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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우산 Apr 19. 2016

태양의 후예는 로맨스 드라마가 아니다.

김원석과 김은숙의 공동집필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끝이 났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송중기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총선마저도 묻어버릴 만큼 사람들 사이에 가장 핫한 뉴스로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김은숙 작가는 국내 최고의 로맨스 작가라는 타이틀을 여전히 지켜내며, 아니 이전의 어떤 작품도 뛰어넘는 인기를 구가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확고히 굳혔다. [파리의 연인]으로부터 시작된 그녀의 필력은 [프라하의 연인]과 [연인]의 연인 3부작을 거쳐 [온에어], [시크릿 가든], [신사의 품격], [상속자들]까지, 지난 10여 년간 대한민국 로맨스 드라마의 흥행을 모두 책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사실 그녀의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그다지 특이할 것 없는 전형적인 로맨스의 스토리라인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유독 그녀의 작품만 크게 히트하는 데는 뭔가 남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분석을 해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가장 큰 이유를 '진심을 표현하는 대사'로 꼽는다.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작품들


김은숙 작가의 모든 작품에서 언제나 등장하는 그 오글거리는 대사 말이다. 그 오글거림이란 평상시 내뱉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달달함으로 무장하고 있어, 비로소 발화되었을 때의 그 맛을 대리체험하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그 카타르시스가 김은숙 작가가 인기있는 비결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사실 여느 작가라면 누구라도 그 정도의 달달한 대사 표현은 누구나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김은숙표 달달함에는 그저 달달한 표현 이상의 뭔가를 담고 있는건 아닐까. 우선, 그녀의 대사들은 '달달함을 듬뿍 담은 오글거리는 대사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겠어!'라는 의도만으로 나올 법한 멘트는 아닌 듯하다. 그리고 그렇게 의도한 표현이란, 결국 오글거림 그 자체만을 남기게 마련이다. 그걸 우리는 '유치함'이라고 말한다. 드라마가 드라마가 될려면 그 유치함을 넘어서는 감동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란 표현 그 너머에 있다. 가령 이런 대사들을 보자.


"나쁜 일 당했다는 생각은 안 했으면 합니다. 천 번쯤 생각하다 한 번 용기 낸 거니까."


"무슨 짓을 해도 생각나던데. 몸도 굴리고 애도 쓰고 술도 마시고 다 해봤는데 그래도 너무 보고 싶던데."


개인적으로 가장 로맨틱했던 장면


확실히 '천 번쯤 생각하다 한 번 용기 냈다'는 말은 닭살이 마구마구 돋을 만큼 달달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대사가 오글거림을 넘어 감동으로 전해지는 건 그 앞 대사의 힘이다. '나쁜 일 당했다는 생각은 안 했으면 합니다.'


두 번째도 마찬가지다. 굳이 별로 달달거리는 표현의 기교는 없다. 그보다는 '그래도 보고 싶다'는 정공법의 표현이다. 역시 감동을 이끌어 내는 건 단지 보고 싶음의 강도나 호소가 아닌, '무슨 짓을 해도 생각나던데'의 읊조림에 있다. 태양의 후예를 열혈로 시청했던 시청자로서, 처음에는 민망할 정도로 오글거렸지만 이내 눈물을 쏟는 감동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이 이상하게 신기했다.


왜 그럴까, 저런 전형적인 대사일 뿐인데.라고 갸우뚱해봤지만 마음은 벌써 움직이고 있다. 그건 바로 상대를 한 사람의 인격으로서 존중하는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슨 짓을 해도 생각난다는 건 당신을 잊으려고 발버둥 쳤다는 얘기고 그건 고백이 아닌 사과를 선택한 그녀의 말에 대한 전적인 이해와 존중을 전제로 한다. 어떻게든 널 손에 넣고야 말겠어, 하는 욕심의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욕심이 아니라는, 사랑은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감정이라는.
그것이 사랑의 진심이라는.


이것이 작가 김은숙의 사랑에 대한 철학이고, 그 철학을 담기에 그녀의 드라마가, 그 오글거리는 대사가, 유치함이 아닌 감동으로 이어지는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의 후예]라는 작품은 이전 그녀의 작품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 다른 지점은 두 가지 면에서 쉽게 찾을 수가 있는데,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사랑'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이전과는 다르게 공동집필 작가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김은숙 외에 '김원석'이라는 작가가 존재하고,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사랑이 아닌 '명예'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지점은 같은 맥락에 있다.


사실 나는 김은숙 작가의 이전 작품들을 그렇게 열광해서 볼만큼 몰입하진 못했다. 로맨스 드라마에 열광하기에 나는 성별도 나이도 확실이 겨냥된 타겟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만은 예외였다. 초반부터 엄청나게 빨려 들어갔고 매회를 긴장과 감동 속에서 마음을 졸이며 감상했다. 그것도 매번 두세 번씩 반복 시청을 할 정도로. 하지만 회가 점점 거듭될수록 그때서야 내가 이 드라마에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그 비밀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건 이 드라마가 로맨스의 외관을 하고 있지만, 가슴에는 명예라는 가치에 대한 뜨거운 열망과 찬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령 로맨스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감동을 주는 대사들을 보자.


"아이와 노인과 미인은 보호해야 한다는 믿음,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고딩들을 보면 무섭긴 하지만 한소리 할 수 있는 용기, 관자놀이에 총구가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닌 상식, 그래서 지켜지는 군인의 명예, 내가 생각하는 애국심은 그런 겁니다."


"저는 의사입니다. 생명은 존엄하고, 그 이상을 넘어선 가치나 이념은 없다고 생각해요. ... 이상의 서약을 나의 자유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하노라."


