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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Aug 15. 2018

아마도 51번째 도쿄

나는 지금 도쿄에 간다


이런 도쿄는 처음이다. 여행도, 일도 아닌 도쿄를 다녀왔다. 사실 딱히 도쿄를 여행했던 적은 별로 없다. 그저 가던 곳을 다녔고, 가던 길을 걸었고, 항상 비슷한 자리였다. 하지만 오래 전 구입한 무인양품의 수트케이스를 제외하면 모든 게 왜인지 달랐다. 가기 전날, 한숨도 자지 못했다. 밤보다 아침이 가까워질 즈음 그냥 자는 걸 포기했다. 가기 전에 꽤나 설레던 사람이었는데 어쩌면 변했다. 오래 전 쓰던 지갑에서 필요한 것들을 지금 쓰는 지갑에 채워 넣었다. 몰랐던 엔화가 얼마 있었고, 아마도 쓰지 않을 이세탄 백화점 카드가 두 개 있었다. 미타카에 살기 시작할 무렵 샀던 스이카(suica)를 확인하니 마지막 사용일부터 10년간 유효하다. 도쿄에서의 1년을 뒤로하고 돌아온 게 10년 정도 됐으니, 그러니까 유효하다. 회사를 나올 무렵, 주변엔 도통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였다. 기억이 뒤섞였고, 그조차 희미했으며, 뭐가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작 알 수 없었던 건 아마도 '나'였다. 그걸 알게된 건 시간이 2년 가까이나 더 흐르고 나서다. 세 번을 입원하고, 세 번을 퇴원하고. 이 만으로도 정상이 아닌 시간을 살면서, 하지만 그 보다 더 비정상의 삶을 살면서 도쿄에 다녀왔다. 지난 해 도쿄에 갈 땐 그저 시바 풀(芝プール)에 가고 싶었고, 두 번째 도쿄에 갈 땐 일본문화원과 함께였다. 하지만 또 1년이 지나고 나는 그냥 도쿄에 다녀왔다. 없어진 리무진 노선 탓에 공항철도 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희미한 아침 해를 바라보며, 어쩌면 도쿄를 향해 있는 문을 열었다.

사실 뻥이다. 그냥은 그냥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그냥'을 얘기할 자신이 별로 없다. 기대란 이름의 내일도, 설레임이란 이름의 용기도 지금, 내겐 없다. 그만큼 작아졌는지 모르겠다. 사카모토 유지는 드라마에서 '추억(思い出)은 '머물 자리(居場所)'가 된다'고 얘기했는데, 내게 그 머물 자리는 나날이 작아진다. 추억은 이 곳에 자리하지 못한다. 그런 시간은 좀처럼 끝이 없다. 도쿄에 다녀왔다. 아마도 어느 체념과 실망의 밤, 빵이란 걸 시작하고 어느새 마지막이 성큼 다가온 날, 자기 전 뒤적였던 어느 페이지가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아무런 확신도 없이, 그렇게 현실에서 멀리 물러나, 그저 조금의 설레임으로 눈을 감았다. 오래 전, 이라고는 해도 고작 5개월 전, 몰래 마음에 품었던 그림을 찾기 힘들었다. 당시의 나를 생각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야기는 했지만 조심스러웠고, 부러 멀리 보지 않으려 애를 썼다. 마음을 고쳐먹었던 날이 그나마 어떻게든 내일로 이어졌다. 일곱 개의 이야기를 쓰고, 일곱 번의 웃음을 짓고, 누구도 모를 시간 속에 일곱개의 마음을 다시 쑤셔 넣으며 짐을 쌌다. 짧은 일정에, 그 보다 배는 되는 옷들을 챙기며  하루하루를 조각조각 내고 있는 내가 있었다. 의미없는 시간을 그렇게 한 시간 넘게 보냈다. 생각했고, 생각했고, 생각했고, 또 생각했고. 그런 시간이었다. 어떻게든 답을 내고 일어나는 날들이었다. 하지만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고작 할 수 있는 말이 그것 뿐이다. 스다 마사키의 'ロングホープフィリア'를 들으며, '의미가 없어도 된다'는 말에 어차피 금방 사라질 위안을 느끼며 도쿄의 신주쿠 거리를 걸었다.


