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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우산 Jan 11. 2024

클리셰에 갇힌 두 이야기

게빈 오코너, <더 웨이 백>

영화를 위해 살을 찌운 벤 에플렉의 연기를 보는 맛이 있는 영화. 스스로를 포기한 채 아무 의미 없이 인생을 흘려보내고 있는 한 남자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좌절하고 분투하면서도 다시 쓰러지는 과정을 따라가며 담아낸 영화.


스스로를 포기한 채 살아가는 중년 남성의 이야기 (벤 에플렉)


오합지졸의 망가진 스포츠 팀의 감독직을 맡게 되면서 포기한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울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반복되었을 그 자체로 클리셰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스포츠 팀보다는 개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면서 클리셰 극복을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다만 클리셰가 클리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요인, 즉 스포츠 팀을 관객에게 소개했으면 그들이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성장과 성취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클리셰의 정수는 끝내 포기하지 못함으로써, 그로 인해 한 남자(감독) 개인의 인생사와 내면에 초점을 맞춘다는 이 영화의 전략은 그것대로 힘을 잃고 분산됨으로써, 결국은 양날의 검에 모두 베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분량과 서사가 축소된 스포츠 팀은 그것대로 애매한 자리에서 엉거주춤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이어가면서도, 주인공의 분투와 좌절의 이야기는 또한 그것대로 방황하는 내면의 밀도 촘촘하고 섬세하게 그려내지 못한 채, 역시 클리셰의 전개에 멱살을 잡히듯 끌려간다. 두 클리셰의 이야기가 각기 차별화를 시도하지만 결국에는 각자의 클리셰로 빨려 들어가며 그 힘을 잃고, 결과적으로 클리셰가 가진 최대의 장점인 기대에 부응하는 감동이라는 전개에도 전적으로 화답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개인과 스포츠 팀 각자가 난관을 극복하고 성장을 일구어낸다는 구도로 포장되었지만, 그것은 설득력을 잃은 포장을 위한 포장이 되어버린 느낌.


보는 내내, '나는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라는 너른 마음으로 영화가 내 마음에 들어올 길을 터 넣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야기는 입구에서 스스로 제풀에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심한 듯 진한 연기를 보여준 벤 에플렉에게 박수를.




각본: 브래드 잉겔스비

감독: 게빈 오코너

출연: 벤 에플렉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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