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구글에서의 첫 발표를 마치고
구글이라.
아마 처음 구글과 내 삶이 엮이기 시작했던 건, 앞서 언급했듯이 구글코리아에 다니고 있던 스마트한 지인 덕분이었던 것 같다. 당시 카톡과 애니팡을 위한 내 스마트폰과 달리, 캘린더에 각종 미팅과 일정으로 빡빡했던 그의 스마트폰은 얼마나 멋져 보였던가. 그 당시 나의 회의라는 것은, 그냥 윗 분들이 부르면 불려 가는 것이 다였는데. 누군가 나의 시간에 양해를 구하고 경쟁적으로 나를 모셔가는 모습이 상상이 안되던 시절. 구글이 사악한 짓 안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던 시절.
그 지인 찬스로 구글에 인터뷰도 봤더랬다. 테크 밥을 먹기 전이니 책으로 인터뷰를 준비했다. 어떻게 1차는 통과했다고 연락을 받았는데 2차가 진행되기 전에 미끄러져 버렸다 (이러면 1차에서 떨어진 게 아닐까). 그래도 1차에 붙여준 면접관들이 오랫동안 고마웠는데, 그중 한 분이 이번 조국혁신당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신 이해민 님인 건 평소 지지부진하다 이상한 부분에서 폭발하는 나의 기억력을 잘 설명해 준다.
지방 시골학교 출신에게 냉정한 세상의 룰을 채 깨닫기 전. 그래도 무려 구글의 문턱을 밟아보았다는 느낌이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구글은 그 후에도 내게 가장 가고 싶은 회사였고, 링크드인 가입 후 가장 먼저 팔로우를 했던 회사였다. 테크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구글코리아 분들을 만났을 때 가졌던 반가움도 그런 것 때문이었겠지. 다만 일을 할수록 같은 직군에 있는 구글코리아 분들이 더 멀게 느껴졌다. 구글코리아에 미팅을 하러 가도, 컨퍼런스를 가도, 뭔가 점점 나와 격차가 커지는 느낌. 어디쯤에서 단추를 잘못 끼면 다시는 단추를 제대로 낄 기회가 없는 것 같은 한국에서, 나의 단추는 어디쯤에서 잘못 꿴 걸까. 그래도 학교 다닐 땐 공부도 꽤 했고, 열심히 살았는데.
그 후 삶이 흐르는 대로 영국으로 왔다. 어쩌다 보니 구글의 에코시스템 안에 들어오게 되고, 구글에 의한, 구글을 위한 일을 하다 보니 재밌는 경험들을 할 기회들이 많았다. 구글 입장에서는 유럽이 관련 규제도 많고, 세계적 기업들이 많고, 좋은 로컬 파트너들도 많아 신경을 많이 쓰는 시장이다. 덕분에 나에게는 재미있는 기회들도 많았다. 한 번은 구글 Optimize 프로덕트 팀이 영국으로 와서 우리를 비롯한 몇 파트너들을 만나 제품 피드백 세션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중 어떤 나의 피드백은 다음 분기 때 제품에 바로 반영이 된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 미팅을 Tottenham Court Road에 있는 오피스에서 했었는데, 처음 갔을 때는 낯설던 곳이 이번에 다시 가게 되니 한결 편하게 느껴졌다.
이번 발표는 사실 급조된 것이었다. 1월 어느 월요일 오후 즈음 하루 마무리를 하려는데, Senior director 중 한 사람이 구글에서 목요일에 진행될 파트너 이벤트에서 발표를 좀 해줄 수 없냐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 주는 꽤 바쁜 주였고, 발표 준비를 할 여유가 없었는데. 주위를 돌아보니 휴가 등으로 팀에 할 사람이 없더라. 그래서 등 떠밀리듯이 하게 된, 준비할 시간도 없는, 망할 가능성이 농후한 발표였다.
뭘 할까 하다가, 그 당시에 가장 핫한 토픽 중 하나였던 Google Consent Mode V2 Implementation에 대한 발표를 해보기로 했다. 내 클라이언트 중 '모든 것을 GTM으로 너네가 해줘'라는 특이한 클라이언트가 있다. 물론 GTM이 꽤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는 것이 맞지만... Consent Mode처럼 tag sequence가 중요한 것은 사실 inline으로 하는 게 많은 경우 낫다. 그러나 무려 FTSE 100 이신 그 클라이언트 덕분에 늘 이런 특이한 케이스에 기반한 발표자료가 생긴다.
(이하 재미없는 내용임)
Custom HTML을 쓰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gtag()을 포함한 Custom HTML tag는 Consent Initilization trigger를 쓰더라도 다른 tag들보다 먼저 실행되지 않는다. CoMo의 핵심은 다른 구글 tag들보다 먼저 consent states를 선언하는 건데, 이 sequence가 보장되지 않으면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정확한 consent states를 가지지 못한 채 실행된 구글 tag들은 결국 compliant 하지 않거나 identifier가 불필요하게 삭제된 채 구글 서버에 저장된다. 쉽게 말해 적발될 경우 벌금을 내야 하거나, 부정확한 데이터가 쌓이는 꼴.
