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정 하는 뮤지션이 있다. 대개는 그때그때 꽂히는 뮤지션의 음악을 챙겨 듣는 습관이 있는데, 한동안 꽂히는 뮤지션을 찾지 못해 이런저런 기존의 앨범들을 돌려 듣곤 했었다. 그러다, 음악을 소개해 주는 SNS 포스팅을 보고 우연히 발견한 뮤지션이 바로 '존 바티스트(Jon Batiste)'다. 줄리어드 음대 출신의 흑인 재즈 뮤지션이라는 아주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그를 접했다.
앨범 제목은 'Hollywood Africans'. 제목에서부터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 '나는 재즈를 하고, 미국의 대중문화를 흡수하지만 나의 뿌리는 흑인이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Jon Batiste
처음 들을 때는, 요즘 재즈 치고는 꽤 easy listening이네,라고 반기며 정말로 편안하게 들었다. 스탠더드 재즈를 추구하는 친군가? 하는 생각을 하며 지나치기도. 앨범이 전체적으로 귀에 잘 들리는 편이라 그 후로 계속해서 들었다.
좋은 책은 여러 번 읽으면 더 좋듯이, 음악도 마찬가지라 듣다 보니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재즈의 스탠더드 한 점을 가져가면서도 블루스와 R&B, 가스펠, 소울.. 등의 장르들이 혼합되어 있는데 가만히 보면 모두 흑인의 음악들이다. '이건 재즈 음반이지만, 재즈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앨범. 게다가 중간에는 쇼팽의 녹턴이 있다. 제목을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블루지하게 편곡해 놓았는데, 블루지한 쇼팽이라니 대단한 용기면서도 단지 용기만 가지고는 덤빌 수 없는 시도다. 여기서 그의 음악성을 엿볼 수 있다.
요즘의 음악들이란 모두, 이렇게 장르를 넘나 든다. 시대도 넘나들고. 과연 SNS, 유튜브를 보고 듣고 자란 세대들답다. 유튜브의 순기능이라면, 그 어느 분야보다 바로 음악 영역에서 그 진가가 발휘되지 않나 싶다.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만 봐도, 입이 떡 벌어지는 참가자들이 즐비하다.(최근 방영 중인 '슈퍼밴드'를 보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흑인의 뿌리를 잊지 않되 각 장르의 현대적 재해석과 세련미를 갖춘 수작이라 말할 수 있다. 특히,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의 리메이크는 그 어떤 리메이크보다도 새롭고 강렬하다. 정적이고 극히 단순한 편곡으로 노래가 본래 가지는 끈적함을 걸러내고 서정적인 정제미만을 남겨 놓았다. 이런 식의 편곡이라면 국내에서는 정재일이 생각난다. 장르를 넘나드는 전천후 음악 프로듀서라는 측면에서 그를 미국의 정재일이라고 이해해 볼 수도 있겠다. 왠지 거꾸로 말해진 듯 하지만...
정재일
음반을 반복해서 듣다가 궁금해서 그의 이력을 찾아보니, 과연 화려한 프로필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밴드로 펑키한 재즈를 하면서도 각종 기관, 공연에서 예술 감독을 겸하고 있다. 가족이 모두 음악을 하는 집안에서 자랐고, 당연히 어릴 때부터 여러 악기를 다루며 음악을 배웠다. 현재 전 세계에서 공연을 하는 세계적인 뮤지션인데 놀라운 건 아직 30세가 되지 않았다고..
Jon Batiste & Stay Human
이렇게 사는 인생이란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지만.. 사는 게 다 비슷비슷하겠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그래도, 그렇게 대단하게 살진 못해도 우린 그런 대단한 사람의 음악을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행복한 환경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감사할 일이다.
흐르는 곡은 이 앨범에서 가장 애정 하는 곡인 'The very thought of you'라는 곡.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노래인데, 전형적인 가사에 전형적인 멜로디인데도 뻔하지 않고 매번 들을 때마다 가슴을 울린다. 사랑을 노래한다는 건, 쉽지만 어려운 일이다. 잘못하면 뻔한 심파가 돼버리고 말거나 혹은 과한 감정 과잉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사랑을 노래한다는 건, 마음의 깊이가 전달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교보다는 절제된 형식에 마음을 담는 일밖에는 방법이 없다. 바로 이 노래가 그렇다. 아무런 음악적 테크닉과 특별한 편곡의 효과가 없음에도 이렇게 마음을 울린다. 아마도, 이 음악에 담긴 그리움의 마음이 내 마음속 허전함을 건드리기 때문은 아닐까.
아름다운 노래다.
The very thought of you. The longing here for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