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과 임종 경험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은?
(그림 1) Zen Hospice Project, https://www.zenhospice.org/
이번 글에서 죽음 경험 디자인에 관한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2017년 3월 그린위치 대학교(University of Greenwich)에서 열린 “죽음을 디자인하다: 21세기에 풀어야 할 과제와 미학 (Designing Death: Challenges and Aesthetics for the 21st Century)” 세미나를 참가한 경험과 참고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죽음을 디자인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 임종하는 시간, 장례식을 각자의 바람대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관습을 새로운 눈으로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넓게 보자면 호스피스나 장례 이후의 애도도 포함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장례식에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현재의 형식은 그것을 충족시켜 주고 있을까요? 2016년 서울 의료원 장례문화 서비스 디자인팀은 자신이 바라는 장례식에 관한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설문에 따르면, 시민들은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간소한 예식을 원했습니다. 장례식을 통해 고유한 삶의 색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장례를 치르는 바쁜 일정에서 상조회사가 정해주는 음식, 장소, 절차를 따라가게 됩니다.
(그림2) 서울 의료원 장례 문화 워크숍 사진, 2016년 9월 12일,
doctors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7725
죽음에 관한 대화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세계적인 현상인 것 같습니다. 2015년 Comres 사는 영국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죽음에 관한 대중 인식’에 관하여 설문을 했습니다. 응답자 80% 이상이 자신이 원하는 임종에 관한 뚜렷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가족에게 임종에 대한 바람에 관해 물어본 응답자는 20%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좀 더 가까운 일본의 설문 결과를 볼까요. 2013년 일본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에서 55%가 ‘내 죽음이 임박했을 때 내가 바라거나 바라지 않는 의료 문제에 대해 가족과 대화한 적이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한국의 통계는 찾지 못했지만, 영국인 유언장 작성 비율이 30%를 웃돌고, 한국인 유언장 작성 비율이 3~5%라 합니다. 죽음에 관해 대화를 꺼리는 현상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예상해 봅니다.
하지만 죽음에 관해 대화를 하지 않으면, 본인도 가족도 결국 원하지 않는 결과를 맞게 됩니다. 죽음에 관한 대화를 통해, 어떻게 장례식을 치르고 싶은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대화 없이 갑자기 사고를 당하거나 급격하게 병세가 악화되면 어떻게 될까요? 가족들이 본인 대신에 중요한 선택을 내려야 합니다. 가족들은 이 선택지가 당사자가 원하는 선택 인가하는 고민에 빠집니다. 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완화 치료나 장례식을 받게 될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 소개하는 사례는 죽음에 대해 대화를 열게 하는 경험 디자인 사례입니다. Death Cafe는 12명 남짓한 서로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차와 케이크를 먹으며 2시간 동안 죽음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비영리 이벤트입니다. 스위스 사회학자인 Bernard Crettaz가 2004년 처음 주최한 Cafe Mortel을 시작으로, 2011년까지 52개국에서 5787번의 Death Cafe가 열렸습니다. 실제 존재하는 장소가 아니라, 레스토랑, 카페나 집을 빌려서 죽음에 관한 대화의 장을 열면 그곳이 Death Cafe가 되는 것입니다.
(영상1) Death Cafe 주최자, 참가자 인터뷰 및 현장 영상, http://metro.co.uk/video/what-earth-death-caf-1256199/?ito=vjs-link
누구나 쉽게 Death Cafe를 주최할 수 있습니다. 웹사이트에 상세한 설명이 나와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죽음에 관해 대화를 하기 위해서 케이크와 차나 커피를 꼭 준비할 것을 당부합니다. 2가지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가 있어서 질문을 던지는 방식, 혹은 진행자 없이 참여자들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입니다.
Death Cafe의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죽음에 관해 열린 대화를 나누고, 편안하게 죽음에 대해 대화를 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터부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자기 죽음에 관련된 소망에 관해 이야기할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생각을 표현할 기회도 가집니다.
새로운 장례식은 과거에 우리가 참석했던 장례식과 같을 필요가 없습니다. 고인의 삶을 진실하게 나타내는 장례식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장례식은 당신이 꿈꾸는 새로운 형태로 다시 탄생할 수 있습니다.
