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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재훈 Sep 23. 2024

썩는 남자

치아 교정과 그 이후의 삶

    처음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 첫인상이 주는 부분은 80% 이상이라고, 주워듣는 이야기만 많아서 어디서 들었다. 정말 그런가? 나는 95% 이상 같다. 그렇게 첫인상으로 타인을 재단하고 새로운 모습에 놀라 금방 호감을 갖고 비호감을 갖고, 어쩐다 저쩐다… 그 95%의 첫인상을 좌지우지하는 가장 중요한 것. 바로, 치아. 황니인가. 백니인가. 바른, 교정된 이인가. 귀여운 덧니가 좀 있나.

   

    나는 늘 ‘차가워 보이지만 따뜻한 남자’가 되고 싶었지만 귀여운 덧니가 좀 있던 탓에 전혀 그럴 수 없었다. 귀여운 덧니 때문에 늘 ‘만만상’(만만해 보이는 얼굴 상)이 되어 쉽게 놀림받고 장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덧니도 나의 매력. 어디서 주워 읽은 글(이이체-천형 *시베리아 어느 유목민들 사이에서 덧니 치아는 ‘가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뜻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내 덧니가 더 특별해진 것 같아 교정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배우 강혜정 님이 덧니를 생각하는 것처럼(배우 강혜정 님이 덧니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른다.) 내 덧니를 사랑했다.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는.


    군에 입대했다. 선임과 후임이 생겼다. 친한 사람들이 생겼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생겨서 또 나를 놀리는 사람들이 생겼다. 재훈아–일병배재훈! 너는 정준하다. 아닙니다. 저는 배재훈입니다. 어허 관등성명 똑바로 안 하나. 일병정준하!


    덧니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덧니가 있다는 이유로 배준하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아 누가 말만 걸어도 귀찮고 피곤해하는데 ‘덧니-가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이렇게 주목을 받아야 한다니. 어떤 결심이었을까. 나는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교정을 하고 싶으니 좀 도와주시라.” 나는 다음 휴가 때 교정 전문 치과에 찾아가 냅다 교정을 시작했다.


    이때 했던 생각이지만 오직 추상적인 미(美)만을 위한 모든 일은 고통스럽다. 미(美)만을 위한 성형수술, 미(美)만을 위한 운동, 미(美)만을 위한 교정, 미(美)만을 위한 쇼핑. 내가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모른 채, 특히 시술, 수술은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른다. ‘도박 같다.’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겪어본 치아 교정은 정말 고통스럽다. 시작한 지 2주가 안 되어서 사람들이 내게 인물이 산다고 했다. 교정이 되어서? 아니다. 못 먹어서 살이 빠져서 그렇다. 2주간 그 무엇도 씹을 수 없었다. 씹기 위해 치아와 치아가 닿으면 온 신경이 찌릿하고 몸에 소름이 돋으며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며 한기가 서린다. 배가 고픈데, 뭘 먹긴 먹어야겠는데 실수로 윗니 아랫니가 닿으면 너무 아프고 짜증이 나서 울고 싶을 때도 많았다.     

    휴가 복귀 날이 되어 교정기를 달고 부대에 복귀했다. 소대에 소문이 퍼졌다. 재훈이가 기차를 타고 북한으로 넘어가기 위해 이빨에 철도를 깔고 왔다는 것이다. 아. 차라리 배준하가 나았다. 모두 내 철도를 구경하러 왔다. 목적지가 어디냐. 이 빨갱이 녀석.


    고통 및 역경과 고난을 거쳐 2년 하고도 몇 개월 더 지나 교정기를 해체했다. 전역의 기분과 비슷했다. 끔찍한 치과 기계 소리, ‘까드득 까드득’ 교정기 더 죄는 소리. “아… 참 1개월만 더 해봅시다. 더 완벽하게 교정되게끔. 약간 아쉽다.”라고 3개월째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담당 치과의사 선생님의 말.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됐다.


    미남이 됐다.(미남까지는 아니고 인간이 됐다.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라면을 먹을 때 윗니 아랫니를 닫으면 라면이 끊겼다. (교정 전에는 부정교합이 있어서 윗니와 아랫니를 다 닫아도 앞니가 완벽하게 닫히지 않았다.) 돌도 씹어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기세로 몇 달을 지냈다.

     

    외적으로의 미(美)와 부정교합이 치료되는 좋은 점도 있지만 좋지 않은 점도 있었다. 치아 교정이 되면서 어금니 사이에 원래 없던 틈이 생겨 음식물이 너무 x2 자주 x2 끼어 양치를 제때, 제대로 하지 않으면 충치가 생겼다. 오른쪽 어금니가 썩어서 미루지 않고 멋쟁이 어른처럼 충치 치료를 받은 것이 2년 전인데 이번에는 왼쪽 어금니 쪽에 충치가 생겨 신경치료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오른쪽 어금니 충치 치료 후 하루에 양치를 네댓 번 하는 양치 인간이 되었는데. 또 충치라니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제 치과를 무서워하지 말고 친구처럼 생각하며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정 전--



--교정 중--



--교정 후-- 이젠 이를 보여주면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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