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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Jun 05. 2021

이와이 월드의 360도 풍경

단 하나의 진실과 수 천개의 거짓말, '립반 윙클의 신부',



오래 전 신쥬쿠. 고작 편의점에 다녀오며 길을 잃었다. 아마도 코레에다 히로카즈의 ‘세 번째 살인' 티켓을 끊어놓고 담배가 떨어졌는지, 마실 것이 필요했는지 잠시 편의점에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돌연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빠져버렸다. 도쿄, 특히나 신쥬쿠라면 수 십번은 왔다갔다 했던 길인데 갑작스레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어쩌면 있다. 물론 지도 어플을 켜고 방향을 감지해 어떻게든 찾아갈 수도, 길가는 행인을 잡고 도움을 청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정체없는 혹은 갑작스런 ‘방황', ‘감각의 상실'은 그렇게 ‘지도 위’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와이 슌지의 벌써 10 여년 전 영화 ‘립반윙클의 신부'를 이제야 다시 찾아보며 문득 그 날의 ‘어색함'이 떠올랐다. 왜 하필 10여 년 만에. 왜 하필 지금에 와서. 하지만 이와이 슌지는 이 영화 이후 지금까지 고작 두 편의 영화를 완성한 게 전부이고, 난 그의 영화엔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는 ‘길 잃은 서사'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엔 ‘떠남' 이후 (왜인지) 돌아오지 못하는 길이 있다.



‘립반 윙클의 신부'는 (나와 마찬가지로) 신쥬쿠 길가에서 모르던 남자와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고 끝내 결혼까지 해버리게 되는 ‘나나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이른 오후에 사람들은 갈 길을 가고 곁을 스쳐가고 혹은 문득 뒤를 돌아 쳐다보기도 한다. 쿠로키 하나가 연기한 주인공 이름은 미나가와 나나미이지만 SNS 사이트 '플래넷'에서 동시에 ‘크램본' 이기도 하고, 이와이 감독은 지루한 오후의 신쥬쿠 거리를 어딘가 낯선 세계의 불안한 도입처럼 그려낸다. 이와이 특유의 영화적 미학은 가장 평범한 일상에 기묘한 질감을 드러내, ‘립반 윙클의 신부'는 영화 초반부터 현실 조금 밖의, 이곳에서 수 센티미터 쯤 떨어진 곳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다. 인파 속에 길을 잃은 ‘시간'처럼, 아니 ‘길'이 아닌 ‘나'를 잃어버린 것처럼. 

영화는 인터넷 세계와 리얼이 뒤섞인 ‘현실'의 지극히 보편적 도시에서 시작하지만, 그만큼 가볍고 파편적인 동시에 현실을 살짝 ‘부유하는', ‘이세계’의 이야기가 되어있다. (그리고 이게, 아마 이 영화의 초점이다...라고 생각한다.) 나나미는 인터넷에서 한 남자를 알고 끝내 결혼까지 하게되지만, 소위 ‘데이팅 앱'에서 시작해 식까지 올려버리는 케이스의 주인공이지만, 그녀의 이름은 나나미, 그리고 크램본. 길을 찾지 못한 하루는 아직도 ‘어딘가'에 서성인다.



본론을 이야기하기 앞서, 이와이 슌지의 열 세번 째 작품, 근래 들어서는 지난해 공개됐던 ‘라스트 레터'의 바로 전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오해', 혹은 ‘오독'의 운명을 타고난 작품일지 모른다. 먼저 본래 3시간으로 완성된 영화는 국내에선 120분으로 한 시간이 몽땅 삭제돼 공개됐고, 느슨한 3부작의 구성을 하고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건 결코 무시하지 못할 ‘미완의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서인지, (아니면 그와는 별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당시 국내에서 이 영화에 대한 평은 전체적으로 꽤나 좋지 못했는데, 대부분의 (악)평들을 보면 그곳엔 현실과 비현실, 사이버 세계에서의 ‘가공 현실'을 제외한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대한 레퍼런스가 전무하다. 가령 나나미와 아무로, 마시로 등 극중 인물들의 행동에서 ‘인과 관계'를 찾아내려는 헛된 ‘현실’의 애씀들. 온오프의 구멍을 메운다거나, SNS 시대와 손편지(아마도 ‘러브레터')를 굳이 연결시켜 ‘구멍'을 찾아낸다거나. 


