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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남방 May 01. 2021

싶은 밤

공간의 보통날



저녁 먹었어요?

라는 당신의 물음에

보고 싶어요.

그렇게 속삭이고 싶은 밤.






프랑스에서 머물기 시작한 후 파리를 제외하고 가장 처음 여행을 떠난 곳은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이었다. 어떤 사연이 있었던 여행은 아니었다. 니스를 가기 위해 차를 몰고 가던 중 단순히 처음 지나치는 도시이어서 하루 머문 곳. 자그마한 수동 차량 하나를 빌려 힘겹게 고속도로를 달렸다. 해가 늬웃늬웃 넘어갈 때 아비뇽에 도착하였다. 조금 오래되었기도 하고 그때 찍었던 사진들을 모두 잃은 탓에 고작 남은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해가 막 지고 있던 그곳의 바람은 여태까지 프랑스 어느 도시보다 가장 동화 같았던 곳.


갑자기 아비뇽의 기억을 왜 더듬어 보았느냐면 가끔, 여행을 가면 숙소 방에 걸려있는 그곳의 그림이 내가 집을 떠나왔음을 더 실감하게 하였다. 니스의 오렌지 빛깔로 칠해진 집이 그랬으며 비시의 옅은 파랑으로 치장된 호텔방이 그러하였다.

회사의 점심시간. 늘 그렇듯, 점심을 먹고 카페 수웨두와의 커피를 한 잔 사서 자그마한 공원에 앉아 시간을 보내었다. 책을 읽고, 뛰어노는 강아지들을 구경하고 문득 시야에 가득 찬 이곳의 풍경에 감탄하였으며 내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은 투명한 당신의 모습이 눈앞에 잠시 스쳐 마음이 뭉근해졌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늘 지나치는 서점에서 팔고 있는 그림에 순간 마음이 닿이더니 이내 결제까지 마쳤다. 두 손에는 아비뇽 도시와 끊어진 다리가 그려진 그림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책 두 권정도 크기의 그림은 거실 벽난로의 한 구석에 두기로 하고. 덕분에 노란 집은 더욱 노랗게 된, 마법의 그림.


독일에서 프랑스로 넘어오던 또 다른 날의 여정. 가로등조차 없던 산 능선에 몰던 차를 잠시 멈추었다. 어느 마을과 마을 사이였던 것 같았는데 눈 앞에 펼쳐진 은하수에 반해 한참을 세워둔 차 위에 누워 별을 바라보았다. 가을이라 부르던 계절은 겨울의 것과 조금 더 가깝던 밤이었고 그렇게 머물렀던 곳은 누군가의 영원한 안식이 잠든 곳이기도 하였다.

당신에게 고백하던 날. 프랑스 남부로 향하는 기차표에 이어 떠나기 위한 다른 티켓을 하나 더 구입하였다. 알프스로 떠나기 위함이었다. 상실의 결핍을 여행으로 채우는 것이 항상 옳은 일이라 할 수는 없지만 하늘을 가득 메운 별을 보고 나면 괜찮을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또한 당신과 함께 남부에 이어 떠나려고 하였던 여행이었다.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다 보면 휴일을 조심해야 하는 데 봄에 하는 여행 중 가장 조심해야 할 날은 노동절. 한국의 것과는 조금 달라 오월의 첫날이면 슈퍼며 식당까지 죄다 문을 닫는다. 그 덕에 오스트리아 어느 호텔에서 하루 종일 식사를 한 적도 있었다. 당신은 현명해 잘 알겠지 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어오르는 핑곗거리 이자 원치 않을 사소한 배려.


그렇다.

순간 그림에 시선을 빼앗긴 것은 사실 점심시간 공원 벤치에 앉아 혼자 책을 읽다 당신이 나에게 기댄 우리의 모습으로 마음은 뭉근해져 처음 여행을 떠났던 아비뇽을 떠올리고 프랑스 남부 라벤더 밭을 함께 보지 못함에 아쉬워하였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보기 위해 알프스로 떠나는 날을 연필로 달력 위에 기록하였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게 이별.


아, 엄연히 따지면

우리는 이별한 것이 아니다.

시작조차 하지 못했으니.

그러니 다행이라 해둬야 하나,


라고 너에게 되묻고 싶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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