지하지 못하듯, 무너지는 문명의 속도를 우리는 체감하지 못한채 여느 날과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다만 그 몰락의 파편들을 뉴스에서 거짓말처럼 확인할 뿐.

인간이 믿었던 모든 믿음의 체계들은 가장 처음의 밑바닥부터 부서져나가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무의미 속으로 던져지는 혼돈의 경험이기도 하다. 인류는 이제 무의미라는 자유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지만, 직립 보행과 언어의 발명 이후 처음 경험해 보는 이 낯선 무의미의 경험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뤄야 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다. 결국 선택한 출구는 감각과 가상이라는 밑 빠진 독이다. 하지만 이 밑 빠진 독은 우리에게 아무런 성취도, 의미도 가져다주지 못했고 그러기에 밑 빠진 바닥 위에 서는 것처럼 불안하고 공허했다. 그 불안과 공허는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또 다시 감각과 가상의 독 밑바닥으로 기어들어갔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침몰시키는 밑빠진 독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그리고는 무엇을 찾고 어디에 기대어 우리 앞에 펼쳐진 이 황량한 혼돈과 무의미를 헤쳐갈지 고민해야 한다. 21세기, 인류에게 닥친 재앙은 불평등, 환경, 전쟁 등 다양하지만 그 모든 재앙보다 더 큰, 그리고 그 모든 재앙의 향방을 결정할 재앙은 바로 '무의미'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대상과 방향을 잃은 분노와 혐오, 누구의 무엇을 위한 것도 아닌 갈등과 분쟁만이 끝없이 계속될 것이며, 그 가운데 인류는 고립과 외로움 속에서 닫힌 개인으로 말라갈 것이다.




이러다 다 죽어

- 황동혁, [오징어 게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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