"책임진다는 얘기는 군복을 벗을 수도 있다, 그 말입니까?"

"명예롭다면, 언제든지."


정치와 명예가 대립하던 명장면


사실, 명예가 들어가는 대사를 꼽자면 흔히들 태후의 달달한 명대사로 인터넷 상에 떠도는 문장들보다 그 수가 훨씬 더 많다. 그만큼 작가는 무리하리만치 명예라는 단어를 곳곳에 배치해 놓았다. 하지만 그 대사들도 하나하나 보는 이의 허전했던 마음을 채워주며 감동을 전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주인공들간의 로맨스가 아름다운 이유 또한 그들이 서로를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명예로운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각자의 직업이 추구하는 본래의 명예를 쫓는 군인과 의사의 사랑. 나는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의 힘을 유지하는 근간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명예롭기에 더욱 아름다운 사랑.


드라마에선 사랑과 명예가 합치되던 장면이 유난히 많다


한발 더 나아가, 이 드라마는 거의 정치 드라마, 사회풍자 만평 수준의 조롱 또한 쏟아낸다. 사실 로맨스 드라마에 이런 사회적 비판이 왜 필요하겠는가 싶겠지만, 그건 이 드라마의 정체성이 명예로운 삶의 영광을 높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조롱들은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장치이며, 작가가 정작 하고 싶었던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런 시각에서 봤을 때 드라마를 이끌고 가는 힘을 쥐고 있는 건, 즉 배의 조타수의 역할을 하고 있는 선장은 김은숙이 아닌 김원석 작가일 것이다. 로맨스를 듬뿍 담은 대사는 명예라는 목표를 향해 출항한 배에 힘을 실어주는, 돛에 부는 바람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실제로 본 드라마는 김원석의 원작이었던 [국경없는 의사회]를 기본 골격으로, 김은숙 작가가 로맨스를 재가공하여 입히는 절차를 따랐다.)


김원석 작가(좌)와 김은숙 작가(우)


하지만 왜 굳이 명예였을까? 왜 뜬금없이 명예를 그토록 운운하는 것일까? 사실 '명예'라는 단어는 언제부턴가 사람들 사이에 말해지지도, 떠올려지지도 않는 단어가 아니던가. 명예롭게 산다, 명예롭게 죽는다는 식의 말 또한. 어찌 보면 지금 시대에 명예란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지 못하는 무가치한 가치가 되어버린 것 같다. 대체 요즘 시대에 누가 명예라는 단어 하나를 위해 자신의 삶을 그렇게 던진단 말인가.(그런 점에서 명예는 시대적 개연성이 무척이나 떨어지는, 그래서 TV드라마에서 다루기에는 부담이 큰 주제다.) 명예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때 비로소 그 가치가 획득되는 게 아니던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명예가 명예일 수나 있겠는가. 어찌 보면 김원석 작가가 그토록이나 명예에 매달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듯하다. 명예라는 가치에 아무런 관심도 쏟지 않고 아무도 쫓지 않는 이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두 주인공, 아니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이가 그 명예 하나를 위해 울고 웃고 싸우고 사라져 간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참으로 미련하기 그지없는 행동들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인물들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너무도 확신에 찬 신념으로 명예 하나를 위해 전장에 뛰어든다. 간혹, 그 주저 없는 확신 때문에 왠지 도덕 교과서를 보고 있는 듯한 불편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TV드라마란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굳이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이상적인 인물을 만들어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듯 싶다. 어쩌면 현실과의 지나친 이질감을 심어 놓음으로써 오히려 현실의 때를 더 과장되게 드러내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지금의 현실이 얼마나 명예롭지 못한가, 사람들은 얼마나 명예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가, 명예란 얼마나 사람들 사이에서 외면되고 있는가... 하는 역설의 고발.  


우리는 지금 명예롭게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혹은 명예롭게 죽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주인공들뿐 아니라 조연들 모두가 명예롭다


어쩌면 태양의 후예는 사랑과 명예라는 숭고한 가치를 드높게 밝히고, 그에 비해 지금의 시대가 얼마나 초라한지를 아주 명징스럽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그것이 이 드라마의 아름다움이고 감동의 원류가 아닐까. 혹시 제목이 [태양의 후예]인 이유는 - 그러니까 뜬금없지 않은가 '태양'의 후예라니 - 명예를 태양처럼 뜨겁고 높게 밝혀주고 싶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작가 김원석이 지금의 시대, 지금의 사회, 지금의 국가에 대한 조롱을 가장 농축시킨 대사라고 보여지는 대사 몇 마디를 소개하고자 한다.


"난 지금 국가를 위해 일하는 중이야"

"국가도 알고 있냐? 자길 위해 일하는거?"

"쉿! 혹시 국가가 날 버리더라도 넌 나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개인의 죽음에 무감각한 국가라면 문제가 좀 생기면 어때. 당신 조국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난 내조국을 지키겠습니다."


확실히 이 대사들에는 누군가를 향한 날이 숨겨져 있다. 짐작하겠지만 바로 개인의 죽음에 무감각했던, 국가를 위해 일하던 사람들을 저버렸던 한 배의 침몰에 관한 이야기다. 재미있는 건 '그분'이 이 드라마를 즐겨본다는 사실. 어찌 보면 눈치가 없다는 건 참 편한 인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명예롭진 못하겠지.


무언가를 겨냥한 미장센




태양의 후예는 OST에 포함된 노래 한 곡 한 곡이 모두 감미롭고 애절한데, 그중 좋아하는 가수의 좋아하는 곡을 추천해 본다.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강모연과 유시진의 재회를 감동적으로 감싸줬던 린의 노래다.


태양의 후예 OST, 린(Lyn) -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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