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을 좋아합니다. (다 좋은 건 아니고) 커피를 끼고 살아갑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은지 바닐라 커피를 마시고 싶은지 돌체 커피를 마시고 싶은지 그때마다 다릅니다) 해산물을 싫어하며 막창 곱창 닭발 등 먹기에 징그럽게(?) 생긴, 또는 식감이 물컹한 것들을 싫어합니다. (다 싫은 건 아니고)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것들을 좋아하며 취향에 맞는 음악을 찾게 되면 술 마시고 춤추고, 감명을 받은 순간이면 눈물을 흘려 놀림을 당합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서로 크거나 작거나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요새는 그 거리에 대해 생각한다. 새로 만나게 된 사람에게 나를 얼마나 설명해주어야 하는지. 스쳐 지나갈 사람들에게 나를 설명하는 일이 쓸데없는 일일지. 어느 정도의 깊이로 설명해주어야 오해를 하지 않을지. 이런 생각들이 계속되면 다 끝날 인연인데 오해받기 싫어서 입을 닫고 듣는이를 자처한다.
말하는 이였던 때도 있었다.
► 애인과 헤어진 친구를 위해 위로하겠다고 했던 말.
“괜찮아. 다 지나갈 인연이었나 봐. 더 괜찮은 사람이 네게 오려나 봐.”
돌아온 말은
“오빠는… 오빠는 하나도 모르잖아요!!”
► 건강 관련 프로그램을 보고 대화를 나누다가.
“암이나 어떤 큰 병에 걸렸을 때, 환자 본인이 삶에 의지가 없으면 치료가 더 힘들어진대.”
돌아온 말은
“그럼, 우리 할아버지가 암에 걸렸을 때 살고 싶지 않고 죽고 싶어서 돌아가셨다는거야?”
즐겨보는 TV프로그램 중에 ‘싱어게인3’ 가 있다. 심사위원 여덟 분 중 윤종신 아저씨가 있다. 얼마 전 윤종신 아저씨가 인스타그램에 따님 되시는 분 사진을 업로드 하셨다. 그 댓글 중에는 이런 댓글이 있었다.
‘아니 진짜 연예인한테 댓글 처음남겨보네요.싱어게인 보다가 너무 황당해서요. 누가 봐도 56호가 더 완벽한 무대를 했는데 코드쿤스트가 너무 맞는말을 하니 기분이 언짢으셨나요? 무슨 억지로 46호를. 뽑히고도 당황하는 46호님인데. 보는사람 불편하게 하시네요. 개인적인 취향은 개인적으로 표현하시고 공적인 오디션은 공적으로 심사해주세요. 저는 그 누구의 팬도 아니지만 보다가 진짜 너무 짜증이 나네요.’
윤종신 아저씨께서 진짜 그 가수가 더 좋았는지, 심사위원으로 나온 것이 주관적인 의견을 빼고 기술적인 것만으로 객관적으로만 판단해야 하는지. 일생일대의 기회로 출연한 출연자의 인생의 무게에 중심을 두어야 하는지. 우리는 윤종신 아저씨가 아니고 그 출연자가 아니라서 입을 댈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가수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심사위원의 심사를 참고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필요하지만 필요하지 않다며 써 둔 적이 있다. 내 입에서 말이 나가는 순간 해명할 준비를 해야 한다. 말뿐이랴. 행동에도 해명을 해야하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어쩌면 오해를 하려고 사는 게 아닐까. 그 관계에 더 목마른 사람이 해명을 시도하고 그게 아니면 해명조차 없고 오해만 쌓여있는 관계로 남고. 이 우주가 얼마나 크고 그 작은 지구에 우리 각자 이름 갖고 살아가는데 이해와 사랑만 쌓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