말하자면, 장르, 혹은 이와이 식 영화에 기대어 ‘립반 윙클의 신부'를 바라보는, 길을 잃고도 아닌 척을 하려는 시점인데, 애초 이와이 슌지의 ‘월드'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 참조할 만한 텍스트가 아니다. 그의 대표작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러브 레터'와 감정적 연대에 있을지언정,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설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립반 윙클의 신부'에서 ‘나나미’는 ‘네코카부리'를 쓰고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숨바꼭질'의 ‘술래'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것도 세 번의 ‘도망'과 이탈, 그리고 한 번의 비약을 통해. 영화는 끝내 제목의 의미를 설명하지 않고, 그건 고작 나나미의 친구 마시로의 닉네임으로,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다. 



하지만 영화의 한 시간이 몽땅 잘려나간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영화엔 수상한 구석이 많다. SNS 사이트에 불평 불만을 털어놓으면서도 결혼까지 해버리는 나나미의 심정이랄지, 어디 하나 의심쩍지 않은 게 없는데 별 탈 없이 흘러가는 아무로와 나나미의 ‘오묘한 관계'랄지. 말하자면 이 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악평'들이 지적했던 ‘서사로서의 헛점'이 ‘립반 윙클의 신부'엔 채워지지 못한 채, 혹은 않은 채 그저 쌓여만 있다. 줄거리만 쏙 도려내 늘어놓아 보면 한 마디로 구멍이 많은 빈약한 전개의 얼개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엔 조금 다른 차원의 이상함, ‘수상함'이 장치처럼 들어있고, 가상과 현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세계에서 그건 어쩌면 더 현실이거나 덜 리얼일 뿐이다. 단순히 SNS에서의 나는 얼마나 '나'이고 또 '나'가 아닌가라는 문제. 이와이 슌지는 애초 진짜/가짜, 원인/결과, 시간의 전후이거나 사건의 얼개 같은 거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나나미는 인터넷에서 알게 된 남자와 결혼을 하고, 숨겨왔던 비밀이 들통나 좇겨나고, SNS에서 알게 된 또 한명의 남자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오늘을, 그리고 또 하루를 살아가지만, 중요한 건 왜, 이유가 아니라 사건이 벌어진 이후의 잔해들, 궁지에 내몰렸다, 나락에 빠졌다 다시 일어나 나아가는 나나미의 또 한 번의 발걸음에 있다. 숨바꼭질의 술레가 눈을 가렸다 손을 떼어냈을 때의 순간 같은 것. 그러니까 우리는 왜 여기까지 와버렸을까의 문제이거나, ‘길’이 아닌 ‘나'를 잃어버리는 시간은 왜 찾아올까라는 의문. 애초 ‘립반 윙클'은 술 마시고 잠에 들었다 눈을 뜨니 세계가 변해있었다'에 대한 은유이고, 술에 취했다 일어난 아침녘의 햇살은 얼마나 진짜이고, 얼마나 환영일까. '립반 윙클'의 유래가 된 테라지마 슈지의 작품 '야수는 죽어야 한다(野獣死すべ)'에서 그건 세상이 조금 변화는 길목의 순간이었다.



한 시간이 도려내진 ‘립반 윙클의 신부'를 재구성, 풀어보면 이 이야이가는 일종의 ‘정반합'적 구조를 취하고 있다. 아마도 그 중 ‘반'에 해당하는 ‘현실'의 이야기가 120분 버전에서 삭제되었는데, 아슬아슬, 평온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위태롭게 살아가는 나나미의 180분 인생이 오가는 건, 가짜가 뒤섞인 ‘페이크 현실', 가상의 프레임을 걷어낸 ‘대면하는 리얼’, 그리고 두 번의 숨바꼭질과 추락을 지나온 ‘(어쩌면) 진실'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60분씩 세 파트, 정확한 계산에 의해 설계된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이 영화의 ‘뉘앙스(감각)'는 정의되지 않은, 설명되거나 해명되지 않은 수수께끼의 ‘일상', 그 연쇄에 가깝다. 나나미의 관점에서 왜곡된, 혹은 기울어진 앵글에서 뒤틀린 하루가 ‘정정(訂正)'되지 못한 채 계속 걷고있다. 진짜 아닌 진짜 같은 것들. 현실 아닌 현실, 가짜 아닌 가짜가 사건을 만들고, 위기를 타넘고 가상의 절벽, 진실의 구렁에서 뒹굴다 다시 일어난다. 


