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간우산 Aug 06. 2015

예술이냐 생존이냐

예술은 그것에 담긴 예술가의 '영혼'으로만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스타와 예술가는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준다 하여 예술가라 할 수 없으며, 예술적 성취를 거뒀다 해서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 둘의 상관관계는 0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본주의에서 예술을 한다는 건 어쩌면 비극일지도 모른다. 그건 단지 예술행위 이전에 생존을 걸어야 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비극을 면하려면 적당히 타협을 하던가.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추거나 혹은 아주 운이 좋던가, 여하튼 예술 그 자체 이외의 노력을 겸해야 하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보자. 


예술을 취미활동으로 하지 않는 한 그것은 밥벌이의 수단이 되어야 하며 자본주의에서 밥벌이는 시장을 통해야 하므로, 그렇단 얘기는 예술의 가치가 순수한 노동가치(예술가치)가 아닌 교환가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교환되어야 만 가치로 인정받는 예술이란 대중성만이 예술이 밥벌이가 되는 유일한 길이라는 공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관점으로만 본다면 자본주의는 '진정한' 예술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할 만하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예술이 교환가치가 아닌 고유의 예술가치로서 평가되던 르네상스와 비교해 보면 더 쉽게 납득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유독 위대한 예술적 성취가 폭발했던 배경에는 예술을 통한 밥벌이가 시장이 아닌 후원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차이가 존재한다. 즉 예술가는 재벌가문의 후원을 받아 오로지 예술적 성취만을 생각하며 몰두할 수 있는  환경하에 있었다는 것이다. 일례로 미켈란젤로의 천정화를 보라. 요즘 같으면 어떤 바보가 혼자서 식음을 전폐하며 저런 일에 10년을 넘게 매달리겠는가 말이다. 아니, 그럴 수 있겠는가. 메디치가의 후원이 없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시대에도 위대한 예술은 존재한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르네상스 시대보다 더 많이, 더 다양하게, 더 크게 성장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환경적인 지원의  힘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위대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생존을 위협받으면서도 예술에 매달리는 바보가 늘어난 때문인지도. 시장이 예술의 본질을 흐리게 했지만, 봉건적 계급의 철폐와 민주화는 예술에 도전하는 사람을 폭발적으로 늘렸으며 예술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대량 분출되는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졌다. 예술을 하며 생활을 영위하는 환경은 더욱 악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하겠다는 사람은 끊임없이 늘어났고, 급기야 예술에 대한 간절한 열망은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마저 뛰어넘게 만들었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므로, 도저히 계산이 나오지 않는 무모한 일에도 그렇게 불나방처럼 뛰어들곤 하는 것이다. 1960년대 문화혁명, 히피족의 등장은 그러한 열망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나타난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아닐까.(영화, Taking Woodstock) 이런 흐름은 1980년대 뉴욕의 하위문화와 결합돼 뒷골목 예술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뮤지컬영화, Rent)

(좌) 영화 [Taking Woodstock], (우) 영화, [Rent]


하지만 예술을 열망하는 사람은 늘어났고 그 수혜의 범위도 대중화되었지만, 예술가의 삶은 너무도 피폐해져 갔다. 그것은 예술가가 겪는 창작의 고뇌 같은 고결한 것이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에서 그러했다. 그리고 의외로 그런 비극적 불나방들은 우리 주변 도처에 널려있다. 다만 우리가 그들의 범위와 심각성을 모두 알지 못할 뿐. 왜 그러한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스타'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장을 통해 대량으로 '유통'된 예술만 알 수 있으며 그것들이 유일한 예술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수는 그리 많지 않은데 오디션 프로그램만 하면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가수를 준비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걸 보면(심지어 실력이 너무도 뛰어나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더 놀라운 건 오디션 프로에 출연하지 않으면서, 공인된 가수가 아닌 노래하는 사람이(역시나 실력이 매우 뛰어난) 아직도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사실이다. 


