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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우산 Apr 06. 2022

결국엔, 라면

라면을 행복하게 먹는 법에 관하여

 라면(아무거나) + 고기육수 + 파 + 후추


요리를 좋아하고 여러 나라의 여러 가지 음식을 많이 해 먹지만(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어떤 맛난 요리, 고급 요리를 해보아도 결국 제일 맛난 음식은 '라면'이다. 사실 매일매일 메뉴를 고민하고 매 끼니를 해 먹으면서도 라면을 일주일 내내 기다리게 되는데, 라면을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유혹을 자제하기 위해 일주일 한 끼로 제한했기 때문. 게다가 소화기관이 좋지 않아 인스턴트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하고 배가 아프기도 해서(그중에서도 라면이 제일 그렇다. 대체 라면에 뭘 넣은 것인지) 규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일주일 한 끼의 라면을 정말 '잘' 먹기 위해 나름의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다. 첫째, 고기육수를 사용한다. 닭, 돼지, 소, 어떤 고기의 육수든 괜찮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역시 돼지고기 육수가 제일 맛난다.(아마도 돼지기름 때문이겠지) 사진은 얼마 전 부타노 가쿠니(일본의 대표적인 가정식 돼지고기 조림 요리)를 위해 끓여둔 돼지고기 육수를 사용했다. 파, 생강과 같이 1시간 반이나 끓여낸 육수라 풍미가 더 진하다. 육수가 스프 이상으로 라면 맛의 큰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그래서 라면은 아무것이든 상관이 없다. 라면 고유의 스프 맛보다 돼지고기 육수의 풍미가 더 진하게 느껴질 정도. 둘째, 포함된 스프 외의 야채는 '파'만을 넣는다. 버섯이나 양파, 마늘 등을 넣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다.


그냥 최대한 라면 스프 원래 그대로의
조미된 맛이 좋다.


파는 그 맛을 해치지 않는다. 셋째, 계란은 넣지 않거나 넣더라도 터뜨리지 않는다. 역시 두 번째와 동일한 이유다. 계란을 풀면 더 고소해지겠지만, 라면 스프의 짭짤한 조미된 맛은 흐려진다.


돼지고기를 대파, 생강과 함께 1시간 반 동안 우려낸 육수


세 가지에 걸쳐 얘기했지만 결국, 가이드라인은 하나다. 고기육수를 사용하고 스프 외에 다른 재료는 넣지 않는다는 것. 고기육수와 라면스프와의 합을 즐기기 때문에 그래서 라면은 종류를 그다지 구분하지 않고 가급적 제일 싸거나 세일 중인 것을 산다. 간혹 특별한 맛을 내는 종류의 라면(참깨라면, 오징어짬뽕 등)이 있는데 그런 것은 사지 않는다.


평상시 그렇게 이것저것 메뉴를 고민하고 재료를 장만해서 요리를 해보아도 결국 라면을 이길 수 없다는  뭔가 좀 서글픈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인간의 혀란 그렇게도 단순한 것인가, 싶어서 말이다. 뭐, 어찌 되었든 그래도 라면을 먹을 수 있는 휴일 아침은 지루한 일상에 정말 큰 기쁨이 된다. 사실 먹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갈 뿐이고 정말로 행복한 때는 라면을 먹기로 한 전날 밤 공복을 움켜쥐고 인내하며 다음 날의 라면을 떠올려보는 그 상상의 시간들에 있다. 결국 행복이란 결핍이 빚어내는 상상에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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