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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Jul 18. 2017

콰르텟 속의 다름

친하지만 멀고 멀지만 친한 사이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은 팬티 없이 바지 입고 돌아다니는 존재일지 모른다. 세상엔 세 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는 노보리사카(오르막길)고 둘은 쿠다리사카(내리막길)며 셋은 마사카(설마)다. 부부는 무언지 알 수가 없지만 확실한 건 헤어질 수 있는 가족이란 점이다. 사카모토 유지 각본의 드라마 <콰르텟>을 보고있다. 노래방에서 우연히 마주친 게 계기가 되어 콰르텟을 꾸려 활동하는 네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대사가 하나같이 주옥같아 마음을 저며온다. 하지만 여기서 우연은 표피일 뿐 실은 누군가의 의도이고 누군가의 계획이다. 드라마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해매고 있는 남녀가 악기가 '라'음을 향해 조율해나가는 것처럼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는 과정을 그린다. 그런데 이 과정이 기승전결의 드라마도 아니고 좌충우돌의 소동극도 아니다. 드라마는 사소한 감정 하나, 사소한 말 하나가 빚어내는 인간 군상의 오묘한 세계를 그려낸다. 말의 의미보다 말이 자리한 자리에서 더 많은 걸 드러내는 말의 세계를 그려낸다. 그리고 이게 너무나 현대적이고 너무나 사실적이라 보는 내내 가슴을 치게한다. 사카모토 준지는 불협화음 내에서도 진실을 빚어내는 재주를 타고났다. 

 

드라마의 줄기는 단순하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인물 뒤에 가려진 사실이 드러나긴 하지만 어찌됐든 네 남녀가 만나 콰르텟을 이루고 일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건 결코 복잡한 줄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단조롭게 느껴지진 않는 건 사카모토 유지의 대사 덕택이다. 드라마는 말의 작은 공기, 공기의 옅은 기운 같은 걸 들여다본다. 가령 이런 식이다. 카라아게를 눈 앞에 두고 레몬을 뿌린 스즈메와 벳푸에게 이에모리는 지금 무엇을 하냐고 묻는다. 주방에 있다 돌아온 마키가 '왜 레몬 뿌릴까요' 이 한마디가 없었냐고 더한다. 그리고 이 말을 스즈메에게 해보라고 말한다. 스즈메와 벳푸가 그렇게 하고 이에모리는 '자, 지금 어때요?'라고 또 묻는다. '레몬 뿌릴까요?'란 질문엔 레몬을 뿌릴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기운이 숨어있다. 쉽게 간과되는 대목이다. 또 하나. 결혼은 했지만 신혼여행을 가지 않았다는 마키에게 이에모리는 '그건 주방 청소를 해놨기 때문에 밥 하기가 싫은 거랑 마찬가지죠'라고 말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이 말로 표현된다. 마술같은 순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순간이 쌓여 드라마는 인간 군상의 오묘하고 복잡한 세계를 종이에 물들이 듯 서서히 드러낸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감정 서사극이다.


스즈메는 거리에서 첼로를 켜는 악사다. 어느날 그녀에게 의문의 중년 여성이 다가오는데 여성은 스즈메에게 의문의 제안을 하나 한다. 한 여성이 찍힌 사진 한장과 일 만 엔을 건네며 사진 속의 여자와 절친이 된 뒤 배신하면 된다는 제안을. 여기서 사진 속 여성은 마키다. 마키는 바이올린을 켜는 연주자로 결혼을 했지만 남편이 일 년 전 집을 나갔다. 마키와 얽혀있는 인물은 또 한 명 있다. 바로 벳푸다. 벳푸는 학생 시절 우연히 연주하는 마키 모습을 보고 넋을 잃었었고 몇번의 우연을 통해 그녀와 더 마주했다. 벳푸는 마키를 사랑한다. 여기에 이에모리가 더해져 남녀 4인의 콰르텟이 결성된다. 벳푸의 별장에서의 공동 생활이 시작된다. 우연아닌 우연, 짝을 이루지 못하는 사랑, 콰르텟이란 이름 하에 뭉친 개별의 존재. 재미는 어긋남과 차이에서 온다. 드라마는 실은 우리의 삶이 사사한 차이, 사소한 어긋남으로 이뤄진 알 수 없는 작은 성이라는 걸 무수히 많은 말의 얼개로 보여준다. 기존의 사카모토 유지 드라마에 없었던 방식이다. 그런데 나는 이 방식이, 이렇게 그려진 세계가 너무나 선명하고 애처로워 이 드라마가 사랑스럽다. 말로 다하지 못했던 감정의 세계가 실체를 드러낼 때 우리는 움츠러들 수 밖에 없다. 드라마는 그걸 해낸다. 아주 유연하고 아주 품위있게.


마키는 남편 없이 사는 기혼 여성이다. 그녀와 남편의 사이가 왜 멀어졌는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결혼을 했는데 혼자인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이러한 관계를 자주 겪는다. 친하지만 먼 사이, 멀지만 친한 사이, 결혼했지만 혼자이고 혼자이지만 결혼한 상황. 드라마는 이 알 수 없는 관계의 결을 말로서 풀이한다. 오묘했던 세계가 실체를 드러내고 먹먹했던 감정이 껍질을 벗는다. 결혼 후 마키의 남편에게 마키는 그저 가정주부에 불과한 존재가 되었고 마키에게 남편은 감정을 잃은 사랑의 대상이 되었다. 너무나 현실이라 거짓말 같다. 벳푸에 대한 스즈메의 사랑이 가닿지 못하는 것도 드라마는 말로서 그려낸다. '더 나아지려고 하지 않아도 되요, 경쟁하지 않아도 되요. 다 나름의 자리라는 게 있어요.' 스즈메의 대사다. 벳푸와 마키의 아름다운 모습을 정말로 좋아서 바라보는 스즈메의 모습은 이렇게 이해된다. 앙상블 안에는 여러 개의 음들이 존재한다. 콰르텟 속에는 네 개의 악기 소리가 공존한다. 현실로 드러나는 건 밸런스를 이룬 단 하나의 소리지만 실제는 여러개의 다름이다. 드라마는 이 다름을 애써서 보듬는다. 사람의 여리지만 존재하는 가녀린 감정을 드러낸다. 어쩌면 사람은 팬티를 입지 않고 바지를 입은 채 살아가는 존재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건 콰르텟의 화음이 아닌, 콰르텟의 다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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