왜인지 하늘만 봤다. 짐을 찾기 무섭게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왔을 때도, 처음으로 1000엔 버스를 타러 4층 정류소에 도착했을 때도, 버스에 앉아 사방이 꽉막힌 창 곁에 앉아서도 뿌옇게 흐린 무거운 여름 날의 하늘을 봤다. 나리타 공항엔 지금도 알 수 없는 묘한 밤이 하루 쌓여있다. 병원을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항에 짐을 버리고 왔다. 왜인지 지갑에 엔화가 없었고, 마지막 넥스는 야속하게 떠나버렸고, 돈을 찾느라 헤뒤집은 짐들은 내게 그저 너무 무거운, 감당할 수 없는 어둠 덩어리었다. 택시를 타고 신주쿠에 도착해, 밤을 통째 거리에서 지새며, 알 수 없는 나는 알 수 없는 거리를 그냥 걸었다. 어디에도 빈 방이 없는 그곳에서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그저 버리고 온 짐 뿐이었다. 그 짐을 찾으러 다시 나리타에 갔다. 어쩌면 경찰서에 있을 거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났고, 9Hours란 캡슐 호텔에서 밤을 지샜다. 잠이 들었는지 그저 잠을 자는 나를 생각했는지, 웬 남자가 문을 열고 무언가 말을 했다. 아마도 '슬리퍼를 신어야 한다'는 얘기였겠지만 그냥 왜인지 여기가 아닌 어디, 더 짙은 어둠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시계도, 핸드폰도 없는 탓에 수도 없이 시간을 묻고, 가늠할 수 없는 어느 즈음에 밖으로 나왔다. 와중에도 배는 고팠고, 어떻게든 공항으로 이어지는 끝 없는 길목엔 다행히도 요시노야와 세븐일레븐이 있었다. 중국인처럼 보이는 커플, 한산한 매장, 주문한 규동에서 규동 맛이 나지 않았다. 아직도 암전 상태인 알림 전광판을 보고, 나는 다시 택시를 탔다. 도쿄에 가지 못했다.

핸드폰이 위험했다. 일년 전 주문한 아이폰은 왜인지 불량이었다. 배터리가 기이하게 빨리 줄었고, 어플끼리 부딪히는 일도 자주 있었다. 게다가 이번 호텔은 처음 가는 곳이다. 짐을 찾고, 담배를 피고, 충전할 수 있는 곳을 물었다. 내가 있는 곳과 정반대편 날개 한 쪽에 충전 소켓이 여럿 있었다. 나리타는 북쪽 날개, 남쪽 날개로 공간을 구분한다. 장소를 확인하고 Tokyo Soup Stock에 갔다. 가방을 찾기 위해, 짐을 포기하고 돌아온 지 1년이 조금 넘어 도쿄로 향했던 길에 처음 끼니를 떼운 곳이다. 수프를 생각했지만, 차가운 카레가 눈에 띄었고, 진저에일과 함께 주문을 했다. 챙겨온 스탬프 카드를 내미니 점원이 '오랜만이네요'라고 한다. 비로서 도쿄에 왔음을 느꼈다. 조금 매웠다. 일본에서도 카레는 맵다. 충전을 하며 이것저것을 하고 있으니, 옆에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앉아 접속을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오래 전 맥인 듯 무언가 조금 달랐다. 아는대로 설명을 하니 열심히 끙끙대는 모습이다. 무언가 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지만, 나도 끙끙댈 게 빤하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성공했다. 고맙다는 말에 왜인지 내가 더 고마운 기분이 들었다. 예매한 사람과 예매하지 않은 사람, 서로 다른 줄에 나란히 선 사람들, 조금의 복잡함도 없이 실릴 준비가 된 짐들과 조금의 고성도 없이 침착하게 사람을 안내하는 모습, 그리고 바로 앞에서 차를 놓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버스. 일본의 변함 없음에 마음을 놓는다. 누군가의 실패를 우려하는 마음을 느낀다. 시간이 어느새 네 시. 머리 예약이 여섯 시 시부야. 핸드폰이 위험하다.