다단계 사기꾼처럼 나타나 나나미의 1막과 2막, 그리고 3막을 함께하는 아무로는 악인일까, 선인일까. 알리바이 상 나나미의 이혼은 시어머니의 ‘술수'에 의한 것이지만, 화면에 찍힌, 사진에 담긴 증거는 얼마나 진실이고 또 가짜일까. 기간제 학교 교사에서 시작해 이혼녀, 호텔의 청소원을 지나 알 수 없는 대저택에서의 ‘호화로운’ 메이드 생활까지 이어지는 나나미의 인생은 그야말로 우여곡절 자체이지만, 이건 모두 허구와 현실을 오가는 어느 ‘숨바꼭질’의 여정이기도 하다. 계속해서 변화하며 움직이는 나나미의 일상은 일견 보이지 않는 ‘이異なる차원’을 향한 '고독'의 ‘홀로서기'처럼도 보이기도 한다. 급속하게 친해진 마시로, 아니 결혼식 속 가짜 자매 사이였던 언니 키요미와 긴자의 작은 바에서 노래를 부르며 나나미가 택한 곡은 모리타 도우지의 ‘우리들의 실패.' 들려올 듯 사라질 듯. 쿠로키 하나의 음성은 왜이리 절묘하게 가녀리고 또 강인한지. 이렇게 애처롭고 장대한 실패담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꼭꼭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립반 윙클의 신부'는 2015년 이와이 자신이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이와이는 한 인터뷰에서 ‘립반 윙클의 신부'를 2012년(소설 집필 3년 전) CM 오디션 장에서 만났던 배우 쿠로키 하나에서 떠올린 작품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만큼 이 영화에서 쿠로키 하나, 그녀의 얼굴, 분위기, 목소리, 여리지만 좀처럼 섞이지 않는, 어딘가 ‘이세계'를 떠도는 듯한 ‘부유'의 이미지는 대체할 수 없는 ‘장치', 어쩌면 이 영화 자체이기도 하다. 첫 장면 신주쿠 한복판에서 ‘남자'를 찾으려 두리번 거리는, 평범하지만 이상하게 생경한 대목부터, 비밀이 들통나 ‘어딘가'를 방황하는 '가장 외로운 장면'까지. 나나미가 내뱉는 특유의 여리고 애절한 목소리 ‘여기는 어디인가요?’, ‘어디로 가면 되죠?’는 가장 무력하지만 가장 진실에 가깝고, 나나미란 여자의 작은 세계에 인생, 절대적 고독을 데려오는 이상한 마법이 실현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모든 게 거짓이고 모든 게 진실인 세상. 결혼의 서약이 지켜지는 건 어느 찰나의 진실에서인지. 진정한 용서, 사랑이 꽃을 피우는 건 어느 거짓의 ‘구멍'에서인지. 영화의 마지막, 나나미, 아무로, 그리고 마시로가 아닌 그의 엄마는 옷을 벗고 울부짓는데, 그곳엔 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고 주고받던 말들이 이상하게 빛을 내는 순간이 있다. 현실도 꿈도 아닌 어느 '중간 세계'에서의 술과 눈물과 말과 마음들.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을 때, 세상은 아마 달라져있고, 그건 어쩌면 현실, 그리고 가짜 현실을 지나온, 너와 나의 조금 오래된 '오늘'일지 모른세상엔 그렇게 ‘말해지지 않음’으로 완성되는 ‘고독'의 세계가 있다. 


https://youtu.be/Exr1FSKqB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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