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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게임

게임이 아닌 삶을 살기 위하여

by 빨간우산

인간에게는 여러가지 욕망이 있다. 인간은 그 욕망들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한 평생을 보내며 그로 인한 희로애락으로 삶의 질이 좌우되기 마련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그 욕망들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만족스럽게 채웠느냐로 행복의 정도를 가늠하곤 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욕망이란 결코 만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욕망의 그릇이란 채우면 채울수록 더욱 커지기 마련이라 오히려 그 만족의 정도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반대로 안간힘의 노력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어찌보면 인생의 운명적인 모순이자 비극적인 딜레마와도 같은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러한 욕망의 모순이란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어서 부자도 빈자도, 권력자도 노예도, 유명인도 소외된 자도.. 그 누구도 이 인생의 안간힘을 피해갈 수는 없다. 인생이 게임에 비유되는 건 아마도 이런 욕망의 구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게임의 주관자이자 동시에 참여자가 된다.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게임의 룰을 피해갈 수 없는걸까? 그 안에서 허우적대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의 방식일까?삶에서 질문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가 삶에 관한 질문을 다시하고 목표를 다시 설정한다면 이 지독한 게임의 룰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 삶의 목표를 '얼마나 많은 욕망을 얼마나 많이 채울 수 있을 것인가?'에 두지 않는 것이다. 욕망 만족는 '정도'에 두지 않는 것이다. '어떤 욕망에 만족할까'에 두는 것이다. 그러니까 욕망을 채우려하지 말고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삶의 목표를 욕망의 '선택' 자체에 둘뿐 채우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욕망이든 완전히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것을 목표로 삼는 순간 게임의 룰은 작동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욕망을 선택할 뿐, 만족에 실패한다 하여 좌절하지 않아야 한다. 그 욕망의 구조를 인정하고 그저 욕망을 선택하고 적당히 추구하는데 의미를 두는 것이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선택'이지 '만족'이 아니다. 어떤 욕망을 추구할지 선택하는 그 자체에만 의미를 두어야 한다. 오직 그럴 때만이 만족되지 못한 욕망은 삶의 실패가 아니며 좌절이 아닐 수 있다.

정리하자면,
삶을 살아가는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욕망의 범위와 만족의 정도에 있지 않다. 어떤 욕망을 추구할 것인가에 있다. 그러니까 욕망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 선택한 욕망이 끝까지 채워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체념이 필요하다. 어떤 욕망이든 끝까지 채우려고 덤벼드는 순간 끝나지 않는 게임의 룰은 다시 작동되며, 우리는 욕망의 게임 안에 다시 갇히게 된다.

결국 삶이란 어떤 욕망을 선택하고 추구하는가에 있다. 그리고 삶의 의미란 욕망은 만족되는 것이 아니며 그저 추구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아는 데 있다. 그것이 삶이 의미하는 모든 것이며, 삶이 게임이 되지 않는 유일한 탈출구이다.

그렇다면, 삶의 의미를 위한 질문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욕망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무엇을 욕망할 것인가?
왜 욕망하는가?

이 질문 앞에 우리의 인생은 게임이 아닌, 삶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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