릭 오웬스의 비치는 민소매 셔츠를 챙겼다. 카디건을 입었지만 축축한 일본의 여름 날에 언제까지 입고 있을 순 없었다.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공사 중인 시부야 역사를 통과해 미용실 근처에 도착하니 시간이 조금 남았다. 뉴스로 보았던 시부야 스트림이 바로 옆이었지만 아직 개장 전이다. 바로 뒤켠에 히카리에(ヒカリエ), 그리고 스트림(ストリーム), 건너편엔 스크램블. 육교를 오르고, 육교를 내려오고, 여전히 번잡한 시부야를 걸었다. 땀에 젖어 더 적나라해진 실루엣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별로 시선이 성가시지 않았다. 그런 일본이 그냥 편안하다. 미용실은 9층에 있었다. 예약 사이트를 통해, 그저 얼굴이 마음에 들어 부탁한 디자이너 이시모리 씨는 생각보다 작고,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샴푸를 하겠다며 물의 온도를 묻고, 땀에 흠뻑 젖은 내 머리를 10분 넘게 만져주었다. 따뜻한 스팀으로 데운 타올로 얼굴을 감싸며 어디에도 최선이 담겨있는, 그런 시간이 느껴졌다. 그런 샴푸를 3000엔도 되지 않는 값에, 모두 두 번 받았다. 한국에선 홍대 근처의 'nomad'를 다녔다. 지금은 없어진 그곳은 양옆이 유독 튀어나온 내 두상을 얘기하며 머리를 하기 시작했다. 남자 혼자 운영하는 곳이었고, 역시 번잡한 홍대에서 유독 고요한 장소였다. 그는 클리퍼를 쓰지 않았다. 이시모리 씨는 내가 가져간 사진을 보고 두 가지 제안을 하며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클리퍼를 쓰긴 했지만 가위질에 섬세함이 느껴졌고, 어쩌면 최선의 마음으로 내 머리에 대해 얘기했다. 창 밖으론 정체로 멈춰선 차들이 즐지어 있었다. 저녁 여섯 시 무렵, 해가 저무는 시간, 최선이 담긴 소리와 스크램블과 스트림의 데시벨. 시부야는 어디보다 고요했다. 집에 돌아와 메일을 열어보니 미용실에서 보낸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미용실 사이트 이시모리 씨의 한 마디는 '머리 고민, 함께 해결해요'다.

잠을 자지 못했다. 그 날 쓴 돈을 정리하고, 내일 일들을 생각하며 한참을 있자 시간은 어느새 새벽녘이었다. 무어라 말하지 못할 정도로, 어쩌면 중요한 시간을 앞두고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준비한 것들을 가방에 챙겨 넣고, 동선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눈을 감았지만, 그냥 밖으로 나왔다. 야밤의 고탄다는 조금 다른 고탄다였다. 예전에 몇 번 그 곳을 헤맨 적이 있긴 하지만 어둠이 그저 머무는 시간의 고탄다는 샐러리맨들이 하루를 마치고 여자를 찾아 오는 곳이었다. 호객하는 남자들과 그들의 부름에 응하거나 거절하는 남자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누군가의 시작과 누군가의 마지막이 뒤섞인 시간에서 도쿄 이틀 째 밤을 맞았다. 결국 자지 못했다. 자지 않았다. 지난 밤 사놓은 오니기리를 하나 먹었지만 배가 좀 고팠고, 영업을 하는 곳은 근처의 프레쉬니스 버거가 유일했다. 일본의 프랜차이즈에 실패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메뉴를 주문해도, 어떤 신제품이 나와도 웬만해선 후회하는 일이 없다. 시오레몬치킨 버거를 주문했다. 소금과 레몬, 그리고 치킨. 그리고 코우슬로와 아이스 커피. 이름만으로 맛이 그려진다. 심플함으로 얘기되는 일본의 음식은 재료에 대한 정직함과 충실함이 아닐까 늘 생각하곤 한다. 더운 날 요리가 힘겨웠는지 아침을 먹으러 나온 가족과 그저 책 한 권과 음료 한 잔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 그리고 밤을 놓쳐버린 나와 이른 아침을 맞이한 나. 밤과는 또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고탄다 골목의 어느 가게에서 나는 여기이기도 하고, 저기이기도 한, 그저 흐르고 흘러가는 시간의 스침을 생각했다.


인천 공항 입국장의 흡연 구역은 모두 사라졌다. 굳이 공항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흡연의 자리는 지워지고 있다. 한국도, 일본도, 다른 여타 나라들도 금연을 얘기하는 요즘이다. 하지만 거짐 일 년만의 도쿄에서 나는 금연의 반대말이 아닌 흡연의 자리를 마주했다. 도착 후의 한 모금과 밥을 먹은 뒤의 한 모금, 영화를 본 뒤의 한 모금과 그저 생각났을 때의 한 모금. 도쿄는 그 어떤 순간의 한 모금도 소외시키지 않았다. 신주쿠의 영화관  Wald 9엔 영화가 끝난 뒤 이어지는 동선에 흡연실이 자리하고, 시부야 곳곳엔 칸막이를 두른 흡연 구역이 마련되어있다. 꽤나 달라진 레스토랑과 카페에도 어느 한 구석에, 흡연의 공간이 아직 남아있다. 심지어 쓰레기 하나 없는 아오야마와 오모테산도 사이에도 길 중간중간 흡연 구역은 볼 수 있고, 담배 냄새 하나 날 것 같지 않은 다이칸야마에서도 나는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새로 생긴 듯한 복합 상업시설 '테노하(tenoha)'엔 정원 깊숙한 곳, 식물로 둘러싸여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곳에 흡연 구역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무려 신주쿠의 카페 란푸루(らんぷる)는 흡연 구역이 1층, 금연 구역이 지하다. 시부야의 온 더 코너(on the corner)에 앉아 담배를 한 대 꺼내니 남녀 커플이 들어와 점원에게 '앉아도 될까요'라 묻는다. 아마도 흡연 구역에 담배를 피지 않는 자신들이 앉아도 되냐는 이야기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배려라는 이름의 마음. 일본의 담배 회사 JT의 캐치 카피는 '사람의 시간을 생각하다'다.