단지 대중문화뿐만이 아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가 그동안 '예술'이라고 인정했던 모든 작품들, 작가들에서도 또한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가들은 예술계의 스타 시스템에 의해 이미 선택된 자들이다. 위대한 인상파 화가가 어디 모네나 고흐만 있었겠는가. 생존과 싸우다가 남모르게 스러져간 수많은, 그렇지만 위대할 수 있었던 인상파 화가들이 왜 없었겠는가. 단지 고흐도 그중 한 명이었을 뿐일 수도. 운 좋게 발견되어 스타로 발굴되었지만. 그마저도 억울하게 사후에 말이다. (고흐는 살아 생전에 그림을 단 한 장 팔았다. 그것도 거의 떠넘기듯이)


하지만 사라진 그들, 위대한 예술가였지만 아무도 몰랐던 그들의 존재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시장은 결국 아무런 것도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시장은 그저 delivery 할 뿐  아무것도 create하지 못한다. 마치 이마트가 양파를 팔지만 양파를 생산하지는 못하듯이. 아무리 많은 대량 유통점이 생겨나도 여전히 양파를 생산하는 건 농부다. 세상에 수 많은, 생존을 건 예술가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접하는 아주 지극히 일부의 예술들이 존재할 수 있다. 다만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주체가 시장이라는 것이 한탄스러울 뿐. 그래서 진정 가치가 높은 예술가들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그 반대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어찌 보면 하나의 위대한 예술가를 탄생시키기 위해 수 많은 예술가들의 희생이 있는 게 아닌가도 싶다. 하지만 그건 정말이지 생각할 때마다 너무도 억울한 일이다. 더 억울한 건 스타 탄생의 원리가 예술적 가치와는 거의 무관하다는데 있다. 


이 비극을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하는 건 바로 우리 같은 구경꾼이 아니라 같은 예술가다. 그래서 예술가를 조명하는 예술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런 작품들처럼. 

(좌) 다큐멘터리, [Searching for Sugar Man], (중) 영화, [Begin Again], (우) 영화, [Inside LLewyn]


이 작품들 모두 훌륭하지만, 그래도 가장 인상 깊은 건 역시 [인사이드 르윈]이다. 끝내 스타가 되지 못하고, 무대 위의 조명조차 받아보지 못한 채 사라져간 수 백만, 수 천만의 예술가들을 비춰주고 있기 때문. 그리고 끝내 시장과 타협하지 않은 그들의 예술적 고집을, 그 위대함을 진흙탕 같은 현실 속에서 빛나게 해 주기 때문. 이 영화는 예술가에게 주어진 가혹한 질문에 관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예술이냐 생존이냐"


우리는 이런 가혹한 질문 앞에 끝끝내 예술이라는 대답을 하기 위해 현실을 버텨내고 있을, 수 많은 보이지 않는 예술가들에게 기꺼이 박수를 보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을 응원하고 그들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수 많은 문화적 혜택들은 모두 그들이 자신의 삶을 담보로 고통스럽게 만들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MP3 다운 1개에 얼마, 영화 한편에 얼마, 전시회 입장에 얼마... 처럼 '얼마'의 개념으로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 이전에 그것들은 교환가치로 가치를 셈할 수 없는 상품이다. 그것은 '상품'이 아니다. 그래서 예술가는 '직업'이 아니다. 김목인의 앨범, [음악가 자신의 노래]를 들어보라. 특히 가사를.


김목인 1집, [음악가 자신의 노래]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매년 일정 비율로 태어나는지 음악의 아이들은 계속 나타난다.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비밀스런 자기만의 윤리를 지키고 살아간다.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누구나 좋아하지만, 누구나 집안에 들여놓고 싶어 하진 않는다.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이 직업은 세계 어디에 가도 알아보는 전지구적 연줄을 자랑한다.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엄청난 어려움에도 위대하고 아름다운 교향곡들을 남겨왔다.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이 직업은 가장 오래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생겨날 것이다.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모든 곳에 음악이 사용되어도 모든 계획에 음악이 고려되진 않는다.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모든 일이 그렇듯 이 직업에도 어려움이 있지만 마냥 즐겁게만 본다.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모든 일이 그렇듯, 이 직업에도 사명이 있지만 마냥 무책임하게 본다.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무수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시간은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음악가의 시간들은 돈으로 계산되지 않지만 엄격한 미소는 요구된다.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져도 완전히 가격이 매겨지진 않을 것이다.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오랜 어려움에도 살아온 살아있는 화석이다.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현대인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야생지대다.




예술은 얼마가 아닌 그것에 담긴 예술가의 '영혼'으로만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하에서라면 생존에 맞선 그들의 용기까지도 같이 셈해야 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