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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Jan 07. 2019

여름이 되어 끝나버린 그의 계절,  LETO

여름은 펑크 빛, 빗방울이 되어 추락하는 멜랑꼴리


영하 2도, 한 겨울에 '레토'를 본다. '레토'는 80년대 러시아의 록커 빅토르 최의 이야기고 '레토'는 러시아어로 '여름'이다. 처음 영화의 제목을 들었을 때, 나는 어쩌면 나처럼 작을지 모를 고독을 느꼈고, 러시아어를 조금도 모르면서 이 영화의 계절을 몹시 기다렸다. 레닌그라드 시대, 폭력과 억압에 시름하는 러시아의 흑백 영화같은 청춘을, 영화는 지치지 않고 노래한다. 영화를 보기 전 나는 저항의 시대를 사는 록 스토리 정도만 생각했지만, 누군가는 로큰롤 엘레지라 영화를 수식했고, 나는 그 곁에 바닷가에 홀로 남은 비트, 빅토르 최의 모습을 더하고 싶다. 많은 순간 자신의 자리에서 주저하는 빅토르 최(유태오)의 고독이 나는 좋았다. 애절하게 좋았다. 영화는 80년대 잿빛 시대를 펑크의 폭발하는 컬러로 도발하고, 빅토르의 삶은 멜랑꼴리를 남기고 떠나가지만, 내게 '레토'는 하염없이 작은, 숲 속의 고작 열흘 정도를 사는 나무인 것만 같다. 이기 팝, T-Rex,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를 빌려 영화는 소련의 80년대를 뒤흔든다. 하지만 멤버조차 자신의 곡에 수정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그냥 자신의 노래를 부르겠다며 자리를 뜬 빅토르 최의 빈 의자가, 내겐 더 남아있다. 빅토르의 음악은 영화의 초반 이름을 찾지 못해 밤길을 걷던 서툰 외로움의 멜로디를 닮아있고, 좋아하는 밴드의 마이크(로만 빌릭)를 만나서도 팬이라고 말문을 여는 건 그의 친구이자 동료이다. 빅토르는 친구와 둘이서 밴드를 시작했고, 마이크 무리와 어울리며 무대에 오르게되지만, '우리' 안에 남아있는 '혼자' 만의 조각이 이 영화엔 처연하고 선명하다. 펑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시대, 아이러니하게 펑크는 아련한 바닷가의 풍경을 품고있다.

'레토'는 자유롭다. 스탠딩은 커녕 하트 모양의 플랜카드 조차 들지 못하는 엄한 겨울의 시대에서 영화는 영화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최대한 시대를 초월한다. 고작 의자 하나 크기의 좁은 벽에 가로막힌 자유와 청춘의 기운을 과감하고 도발적으로 분출한다. 벽의 그래피티처럼 스크린을 낙서하고, 나의 착각일지 몰라도 스물 여덟 나이에 세상을 뜬 빅토르 최를 추모하듯 검정색 종이 위에 글을 적어 내려간다. 사다리를 타고 창문을 넘어 공연을 보아야 하는 시대에, 영화는 무대의 백스테이지를 롱테이크로 유영하고, 세상을 탈출하기 위해 유머러스한 애니메이션의 옷을 입고, 판타지의 꿈을 노래에 얹는다. 시대에 갇힌 자유의 꿈틀거림, 오직 그것만을 위해 '레토'는 존재한다. 러시아의 영웅, 80년대 록의 한 줄기를 이야기하면서도 빅토르 최의 개인사를 훑지 않고, 현실의 가장 먼 곳, 억압과 체재에 얽매이지 않은 무언가를 바라보는 아련한 시선이, 영화 '레토'엔 있다. 마이크와 나타샤(이리나 스타르셰바움) 앞에 나타난 빅토르와 그렇게 이어지는 셋의 이야기는 소위 록 스타의 스캔들, 혹은 삼각 관계의 진부한 드라마처럼 들리지만, '레토'는 결코 그런 상투적인 길을 가지 않는다. 결코 혼자를 버리지 못하는 이의 쓸쓸함에 비를 내리는 영화가 러시아의 여름, '레토'이다. 열차에서 시비 붙은 남자를 향해 펑크의 한 방을 날리고, 마지막을 암시하는 무대에서 관객들은 그제야 의자 하나 짜리 자유에서 벗어나지만, 그건 고작 몇 분 짜리 자유이고, 영화는 '이건 없었던 일입니다'라며 꼬리를 숨겨야 한다. 내게 '레토'는 세상에서 가장 애잔한 펑크의 음악이고, '나'이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시절의 여름 바다, 그 곁에 있다. 여름은 왜인지 어느새 끝나있다.

마음을 울리는 영화, 눈물을 닦게하는 음악, 누군가가 만든 무언가는 가끔 거짓말처럼 시간을 구원한다. 고작 나와 비슷한 이야기가 흘러갈 뿐인데, 왜인지 아무런 생각 없이 현실 너머를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그 너머에 보이는 건 어떻게도 내가 될 수 없는 무엇, 내가 아닌 무엇이고, 그런 노래와 영화들은 대부분, 왜인지 모두 다 슬프다. 빅토르의 노래가 하나둘 쌓여가며 마이크는 조금씩 뒤로 물러난다. 앨범 제작의 기회를 빅토르에게 넘기고, 그간 들어왔던 노래들에 보이지 않는 벽을 느낀다. 나와 닮아있지만 결코 내가 아닌 것. 노래가 끝나고 남아있는 미세한 진동을 영화는 품고있다.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나는 외면할 수 없었다. 빅토르의 첫 무대에서 마이크는 일렉트릭 기타 자리를 메워주며 그를 '우리' 안에 데려다 주지만, 정작 자신은 담배를 피우겠다며 홀로 공연장을 나선다. 빅토르와 나타샤, 둘을 위해 자리를 피해 나온 거리엔 비가 세차게 내리고, 술에 취한 여자가 나타나 울려퍼지는 건 나타샤가 좋아하지 않았던 곡, 루 리드의 'Perfect Day'다. 반어의 노래가 흘러가는 비오는 밤 거리에, 묘하게도 최악의 하루에 빠진 두 남녀와 빗방울이 되어 추락하는 멜랑꼴리. 그렇게 퍼펙트 데이. 어쩌면 이런 아이러니가 더 진짜인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혼자이고, 묘하게 이건 구원의 순간일지 모른다. 초반부터 노래가 끊이질 않을 정도로 흘러나오는 '레토'에 사용된 곡은 모두 스물 여덟 곡이고, 그만큼의 가녀린 외로움이 이 영화의 여름을 물들인다. '어디에도 없는 애절한 펑크, 샌들의 모래 알로만 남은 어느 여름 날의 흔적. 그저 여름이 되어 끝나버린 빅토르 최의 계절. 나는 문득 이 영화의 끝나지 않는 엔드롤을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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