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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우산 Dec 25. 2023

OTT의 습격

잭 스나이더, <레벨 문>

바야흐로 OTT의 시대다. 영화도 드라마도, OTT에서 기획, 제작부터 홍보, 유통까지 전 영역을 아우르며 주도권을 쥐고 통제한다. 소비자는 편하다. 집 안에 누워 리모컨 하나만으로도 최신 영화, 블록 버스터부터 영화제 수상작, 오래된 숨은 명작, 사람들에게 꾸준히 추천되는 작품까지, 손쉽게 즉각 볼 수 있다. 요즘은 집 안의 스크린, 오디오 시스템이 잘 돼있는 터라 극장에서 보는  듯한 스케일과 몰입감도 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극장과 비디오 대여점의 장점을 집에서 한 번에 누릴 수 있는 편리한 환경이다. 게다가 그 모든 혜택에 대한 비용이 극장에서 보는 영화 한 편 값이 되지 않는다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OTT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좋은 점만 있을 리는 없다. 소비자의 편의성과 가성비 측면에서야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만, 사실 그 편의성과 가성비를 제외한다면 문제점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그것도 치명적으로.


영화와 드라마 산업(줄여서 영상 산업) 구조에 미치는 영향이 아마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OTT에 의한 대규모 투자가 가능해진 조건은 블록 버스터의 양산을 용이하게 하지만 대신 흥행과 오락 위주로 편향되는 경향을 초래한다. 작품이 투자의 논리에 종속되는 것. 하지만 사실 이런 문제는 할리우드 영화 시스템을 비롯하여 각국의 모든 영화 산업이 안고 있는 오래된 문제이고 OTT가 그 경향을 좀 더 가중시키고 있지만 전적으로 OTT 시스템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영상 산업 내에서 제작과 유통에 관여하는 개인, 집단의 역할과 자유도가 축소되고 하나의 거대한 기업(OTT)에 의해 전 과정이 좌지우지되는(심지어 예술적 역량을 좌우하는 연출의 영역까지), 그래서 영상 산업 내에 종사하는 각종 개인과 단체가 그 창의력과 예술성을 잃어 가고 한 기업의 몸짓 불리기를 위한 도구로 전락되는 경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편한 만큼 점점 더 OTT 서비스에 익숙해져 가고 그에 따라 OTT는 점점 더 많은 권력과 통제력을 행사하며, 영상 산업에 종사하는 아티스트들은 하나의 부품처럼, OTT에 종속된 노동자로 기능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산업적인 측면 외에 OTT가 근본적으로 영상의 질에 미치는 영향이 있으니 그건 바로 작품의 예술성을 희생하여 오락물로 최적화시키는, 영상의 공장식 생산체제에 따른 전반적인 영상물의 질적 하락에 있다. (이러한 면은 OTT에 의한 영상 산업 구조의 변화와 당연히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그리고 이러한 영상물의 질적 하락의 한가운데에는 서사의 파괴와 인물의 평면화, 주제의식의 축소와 볼거리의 과잉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영상 제작 행태는 오늘날 디지털, 소셜 미디어를 통한 영상 시청 습관과 무관하지 않다.


할리우드의 블록 버스터 양산, 자본의 논리에 따른 재미 위주의 영상 기획과 제작과 같은 상업주의 편중 현상은 사실 자본주의 시장 원리에 따라 경제 시스템이 작동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라면 피해 갈 수 없는 문제이다. 게다가 창작이 개인에 의해 이루어지기 어려운, 대규모 자본을 필요로 하는 영화, 드라마와 같은 제작물에서는 흥행 여부가 어쩔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이 따라붙는다. (최소한의 제작비라도 건지기가 쉽지 않으며, 제작의 규모가 큰 만큼 손실의 규모 또한 크다) 하지만 영화 산업이 탄생한 이래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는 창작자들의 열정과 의지로 혹은 여러 가지 다른 제작 환경의 모색으로 상쇄해 온 측면이 있다. 여러 개인과 간체의 노력이 가장 주요했겠지만, 한 편으로는 한 두 편의 블록 버스터 흥행으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예술성과 주제 의식에 치중한 작품들에 투자하는 방식은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의 균형을 맞추는 대표적인 방식이 되어 왔다. 영화제를 통해 우수한 작품들에 상을 수여하고 이를 대중들에게 알려 관람을 권유하는 방식 또한 그러한 건강하고 균형 있는 영화 산업 발전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균형을 이룬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대규모 투자로 제작된 블록 버스터는 화려한 기술과 호화로운 볼거리로 관객들에게 판타지와 재미를 제공하고 영화적 상상력과 재현 방식의 경계를 확장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조명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업 영화건 예술 영화건 영화, 드라마라는 매체는 어떤 주제 하에 인물들이 겪는 사건 혹은 관계들의 연쇄를 통해 이야기를 엮어내고 관객들에게 의미 있는 시청 경험을 제공한다는 면에서는 같은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그것은 '이야기'라는 형식 안에서의 다뤄지는 내용이고 재미와 의미 중 어떤 면을 더 부각할 것인지는 흥행과 예술성 중 어디에 무게를 실을지를 판단하는 문제였다.


