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한 서른의 봄
재작년, 스물아홉의 12월 31일. 새해를 맞이하기 전 하나의 원고를 전송했다. 그 원고는 작년 봄날, 위클리 매거진에 연재된 파리 증후군의 일부이었고 그 이후로 조금씩 출판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때는 브런치 북이 아니고 위클리 매거진이었다. 멀지 않은데 왜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걸까? 서른이 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봄날에 꼭 파리 증후군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고픈 바람이 있었다. 그것의 첫걸음으로 선택한 것이 위클리 매거진.
여태껏 적어둔 글을 모조리 꺼내어 보았다. 블로그, 브런치, 일기와 작은 여행 수첩들까지. 꽤 오랫동안 적어왔으니 정리하면 책 한 권의 분량이 뚝딱 하고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쓸 수 있는 글이나 문장은 적었고 몇 주에 걸쳐 정리를 하고 보니 시중에 나오는 산문집의 딱 절반 정도의 글. 그중에서 또 걸러보니 고작 몇 개의 꼭지만 내 손에 남아 있었다. 브런치의 글을 적은 이후로 늘 출판을 생각했지만 손에 쥐어진 글을 보니 조금 씁쓸하였다. 그렇게 쏟아 내었던 감정들이 고작 이것뿐이라는 생각도 잠깐 스쳤다.
글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파리 증후군이라는 테두리 아래로 담아낼 성격과 다른 기록성의 문장들이니깐. 또, 직업 탓인지 못생긴 스케치는 왜 이리 많은지. 스위스 베른의 어느 숲이라고 그린 것은 거의 낙서와도 같았다.
그렇게 서른의 봄은 연재로 마치고 그다음 해의 봄을 위해 더 적고, 더 다듬었다. 그리고 조금의 간격을 두고 평소 관심 있던 출판사 순서로 메일을 정성스레 적어 원고와 함께 투고하였다. 메일을 보냈다는 자체 만으로 한 발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출근을 하면서 저녁에는 대학원 수업을 준비하였고 자기 전이나 점심시간에 글을 조금씩 다듬었다. 그렇게 한 곳, 두 곳... 그리고 대략 스무 개의 출판사에 투고를 했다.
답이 빨리 오는 곳은 며칠, 평균 이주의 시간이 걸렸다. 첫 번째의 반려하는 답장. 그 이후로 이어지는 아쉬움의 말들은 처음에는 거칠고 날카롭게, 그 이후로는 조금씩 무뎌갔다.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행한 일이었으니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파리 증후군은 밝은 것보단 흐린 날씨에 적힌 글들이었고, 웃음을 원하는 사람보다 아픈 사람들에게 더욱 공감 가는 글이 대다수였다. 여행 산문집이라 말하지만 파리에서 겪는 일상의 감정들이었고, 그 감정을 여행지의 풍경을 빌려다 읊조렸다. 굳이 말하면 예전 비긴 어게인 방송에서 로이킴이 리스본의 밤 바닷가에서 부른 노래가 있다. 나는 그것과 꽤 닮은 글이라 말하고 싶다.
출판이란 게, 누군가의 손에 내 책을 쥐어 주면서 하고 싶던 말들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꽤나 어렵다는 것을 메일함에 쌓인 답장들을 보고 새삼스레 더 느낀다. 하지만 상상하는 일을 멈추진 못하겠다. 우리의 이야기가 적힌 푸른 표지의 책을 들고 무심히 지나쳐온 세월을 하나씩 시시콜콜 되물으며 파리를 나란히 다시 걷는 그런 영화 같은 우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