40분 줄을 서고, 사지 못할 뻔한 도너츠를 다행히도 사고, 고레에다의 영화를 보러 가던 길. 목걸이가 닮은 여자를 만났다. 아마도 틀린 것 같은 구글 지도 탓에 화가 날 만큼 난 상태에서, 버스 정류장을 묻기 위해 길 건너 오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도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른다던 그녀는 '저 쪽에 정류장이 있어요'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한참 시선이 느껴져 쳐다보니 '목걸이가 비슷해서요'라고 말한다.' 나는 어제 저녁 유나이티드 애로즈에서 얇은 초승달을 닮은 목걸이를 하나 샀고, 그녀의 목에도 그런 초승달이 하나 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스침의 시간이 도쿄엔 흐른다. 삭막하고,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곳이라고 하지만 도쿄엔 어김없이 스침의 순간이 자리한다. 버스를 기다리며 벤치에 앉아, 다른 번호의 버스를 그냥 두고 가만있으니, 운전 기사는 '괜찮아요?'라 말해주었고, 우에하라(上原)의 도너츠 가게 '하리츠(ハリッツ)의 주인은 도너츠가 동이 나 사지 못하게 될 사람들에게 몇 차례 연신 사과를 했다. 한 사람당 세 개로 도너츠를 제한하겠다는 그녀의 말은 그녀가 생각한 최선이었고, 타인의 실패를 염려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두 개의 도너츠를 샀다. 살 수 있었다. 누군가의 배려. 알지 못하는 그런 마음이 내게도 다가왔다. 그 어떤 얼룩진 개인의 시간도 도쿄엔 흐르곤 한다.


시간은 흐르고 떠날 시간이 고작 세 시간 남짓 남은 아침, 아오야마로 향했다. 그나마 저렴한 항공권을 찾다 보면 늘 이런 애매한 시간에 놓이곤 한다. 아오먀마, 정확히는 시부야 2쵸메. 오래 전, 영화 잡지에서 일할 무렵 근처 호텔에 묵으며 1주일 간 출퇴근 하듯 드나들었던 이미지포럼(イメージフォラム)이 있는 곳이다. 왼편엔 자그마한 스타벅스가 있고, 뒤쪽 골목엔 숨겨진 맛집들이 있으며, 한 블럭 뒤로 넘어가면 패밀리마트가 있다. 일본의 편의점은 홈페이지가 충실하고, 그곳엔 영업시간은 물론, 가능한 서비스들이 안내되어 있다. 그곳에서 몇 시간을 머무른 적이 있다. 편의점 주제에 2층까지 있는데, 화장실은 물론 흡연실까지 갖추고 있고, 테이블과 의자도 있어 타치요미(立ち読み) 하는 수고 없이 잡지를 훑어볼 수 있다. 거의 작은 카페 수준이다. 포타쥬 하나와 빵, 그리고 음료 하나를 사가지고 올라가 의자에 앉았다. 밖으로 이제야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가방을 싸고나서 생겨버린 짐을 담은 비닐, 집에서부터 가져온, 낑낑대고 완성한 책 '도너츠 홀', 몇 해 전 구입했다 하나를 잃어버려 쌍가락지가 되어버린 오른손 중지의 반지, 그리고 빨 때가 한참이나 지난 담배가 든 파우치까지. 그냥 다 예뻐 보였다. 하지만 얼마 있지도 않은 시간 속에 나는 바보같이 신주쿠에 들렀고, 땀을 뻘뻘 흘리며 버스를 탔다. 50번째. 아니 어쩌면 51번째. 어제 머리를 잘라 기억은 이제 보이지 않고, 사진은 본래 잘 찍는 타입도 아니며, 왠지 그저 조금 모자란 향수에 맘이 더 무거워지고, 이미 한 달 넘게 시간은 흘러버렸지만, 나는 오션트리코(Ocean Trico)의 두 배나 비싼 왁스를 바르고, 30% 할인해 구입한 목걸이를 차고, 스투시의 민소매 셔츠와 H&M에서 구입한 세상 편한 반바지를 입으며 오늘도 도쿄에 간다. 작은 실패가 만연하는 이곳, 찜통같은 거리를 걸으며 도쿄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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