하지만 영상을 시청하고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에, 그리고 이러한 환경에 최적화된 OTT 플랫폼이 영상의 기획과 제작의 전 영역을 통제하는 시대에, 영화와 드라마는 더 이상 '이야기'로서의 형태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그것은 '이야기'라기보다는 이야기의 외피를 두른 '스펙터클'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상업영화, 예술영화의 차이와는 다른 문제이다. 그래서 상업 영화, 블록 버스터를 기준으로 비교해 봐도 그 차이는 드러난다. 즉 예전의 블록 버스터들('스타워즈', '타이타닉', '반지의 제왕'과 같은)을 보면 그 영화들에는 갖가지 상상력의 요소들, 거대한 스케일의 압도적 화면, 전쟁과 싸움의 액션과 스릴 등 눈이 즐거운 볼거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지만, 그러한 볼거리들은 영화 속에서 이야기라는 흐름, 그리고 인물들의 내면적, 관계적 갈등의 맥락에 부합하도록 배치된다. 그러니까 볼거리 요소들은 어떠한 하나의 구조(이야기의 전개, 인물의 관계 등) 내에서 적절한 위치를 차지하고 전체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전개, 갈등과 화해의 맥락에 적합하도록, 혹은 그러한 이야기 맥락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등장했다가 물러나는 형식을 취한다. 때론 볼거리를 보여주려는 과욕으로 인해 이야기의 맥락이 부자연스러워지거나 비약 또는 축소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영화들도 등장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그만큼 작품의 질이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그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도 크게는 흥행하지 못하거나 매니아적으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분노의 질주> 시리즈들의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그 시리즈들은 모두 전적으로 '질주'를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이와 달리 대형 블록 버스터의 경우에는 볼거리를 보여주는데도 충분히 주력하면서도 이야기의 주제 의식과 전체 흐름을 놓치지 않고 영화적 완성도를 유지해 낸다. 그렇기 때문에 블록 버스터 영화들이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타는 경우도 종종 있어 왔으며 '상업영화 = 질 낮은 영화'로 여길 수만은 없었다. (영화의 완성도라는 것은 단지 주제의식의 깊이나 예술성 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문제이다. 오락 영화를 하나의 이야기로서 잘 만드는 경우에도 그 완성도 면에서 작품성을 충분히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예전의 블록 버스터들


하지만 요즘의 블록 버스터, 정확히는 OTT가 주도하는 블록 버스터는 예전의 블록 버스터와는 분명히 질적으로 다른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차이는 '서사의 붕괴' 또는 '스펙터클의 나열'로 설명할 수 있다. 필자는 얼마 전부터 OTT가 주도해서 제작한 영화, 드라마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아쉬움이 있었고, 그것은 단순히 제작진의 연출 역량 또는 의도의 문제라고 여기고 각 영상을 개별적으로 판단해 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아쉬움의 실체, 즉 아쉬운 영화, 드라마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문제점'이라기보다는 '치명적인 결함' 같은 것이었는데, 이야기의 전개를 위한 최소한의 설명 또는 사건이 너무 불충분하고 빠르게 진행된다거나, 그 작위성이 너무 짙다는 것이었고 그 가운데 인물들은 아주 평면적이고 납작하게 축소된 채 인형 같은 '역할'로서만 기능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인물이 겪는 내적 갈등이나 그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동기 또는 개연성, 그리고 인물 간의 관계가 부딪히고 대립하며 화해하는 등의 변화의 섬세함 따위는 거의 신경 쓰지도 않는 듯 방치된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어떤 인물(심지어 주인공)에게도 감정 이입을 하기 어렵고 인물을 따라가지 못하니 당연히 이야기 전체의 맥락도 고조와 몰락의 흐름에 빠지기보다는 기계적으로 줄거리가 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줄여서 말한다면 인물은 살아있지 못하고 사건은 나열되어 이야기의 작위성이 부각된다. 이러한 이야기의 작위성은 몰입을 방해하고 재미와 감동 또한 축소하고 마는데, 그렇게 식어버린 마음으로 시청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눈이 즐거운 볼거리, 즉 스펙터클이다. 그리고 그 스펙터클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그 분량이 많고 그것들이 등장하는 신들도 특별히 어떤 개연성을 가지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나열된다. 마치 백화점에서 아이 쇼핑하는 기분으로 신상 물건들을 훑어보는 시청 경험이 강요된다고나 할까. 혹은 유튜브에서 액션 짤들을 모아서 보는 느낌이랄까.


