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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Jan 19. 2018

98%와 2%의 배우
아야노 고 綾野剛

아야노 고는 변하지 않은 변화 속에 있다.


드라마 '마더'의 아동을 학대하는 악한과 '카네이션' 속 사미센을 연주하는 양복 직인, 영화 '분노'의 길 잃은 게이와 '거기에서만 빛난다'의 어둠 속 청년. 흔히 얘기하는 보기 흔한 배우의 변신처럼 보인다. 어쩌면 성격과 직업이, 그저 다른 템포와 리듬으로 혼재하는 흔한 필모그래피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그러니까 아야노 고 앞에서 조금은 다른 변화를 본다. 변했지만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았지만 분명 다른 어떤 세계와 마주한다. 2003년 아야노 고는 영화 '가면 라이더 555'로 데뷔했다. '가면 라이더' 시리즈라면 오다기리 죠와 미즈시마 히로, 스다 마사키와 사토 켄타로, 그리고 후쿠시 소타 등을 배출한 인기 특촬물이다. 하지만 아야노 고의 커리어는 조금은 다른 그림을 그린다. 2004년 독일 제작의 영화 'Valley of Flower'에 출연한 뒤 밴드로 활동했던 이력을 살려 2006년 3월 드라마 '이누고에'에서 첫 주연을 맡았고, 동시에 전 음악을 작사, 작곡했다. 게다가 다음 해 공개된 영화 'Life'에서는 음악감독으로서 음악을 지휘했다. 음악과 연기과 어울리는 모양새가 분명 오다기리와 닮아있다. 하지만 앨범을 화이트와 블랙으로 나눠내듯 활동을 구분했던 오다기리와 달리 아야노는 연기 곁에서 음악을 하고, 음악 곁에서 연기를 한다. 변했지만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았지만 변한 어떤 초상이다.

  


'카네이션'이 아야노의 얼굴을 일본 전역에 알린 작품이라면 '코우노도리'는 아야노 고를 일본을 대변하는 어떤 얼굴로 승격시킨 작품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 자리는 기무라 타쿠야의 것과 비슷하고 후쿠야마 마사하루를 쫓고있다. 다만, 아야노는 영웅 서사의 전형적인 클리셰를 연기하지 않는다. 기무라가 독보적인 주인공으로 작품을 장악한다면 아야노는 어깨에 힘을 빼고 주변과 어울린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꽤나 장광설을 늘어놨다.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좋다. 낯을 가리기도 해 특기는 아니지만 마음을 전달하고, 상대가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있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만 좋다는 감각은 버렸다.' '나만 좋다는 감각을 버렸다'는 말. 아야노의 연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코우노도리'에서 아야노가 연기하는 코우노도리 선생은 누가 뭐래도 선한 영웅의 얼굴이다. 전형적인 TV 드라마의 결말로 대변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아야노는 혼자임을 포기한다. 주인공이기를 포기하며 자신만의 연기를 그 이상으로 확장하고 영웅의 클리셰로부터 멀어진다. 코우노도리 곁에는 호시노 겐이 연기하는 니시야마가 있고, 병원의 무수한 의료진과 내원하는 환자들, 그리고 가족들이 있다. 코우노도리는 그렇게 완성되는 인물이다.



아야노 고는 혼자다. 기후현 평범한 가정에서 외동 아들로 태어나 홀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교까지 육상부 활동을 했던 건 어쩌면 외톨이를 벗어나기 위한 구실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구멍을 팠다. TBS에서 방영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정열대륙'에서 아야노는 어린 시절을 바위에 묵묵히 구멍을 냈던 시간으로 회고했다. 누구도 오가지 않고, 그 어떤 다른 시간도 지나지 않는 곳에, 그는 혼자였다. 그리고 이게 그의 2%를 만들었다. '98%은 변하는 것, 2%는 변하지 않는 것.' 스탶들 앞에서 맥주를 한모금 들이키고 그가 내뱉은 문장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변신에서 변하지 않은 것을 보고, 그의 맨얼굴에서 고독의 변주를 느낀다. 드라마 '모든 것이 F가 된다'에서 아야노는 현장에 샤워 용품이나 속옷 등 거의 모든 생필품이 구비된 장소를 마련했다고 한다. '아야노 상점'이라 불릴 정도의 충실한 상점이었다. 이 에피소드가 나는 애절하다. 98%를 찾으려는 2%의 간절한 몸부림으로 다가오고, 그렇게 외롭게 남는다. '분노'에서 아야노가 연기한 나오토는 갈 곳이 없는 처지다. 상대역이었던 유마와 동거 생활을 하기 전까지 그의 시간은 많이 생략되어 있다. 그 생략된 시간이 어쩌면 나는 그의 2%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핫텐바에서 웅크리고 앉아 바닥을 바라보던 그 시간이. 아야노 고는 변하지 않은 변화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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