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전기를 다룬 영화에 있어, 예술가의 어떤 면을 선택하여 어떻게 재현하고 그의 삶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는 각본과 연출의 몫이며 그들의 선택과 시선에 따라 그 또한 또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탄생될 수도, 혹은 단순한 오락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술가의 전기를 다룬 책과 영화는 많지만, 예술가의 재현에 (예술가의 입장에서) 정당하고 균형 있는 시선을 부여하면서도 그 재현의 미학 자체에서 훌륭한 예술성을 성취한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미국 최초의, 그리고 아직도 가장 추앙받는 전설적인 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의 삶과 예술을 재현한 브래들리 쿠퍼의 <Maestro>는, 예술가를 바라보는 진실된 시선과 아름다운 재현의 성취를 동시에 갖춘 예술로서의 전기 영화의 수준에 도달한다. 특별히 이 영화는 한 인물을 바라보는 편견의 굴레를 가볍게 벗어던지면서도 거꾸로 인물에 대한 과도한 찬사의 우상화에 빠지지 않는, 균형감 있으면서도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밸런스가 훌륭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번스타인은 역사와 대중들에 의해 포장된 과장과 편견에서 자유로운, 고뇌하고 분투하는 예술가이자 욕망과 우울에 휘둘리는 한 인간으로 다시(비로소 제대로) 태어난다. 그렇게 후대 예술가의 노력에 의해 한 예술가는 그가 일생토록 감당해야 했던 편견과 질시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비상한다. 예술가를 한 인간으로 다시 살게 하고, 정당하게 온전히 예술가로서 기억되게 하는 것 또한 예술가의 몫이다.
전기 영화는 관점과 시선의 선택과 부각에 따라 그 진실성과 작품성이 결정된다
이 영화는 그의 일대기를 그 시대에 맞는 영상 기술로(흑백 화면, 화면 비율 등) 팩트에 근거하여 주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재현하는데 충실하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번스타인이라는 지휘자이자 한 인간을 잘 모르는 관객들에게도 친절하게 다가가는 영화다. 전기 영화의 1차적 목적, 즉 사실에 근거한 일대기 재현만으로도 이 영화는 인물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데 성공한다.(어느 예술가나 그렇듯 그의 인생 자체가 파란만장하므로) 그리고 전기 영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 그 인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어느 측면에, 그리고 어떤 시점에 고정하여 볼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 이 영화는 상대적으로는 예술가로서 보다 인간으로서의 번스타인에, 그리고 사회적이고 외면적인 측면보다는 그의 부인과 가족을 중심으로 한 내면과 인간관계의 측면에서 그를 탐구한다. 망원경보다는 현미경에 가까운 거리라고 할 수 있지만, 균형 있는 시선이라는 이 영화의 장점답게 그의 내면과 사생활을 내밀하게 따라가지만 사회적으로 보여지는 그의 모습과 예술가로서의 외연적 성취라는 먼 거리의 시선 또한 적절히 안배한다. 또한 한 인간을 바라봄에 있어 사회적 편견과는 과감히 결별하고, 긍정과 부정의 평가에도 매이지 않으며, 전기 영화가 빠지기 쉬운 도덕적 판단과 영웅적 윤색의 가면 씌우기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객관적이면서도 진실된, 편향되지 않는 시선을 견지한다는 데서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과 예술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영화는 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벗기려고 애쓰지 않으며 그래서 편견의 반대편에 서서 그것을 가리거나 덮기 위해 포장된 가면을 씌우지도 않은 채, 애초부터 그런 편견이나 우상화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듯이(편견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는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는 듯이) 직설적으로 '번스타인'이라는 한 인간으로 직진해 들어간다.
전기영화로서 영화의 시선이 가진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그의 인생을 오로지 그를 중심으로만 재현하지 않고 그의 평생의 반려자였던 부인 '펠리시아'와의 관계를 고정된 시선의 축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그를 단지 독립된 한 예술가로서가 아닌 주변 사람에 의지하여 성장하는 연약한 인간으로서 조명하는데 기여한다. 이러한 특징은 그의 삶이 예술가로서는 고독할지언정, 한 인간으로서는 주변 인물과 가족, 특히 부인 펠리시아와는 떼어서 볼 수 없다는 면에서 중요하게 취급된다. 영화는 번스타인과 펠리시아의 만남으로 시작해서 헤어짐으로 막을 내리며, 번스타인의 전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부인 펠리시아가 주인공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면에서(영화가 끝나고 올라오는 크레딧에서 펠리시아 역할의 '케리 멀리건'은 '브래들리 쿠퍼' 보다 상위에 위치한다), 그리고 그녀의 삶과 고뇌 또한 놓치지 않고 세심히 살피고 있다는 면에서, 둘의 관계의 환희와 성장, 갈등과 화해가 영화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번스타인의 전기 영화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둘의 로맨스 혹은 인간 관계에 대한 성찰의 영화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번스타인의 전기 영화이자 번스타인과 펠리시아의 로맨스 영화
이 영화는 단지 인간적 고뇌와 관계, 사생활에만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은 그가 작곡한 미사곡을 지휘하는 롱 테이크 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연주 신은 그의 음악을 긴 시간 동안 관객이 감상하고 그의 예술적 면모를 응시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한 편으로는 부인 펠리시아와의 갈등이 파국에 이르기 전 그녀와 극적으로 다시 화해하게 되는 정점의 국면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그의 인간적인 갈등과 고뇌가 예술적으로 승화되어 감정적 정화와 고양된 사랑으로 보여지는 상징적인 장면이자 감동적인 순간으로 그려진다. 영화는 이 장면 전까지는 번스타인의 예술과 삶, 사랑이 제각기의 영역에서 분투와 고뇌를 겪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면, 이 장면에 이르러서는 그의 삶과 사랑의 갈등과 고뇌가 하나의 예술적 성취의 사건으로 융화되고 숭고한 예술의 영역으로 용해되어 해소되는 카타르시스를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그가 맞이하는 환희는 그의 웅장하고 감동적인, 천상의 선율과도 같은 음악과 하나가 되어 관객에게 아름다움을 넘어 숭고한 감동을 선사한다. 어쩌면 이 영화는 이 한 신을 위해 달려오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이 장면은 전기 영화의 역사에서도 기억될 만한, 예술가의 빛나는 순간을 담은 최고의 장면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연주가 끝나고 펠리시아가 번스타인을 먼 거리에서 바라보며 안도와 기쁨의 표정으로 내뱉는 한 마디는 매우 인상적이다.
그래요, 당신은 증오를 넘어섰어요.
후반부 미사곡 지휘 신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라 할 만하다
한 마디로 이 영화는 한 예술가의, 한 인간의 삶과 예술과 사랑의 모든 것을 균형 있고 충실하게 담아낸 전기 영화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번스타인의 말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삶의 진실에 다가가고 예술적 시선을 가지고자 한다면, 번스타인의 이 말은 꼭 마음에 담아두고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술작품은 답을 주는 대신 질문하게 하며 상반된 답들 사이에서 긴장을 유발하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