君が君で君だ
https://www.youtube.com/watch?v=WUL2tXHDxM0
버려진 마음이 만든 나라, 이름도, 국적도 버린 세상, 그렇게 멀어진 세계. 9할 이상이 원작에서 출발하는 요즘 일본 영화계에서 흔치 않게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당신이 당신이라 당신이다(君が君で君だ)'는 그만큼 황당하고 현실을 초월한다. 돌연 사카모토 료마(오오쿠라 코지), 오자키 유타카(이케마츠 소스케), 브래드 피트(미츠시마 신노스케)를 자칭하는 남자 셋이 등장하고, 이들이 거주하는 변두리 멘션의 작은 방은 타국적자의 입국을 거부한다. 방을 도배한 한 여자의 사진과 맞은 편 여자의 집을 향해 뚫린 작은 구멍, 그리고 도청 장치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소리가 이들을 움직이는 전부다. 유치한 망상과 위험한 스토커의 온상에 불과해 보이지만 영화는 이들의 뒤틀린 삶을 실패와 좌절이 남긴 하나의 시간으로 밀어붙인다. 유카타 차림의 사카모토 료마는 쇠고랑을 차고있고, 항상 화와이안 셔츠를 입는 브래드 피트는 '파이트 클럽' 속 브래드 피트 그대로며, 오자키 유타카 역을 맡은 이케마츠 소스케는 오자키 특유의 우울을 머금고 있다. 실패와 좌절 끝에도 길은 이어지고, 도망친 시간에서 이들이 찾은 건 '송(김꽃비)'이란 여자를 위한 나라다. 창 너머, 작은 구멍 사이로 보이는 희미한 실루엣이 전부인 이 곳에서 사카모토 료, 오자키 유타카, 브래드 피트의 하루는 송'을 향해있다. 영화는 등 돌린 해바라기로 시작한다.
원작이 없다고 하지만 '당신이 당신이라 당신이다'는 오자키 유타카의 노래 '내가 나이기 위해서(僕が僕であるために)'에 많은 빚을 지고있다. 영화 초반, 화면을 가득 채우는 건 실연 후 불러젖히는 오자키 유타카의 '내가 나이기 위해서'고, 화면은 두 남자의 외침으로 크게 진동한다. 실패, 좌절, 실망, 포기, 끝도 없는 절망, 이름 모를 분노가 화면을 찢을 기세고, 이들의 상처 투성이 세계는 폭발하기 직전이다. 그만큼 영화는 깊은 실망 속에서 출발한다. 빛이라곤 가게 네온 사인의 불빛 뿐인 그 곳에서 두 남자는 어디에도 없다. 갈 곳은 커녕 머물 자리도 위태로운 이들에게 내일은 또 다른 밤에 불과하다. '나'는 아직 내가 아니고 해바라기는 등을 돌리고 있다. 영화는 엔딩에 이르기까지 남자들의 본명을 알려주지 않는다. 두 남자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지금의 이름을 지우는 것이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떠오르는 해를 찾아 나서는 길이다. 그렇게 그들의 나라가 태어난다. 좌절과 실망의 길에서 둘은 위험에 처한 '송'이란 이름의 한국 여자를 만난다. 역시 등을 돌린 또 한 송이의 해바라기. 남자는 '송'을 구해주며, '송'은 남자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아주며 좌절의 한 걸음을 내딛는다. 사카모토 료마, 오자키 유타카, 브래드 피트는 모두 '송'이 좋아하는 남자다. 어둠이 드리어진 뒷골목에 뒤늦은 아침이 찾아온다.
이케마츠 소스케는 언제나 활짝 피지 못한 해바라기였다. 세상을 반밖에 보지 못하는 신지 역을 맡았던 '도쿄의 밤 하늘은 언제나 최고 밀도의 파란색'에서도, 활기와는 정반대편의 청춘을 그린 '세토우츠미(セトウツミ)'에서도, 미시마 유키오의 시간이 느껴졌던 '무반주(無伴奏)'에서도 그는 현실의 언저리, 아니면 우울과 외로움으로 가득찬, '자신'이란 이름의 세계 안에 아슬아슬하게 서있었다. 심지어 딱 한 컷 출연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만비끼 가족(万引き家族)'에서도 그의 팔목엔 상처가 나있다. 한 해 200편 이상의 영화를 본다는 그에게, 세계는 어쩌면 현실이 아닌 영화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이 당신이라 당신이다'는 영화는 물론 배우, TV, 뮤지컬, 만화, 칼럼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85년생 감독 마츠이 다이고(松居大悟)이기에 가능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이케마츠 소스케의 여기에 자리하지 못하는, 그렇게 육지보다 바다에 가까운 시간이 이뤄낸 작품이기도 하다. 실패와 좌절이 이어지고, 길이 어둠에 가리워진 시간에, 누군가 한 걸음 걸어간다면 그건 아마도 바다 깊은 곳을 바라보는 이케마츠 소스케일 것이다. 아픔을 아픔으로 마주하고, 상처를 상처로 보듬는 시간, 그렇게 다시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의 시간이 '당신이 당신이라 당신이다'에 흐른다.
솔직히 '당신이 당신이라 당신이다'는 위험하다. 사카모토 료마, 오자키 유타카, 브래드 피트가 만든 나라는 '송'이란 이름의 여자를 향한 관음으로 이뤄졌고, 꽤나 많은 장면이 상식의 도덕을 넘어, 위험한 성적 페티시 범주 안에 있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난도질을 당해도 쌀 정도다. 하지만 영화는 실패와 좌절 이후의 시간을 망상의 나라로 이어간다. 거기엔 세 남자의 '그래도' 살아가려는 의지가 담겨있고, 얼룩진 시간이 찾아낸, 비루해서 더욱 애처로운 희미한 불빛이 있다. 황당한 망상, 위험한 설정이 가득한 작품이지만, 영화는 실패한 시간을 향한, 등 돌린 해바라기를 바라보는 시선을 멈추지 않는다. 때때로 판타지를 빌려, 때때로 오자키 유타카의 노래 속에서 영화는 내일을 바라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케마츠 소스케의 얼굴이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나라를 우리 곁에 데려다 놓는다. 상처로 치유할 수 밖에 없는 상처, 아픔 만이 위로할 수 있는 아픔, 아침이 아닌 밤에 떠오르는 태양, 그래서 나는 나로서 나인 세상. 어쩌면 우리는 점점 '나'를 상실해 가고 있고, 오자키 유타카의 노래처럼 '나는 나이기 위해 계속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당신이 당신이라 당신이다.' 이렇게 애처로운 문장에서 묘한 용기의 온도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