그래서 우리의 솔루션은 GTM Zone + Custom HTML 이었다. GTM Zone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GTM assets를 필요에 따라 별도의 container에 넣어서 조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feature이다. GTM 자체가 asynchronously 로딩되기 때문에, 복수의 container들을 한 번에 로드한다고 해서, 서로 퍼포먼스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main container에 몇 백개의 tag들이 있어서 너무 무거워진 경우, GTM Zone을 통해서 분산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Main container와 Zone들 사이에 약간의 시간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Zone이라 하더라도 Main container 관점에서는 실행해야 하는 하나의 script 또는 tag에 불과하다. Main container의 gtm.js event와 Zone의 gtm.js event 사이에는 분명한 sequence가 존재한다. 따라서 Main container에 Custom HTML을 통해 Consent Mode를 컨트롤하고, 별개의 Zone을 통해 Google tag들을 컨트롤한다면, Zone의 Google tag들은 같은 page load라 하더라도 무조건 Consent Mode 보다는 늦게 실행된다.
다른 솔루션으로는 Consent API를 쓸 수 있는 별도의 Custom Template을 통해 Consent Mode를 컨트롤할 경우, 이는 Consent Initialization trigger를 통해 다른 tag보다 먼저 실행하게 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analyst들은 custom template를 직접 만드는 데 어려움을 가진다.
(이상 재미없는 내용 끝)
긴장이 돼서 런던 오피스에 가서 일하는데 쉽게 일이 집중이 되지 않더라. 구글 오피스에도 조금 일찍 도착해서 슬라이드를 보며 연습을 하는데, 뭔가 잘 입에 안 붙는 느낌. 구글오피스로 이동해서 구글 쪽 담당자를 만나서 이야길 나누고, 자리에 앉아 발표자료를 보는데 우심방 좌심실이 아주 육첩방 남의 나라였다. 사내에선 종종 발표를 하기도 했지만, 대외적으로 그것도 다른 파트너들이 가득한 자리에서 하는 첫 발표였기 때문이었다.
내 발표에 앞서 Google UK Future Lab에서 준비한 발표를 진행하고, 조금 지나 내 차례가 되었다. 마이크를 들고 앞에 서서 내 얼굴만 빤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을 보자니 더욱 마음이 답답해진다.
"이번 발표에 제 목표가 하나 있는데, 그건 농담을 좀 적게 하는 거예요. 제가 긴장하면 좀 불필요하게 농담을 많이 하는 편이어서요."
습관적일 수 있지만, 자신 있는 말투로 나를 낮추는 시작은 청중에게 쉽게 호감을 얻는 방법인 것 같다. 네가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고 바라보는 청중 앞에선, 차라리 나를 약하게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언제나 얼마나 잘하는지는 태도가 아니라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 지로 증명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청중들이 웃었다. 아내에게는 늘 핀잔을 듣는 내 유머도 노잼 영국 사람들에게는 유효하다. 공짜를 좋아하는 클라이언트 이야기에. 아마 다들 공짜 좋아하는 클라이언트들한테 괴롭힘 좀 당해봤겠지.
더 크게 웃는다. CMP에서 dataLayer event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그런 게 없는 CMP를 놓고 일하는 행운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다들 없는 데서 길을 만들고, 답답한 vendor들에 속을 끓이며 일하고 있겠지.
그렇게 발표를 마쳤더니, 같이 왔던 Senior director가 함박 웃는다.
"재호, 너 너무 대단했어! 적절하게 유머를 섞어가면서 어떻게 그렇게 해? 다들 완전 몰입해서 봤어. 너 이런 발표를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아.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줄!"
그녀는 그 뒤로 약 2주간 어디를 가든 지 내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심지어 클라이언트 미팅을 들어가서도 내 발표 이야기를 하는 통에 부끄러움은 내 몫이었다지... 또 갑자기 홍보팀이랑 이야길 나누더니, 회사 링크드인에도 소개를 했다. 이는 영국 country director와 심지어 회장님이신 Sir Martin Sorrel이 보낸 사내 이메일에서 소개가 되었다. 처음으로 내가 한 작은 일이, 어떻게 보면 가장 크게 회사에서 주목을 받은 것이라 부끄러움이 컸지만, 곱씹을수록 감사한 마음이 더 컸다. 7년 전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영어도 능숙하지 못했고 기술적으로도 부족한 점이 많았던 내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
그리고 구글에게 안녕을 고했다. 꼭 발표 때문은 아니지만, 사실 요 근래 내가 구글에서 일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몇 번 든 적이 있었다. 회사에서 직급도 더 이상 낮지 않고, 하는 일들도 점점 구글 프로덕트들과 멀어진다. 외부의 문제보다 내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도 늘고... 여러 이유로 구글이 더 이상 가장 매력적인 회사이지 않은 점도 있는 것 같다.
발표 전 구글의 담당자를 만났을 때, 그는 이번 프로젝트의 턱없이 짧은 데드라인의 무거움에 대해 토로했다.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동료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사실. AI가 중요하지만 오늘 당장 구글을 먹여 살리는 것은 결국 광고 제품이고, 이는 privacy 규제에 영향을 심각하게 받고 있다. 이미 경기침체로 수많은 사람들이 layoff가 된 상황에서 그가 느꼈을 부담감이 크게 와닿았던 날. 구글이나 어디든 동화 속 세상은 없다는,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 조금 피부로 와닿았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