스펙터클이 주인공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처음에는 OTT가 오락영화의 오락성에 너무 치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며 안타까워했지만 많은 댓글들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알게 된  것은 그것이 단지 OTT 제작 시스템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스펙터클이 나열된 시청 경험을 더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스펙터클의 과잉과 나열이 그들에게는 '재미있다'라는 시청 경험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 소비 경향과 맞닿아 있다.


이렇게나 장황하게 길게 이야기했지만, 결론은 단순하다. (전개의 과정보다는 결론을 빨리 알고 싶어 하는 요즘 사람들의 경향에 편승해서 말해보자면) 더 이상 영화의 주인공은 인물과 사건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의 흐름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아닌 볼거리의 스펙터클이다. 스펙터클이 주인공이며 인물과 사건이 오히려 주변부, 배경으로 밀려난다. 인물들이 문제를 겪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사건을 맞닦드리면서 펼쳐지는 요소들 중 하나가 스펙터클이 아니라, 다양하고 화려한 스펙터클을 보여주기 위해 인물이 있고 사건이 배치되고 이야기는 흐름과 반전을 맞는다. 그런데 주인공이 스펙터클이다 보니 나머지 요소의 개연적 흐름, 맥락의 자연스러움은 중요하지 않게 되며 신경 써 안배되지 않는다. 스펙터클을 보여주기에 편한 방식으로, 그리고 그에 맞춰 이야기는 빈약한 설명과 급작스러운 비약으로 덜컹거리며 이어진다. 그래도 큰 문제없다는 식으로 뻔뻔하게. 최소한의 기승전결의 상승과 화해의 앙상한 구조만 남긴 채 나머지 이야기 요소는 극도로 희생되어 초라하게 스펙터클을 위한 배경으로 전락한다. 인물은 인형처럼 기능하고 사건은 기계적으로 나열되며 그 가운데 흐름의 맥락은 파괴된다. 그래도 상관없다. 중간중간 삽입된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객은 그러한 스펙터클로 충분히 즐거울 것이다. 제작사는 흥미로운 스펙터클을 보여주었고 관객은 흥미롭게 소비했으니 서로 잃은 것은 없다. 그렇게 영상에는 '성공'이란 딱지가 부착된다.


하지만 이러한 영상 관람 경험을 '체험'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시청'이라고도 '관람'이라고도 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나열된 스펙터클을 보는 행위는 어찌 보면 '구경'에 가깝다. 혹은 'eye-shopping'과도 그 맥락이 유사하다. 'eye-seeing'이라고 해야 할까. 더 가까운 말이 있다. 그것은 '소비'다. 소비는 그 순간 스펙터클의 재미를 '소비'하고 그렇게 소비한 경험의 감흥은 그 순간 휘발된다는 의미에서 소비다. 영화를 보고 나면 '재미있었다'는 희미한 자극된 흥분만이 남는다. '무엇이 어떻게 재미있었는지'는 눈 표면의 잔영으로만 남는다. 그렇게 오늘날 영화는, 드라마는 체험되었다기보다는, 소비되었다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OTT는 그렇게 영상을 소비하는 오늘날의 디지털 소비자들에게 최적화된 '스펙터클 소비형 영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블록 버스터가 예전의 그것과 다른 점이며 오늘날, 그리고 이후로 영상 산업이 짊어져야 할 숙명이 될 것이다. 그것은 이야기의 위기를 넘어, 이야기의 파편화, 서사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덧.


본래는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작품 <Rebel Moon>과 <Star Wars>를 비교하며 예전의 블록 버스터와 오늘날의 스펙터클 소비 영상을 비교하고자 하였지만, 이야기 흐름과 스펙터클 요소에 대한 위 설명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스타워즈가 볼거리의 스펙터클을 하나의 영화적 요소로 잘 활용하여 완성도 있는 이야기를 빚어냈다면, 레벨문은 스펙터클을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와 인물의 형상화를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희생한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우주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라는 동일한 소재로 인해 스타워즈의 뒤를 잇는 거대한 스케일의 명작 시리즈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시청했으나, 실망감으로 인해 그 원인을 곰곰이 분석해 보는 와중에 위 글을 쓰게 되었다.



감독: 잭 스나이더

극본: 잭 스나이더

출연: 소피아 부텔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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