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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쇼, 위대한 삶

마이클 그레이시, [위대한 쇼맨]

by 빨간우산

올해가 시작된지도 얼마 안 되어 올해의 영화를 뽑았는데, 또 며칠도 안 되어 올해의 영화로 뽑지 않을 수 없는 영화를 봐버렸다. 바로 [위대한 쇼맨]. 그래서 올해는 특별히 '올해의 영화'를 두 편으로 하는 걸로.



뮤지컬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뮤지컬 영화가 나오면 꼬박꼬박 챙겨보기 때문에 당연히 챙겨봐야 할 영화 1순위였고, 드디어 오늘 나의 작은 방에서 소박하게 셀프 개봉을 했다. 워낙 사전 예고나 소개 영상을 많이 봤던 터라, 화려한 춤과 음악을 기대하고 봤지만 그 기대를 넘어선 화려함보다도 더 놀라웠던 건 삶의 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야기와 메시지들이다.


실존 인물과 인생을 바탕으로 했다지만, 한 인물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는 아니기에 일단 실화 여부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보고.(인물을 너무 미화했다고 말들이 많은가 본데, 별로 의미 없는 지적이라 보인다. 논란이 된 실존인물인 '바넘'의 존재는 이 영화에서는 그저 모티브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인물을 평가하는 전기영화가 아니라는 것.)


주인공 바넘은 살아있는 삶을 사는 자이다.


나는 저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그대가 저녁마다 바다 너머로 내려가 지하 세계를 비추듯이, 그대 넘치게 풍요로운 성좌여! 내가 지금 찾아가려 하는 인간들이 일컫듯이, 나는 내려가야 한다. 그대처럼.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는 인생의 환희를 위해서는 내려가는 몰락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예전에 이 글을 읽었을 때는 꼭 그래야만 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좋으면 계속 더 좋은 게 좋지 않겠나 싶었지만, 이제는 몰락이 의지를 낳고 의지가 위대함을 낳는, 그런 인생의 오르내림이란 게 오히려 삶을 살아있게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그런 롤러코스터 같은 살아있는 삶을 살게 된다면, 행복이란, 성공이란, 삶의 의미란 매우 단순한 데 있다는 걸, 하지만 정작 우리의 현실은 그 단순함에서 매우 벗어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삶의 진실을 깨닫게 하는 기회 살아있는 삶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그러니 우리의 삶이 만약 환희와 몰락을 반복하지 않는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죽어있는 삶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다. 영화 속 조연 '필립 칼라일'처럼 말이다.


그렇다, 인생을 왜 서커스처럼 살지 못하는가.


이 영화는 그런 살아있는 삶의 환희에 대해 말해주는, 아니 직접 보여주고 있는 영화다. 음악을 통해서, 춤을 통해서, 눈물을 통해서, 사랑을 통해서, 위대한 쇼를 통해서. 그들은 위대한 쇼를 연기하며 그들의 삶을 위대한 쇼로 만들어 낸다. 그리고 삶이란, 행복이란 그런 쇼와 같은 것이라는 걸 보여준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펼쳐 보이는. 그리고 그런 살아있는 쇼로서 인생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 믿음이 필요하다는 삶의 위대한 진실을 말해준다.



창피해 하지도,
미안해 하지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This is me.


- 마이클 그레이시, [위대한 쇼맨]




화려한 쇼의 환희 속에 삶의 보석 같은 진실을 숨겨놓고 있는 영화. [렌트], [헤드윅], [레미제라블], [라라랜드] 등과 더불어 뮤지컬 영화 역사에 그어진 한 획이라 해도 손색없을 감동과 환희를 모두 갖춘 대작. 심지어 노래와 퍼포먼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과 귀가 즐거워지는 아름답고 멋진, 그야말로 위대한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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