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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2월 32일

내가 '레터'를 팔기 시작한 이유

'마이크로' 뉴스 레터를 발행하다.

by MONORESQUE


뭐 하나 사러 가게도 맘 편히 가지 못하는 계절, 집에서 클릭만으로 물건을 사들이며 돌연 '가격'에 대해 생각한다. 사실 물건의 값을 결정하는 건 원가에 가게의 인건비를 포함 고정비에 브랜드 가치, 혹은 매력이거나 부풀려진 이미지가 더해진, 나아가 사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돈'에 대한 감각에 반(反応)하는 가격일텐데, 돌연 많은 게 거세된 듯한 시절에 클릭 한 번에 마땅한 지출은 얼마일까를 고민한다. 말하자면, 쇼핑의 즐거움이 휘발된, 서비스, 일본에선 접객이라 불리던 것들이 자리를 잃어버린 가운데 '물건'은 그 무게, 혹은 크기만큼의 값으로 책정할 수 있을까. 아메리카노 4500원짜리를 배에 달하는 배달비를 지불하고 사마시기도 하는 시절, 어쩌면 '값'의 주요 결정 요소는 '접근권', access에 따라 좌우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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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할인해 팔면, 상점에서 가게는 그저 팔기만 할 뿐이고, 사는 사람은 그저 사기만 할 뿐입니다. 할인 판매로 사고 싶은 물건을 싸게 구입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이입니다. 하지만 모든 무건을 정당하게 '제값 주고 사는' 편이 결국에는 삶에도, 마음에도 무언가를 남길 것입니다."
-D&Department에서 배우다-전하는 가게를 만드는 법' 가운데.

벌써 지난 해 여름 나가오카 켄메이를 (랜선으로) 인터뷰하며, 그의 글들을 찾다 저 대목에서 참 '아름다운 말'이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제값'이란 새삼 무엇인지. 서로가 이야기를 나누며 부족한 점을 함께 하고 채워가고 덜어가고, 나아가 다음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소비(판매)는, 지극히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그만큼 멀리있고, 우리가 사는 요즘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하지만 레이 카와쿠보가 이야기했던 '의미있는 진짜 물건은 비싸다'라는 말에는, 조금 더 '물건',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이 있다. 만든 사람의 고뇌와 수고와 땀과 눈물이 묻어있겠지만 결국은 만들어진 완성품, 그 자체로서의 '물건.' 그만큼 차갑고 냉정하고, 셔츠 한 벌에 기십만원 하는 걸 만드는 그의 꼼데갸르송을 생각하면 좀 얄밉기도 하지만, 보다 현실적이고, 어쨋뜬 조금은 가늠이 된다. 대체, '값'이란 무엇인가.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아닌 결론은 싸게 산 비지떡은 금방은 좋아도 값에 좌우된 결과이고(그저 모른척 할 뿐 아님 생각하지 않을 뿐), 애써 산 기십만원 짜리 셔츠 한장은 '값'에 대한 성취, 내가 주도한 소비, 구매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값이 쓰여진 내 삶의 한폭.


나가오카는 앞으로는 다시 '경험(コト)'이 아닌 '물건(モノ)'이 주도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 예견한 적도 있는데, 코로나 변수에 뉘앙스는 달라졌지만 정말 그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 변하지 않는 것 하나 없는 시절에 가격에 대한 성찰이 어쩌면 필요하다. 새삼 '값'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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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를 시작하고, '요즘 막 던지는 뉴스레터..'같은 말을 들었다. 딱히 내게 한 말은 아니고, 그저 누군가의 SNS에서 올라왔던 글이니, 정확히 말하면 '들은'게 아니고, '보았다.' 그런데도 왜인지 마음이 뜨끔, 얼굴이 화끈했던 건, 레터란 건 사실 가장 상대를 의식하며 적는 글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에 읽히길바라며 쓰여지지 않은 글은 얼마 없고, 설령 있다 한들 글은 애초 무언가를 향한 발화이기 때문에 나는 외톨이의 독백도, 실은 대화를 숨기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레터를 시작하며 나는 처음으로 내게 마감을 하기로 결정했다. 나의 모놀로그가 끝나지 않기를 바랬고, 지속되길 원했다. 그런데 누구에게. 편지는 수신자, 내가 아닌 너, 2인칭의 타자를 찾는 모색의 길인 것을.




내가 발행하기 시작한 뉴스 레터는, 유료 메일이다. 근래 정확히 코로나 이후 많은 미디어들이 디지털 콘텐츠를 유료, 최소 반은 유료로 돌리고 있는 걸 몸으로 절감하고 있는데, 갑작스레 실종된 오프라인의 네트워크를 실감하고, 온라인 상에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하지만, 모두가 모두를 알며 살 수 없는 일이고, 세상 모든 뉴스(이야기)가 그만큼의 필요로 태어나는 것도 아니다. 난 이걸 멋대로 매스 매디어의 본격적인 소실이라 생각하고 싶어졌다. 여행은 돌연 발길이 막혀 '마이크로 트래블'이란 말이 나오고, 그러고보니 언젠가부터 우린 '로컬'을 찾아다녔고, 점점 작아지는 세상, 밖도 맘껏 나가지 못하는 세상은 그 만큼의 작(적)은 이야기만을 소비한다. 아니, 소화할 수 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나의 외로움이란 얼마나 허무했는지, 보지도 못한 이를 향해 열변을 토하는 건 얼마나 싱거운 일인지. 매스 미디어 속 나를 난 새삼 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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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투어는 취소됐지만 하룻밤 라이브는 영화가 되어, 나름의 구색을 갖췄다, 쿠마 켄고의 일하는 밤과 시부야의 시작하는 밤.


얼마 전 트위터로 주목받아 지금 가장 바쁜 시인 사이하테 타히는 트위터에 또 하나의 트윗을 올리며 '의식하는 글쓰기'란 말을 한 적이 있다. 여기서 그녀에게 의식이란, 우리가 남과 나를 비교하고 '보여주기'식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빠지는 어리석음의 '의식'을 뜻함은 아니고, 곁에 없지만 기억하는, 떠오른 글귀 한 곁을 지나는 타인, 아니면 조금 더 현실적으로 카페에서 키보드를 두드리 때 주변을 스쳐가는 무수한 소음과 체취와 음악 소리와 같이, 나를 둘러싼 내가 아닌 모든 것을 향한 '의식'이다. 난 이게 그저, 그냥 딱 시와 같은 글쓰리라고 생각했는데, 애초 글쓰기는 나와 내가 아닌 것 사이의 이런저런 자극, 파동, 움직임이 겨우 글을 만나 형태를 갖춘 A4 한장이거나, 트위터 140자가 되는 일이고, 발화되지 않은 글은 어쩌면 그렇게 모두, 시다. 월 8천원, 무료 1번을 포함한 네 번의 레터. 이건 나의 '의식하는 글쓰기'적 셈법, 나와 내가 아닌 내 범주의 모든 것을 '의식'하며 돌아본 숫자이다.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내 삶의 물가에 기반했다.


뉴스레터, 야마테센의 뉴스 배달부. 2호부터는 유료(무료로 보는 미리보기 포함)로 발행했습니다. 주제는, 코로나와 아날로그 02. 어느 비닐봉지의 미련과 떠나지 않는 여행을 위한 가이드 북과 킷사뗑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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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aily.so/tokyonotable/posts/1e3826


그리고, 저는 오늘 이 노래를 듣습니다. sunset rollercoaster, 도쿄같은 음악을 하는 타이페이 뮤지션입니다.

https://youtu.be/GnJOxq0fl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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