-Poetic Ending의 소개 글 중 발췌-
아래에서 소개하는 사례는 고인에 대한 맞춤형 장례식을 만들어주는 사례입니다. Poetic Ending은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Louise Winter 님이 설립한 장례 컨설팅 회사입니다. Louise 님은 판에 박힌 장례식을 통해서는 더 사람들이 적절히 죽음을 애도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독교 신자가 나날이 줄어드는 영국입니다. 사람들은 더 종교적 장례 예식을 통해 슬픔을 달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장례식 절차는 종교적 관습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그림3) Plan your funeral page, Poetic Endings. https://www.poetic-endings.com/plan-your-funeral/
Louise 님의 장례 컨설팅은 고객의 상황 이해에서 시작합니다. 우선 장례식을 함께 하겠다고 결정하면 Poetic Ending 회사로부터 이메일을 통해 일련의 질문지를 받습니다. 고객은 이 과정을 통해 스스로에 대해 성찰하게 되고, 어떻게 가족과 이별할지 생각하게 됩니다. Poetic Ending은 고객의 답 이메일을 받고 직접 고객과 대면하여 대화합니다. 고객이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는지, 어떤 예산을 가졌는지에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좋은 장례 디자인은 사용자의 감정과 상황에 대한 진솔한 공감에서 시작합니다.
(그림4) 관, 자동차를 선택하는 옵션 페이지, https://www.poetic-endings.com/modern-funerals/
Poetic Ending에서는 사용자가 원하는 옵션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관, 예식, 장소, 이동 수단까지 예산과 취향에 맞춰 선택할 수 있습니다. Louise 님은 장례 지도사로 일한 경력을 통해, 상조업의 불투명한 운영을 알고 있었습니다. 웹사이트에도 가격을 투명하게 표기합니다. 본인이 직접 장례 지도사로 일한 경험에서, 장례식장 운영자들과 예식 지도사들과의 네트워크를 쌓았습니다. 이들과 협력하여 사용자들이 원하는 옵션을 만들었습니다.
(그림5) 고인을 위한 시, 그림 출처: https://www.poetic-endings.com/unusual-funeral-poetry/
Poetic Ending을 통해 고인의 삶을 반영하는 시나 노래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지도사를 선택합니다. 장례 지도사들(Celebrant)은 고인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어떻게 고인을 기억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고인에 대한 가족의 기억을 예술과 문학으로 승화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각자에게 맞는 예식의 틀을 만들기도 합니다.
Louise는 새로운 서비스를 디자인했습니다. 사람들이 각자 다르게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고객들에게 각자가 편하게 느끼는 만큼만 장례 과정에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자신의 회사가 장례 문화의 웨딩 플래너가 되는 것을 원치 않고, 장례식을 신나는 파티로 만드는 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단지, 죽음이 가져오는 복잡한 감정을 각자에게 맞는 속도, 방법으로 소화하기를 바랐습니다.
“당신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 소리는 무엇인가요?”
- 요코, 일렉트로닉 음악가 -
병원에 장기간 입원하게 된 전자 음악가 요코는, 병원의 '소리 디자인'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녀는 병원의 알람 소리가 환자의 회복을 방해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병원의 삐- 하는 알림 음을 화음에 맞게 조율하는 것으로 첫번째 간단한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비디오 참고) 다음으로, 청각이 사람이 마지막으로 가지는 감각이라는 것도 알게됩니다. 병원의 알림소리,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듣게 될 소리는 무엇일까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영상 2) The Future of Hospital Sound from Yoko K. on Vimeo, https://vimeo.com/140277104
그 이후 요코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듣고 싶어하는 소리를 편집하여 공연합니다. OPEN IDEO와 협력하여, 6명의 병원 스태프 도움을 받아, 40명의 환자가 병원에서 어떤 소리를 듣고 어떤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지 인터뷰하였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사람들이 죽기 직전 듣고 싶어 하는 소리를 수집합니다. 바닷소리,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와 웃음소리였습니다. 2016년 10월, San Francisco의 End of Life Conference에서 요코는 인터뷰의 목소리와 인터뷰에 담긴 소리를 엮어 공연합니다. 공연 음향은 다음 링크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My Last Sound: http://www.sensound.space/my-last-sound/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우리는 앞으로 임종 경험을 의학적 관점에서 확장하여 디자인할 것입니다. 시각, 청각, 후각의 감각 경험, 공간, 감정과 기억을 총체적으로 고려하여 디자인하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디자이너는 임종 경험에서, 육체적 고통을 덜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시간 속 의미를 찾게 할 수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죽음 너머의 즐거움을 발견하도록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창조적 혁신 전략 디자이노베이션의 저자, Verganti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디자이너는 사물과 경험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조한다.” 죽음을 디자인하는 영역에서는 작고 섬세한 변화가 더욱 효과적입니다. 영국 디자인 카운슬의 Mat Hunter님은, “특히 죽음과 관련된 디자인에서는 영향력 있는 큰 변화보다는 ‘한계적 변화(incremental change)'가 중요합니다. 겸허한 자세로 귀 기울이는 것 무엇보다 중요합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죽음을 둘러싼 영역에서 그 동안 침묵해왔던 사용자 목소리가 어떤 새로운 디자인 기회로 다가올 지 기대합니다. 한국의 서울 의료원의 서비스 디자인 팀에서 서울 시민 장례 문화 다시 디자인하기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다. 2017년 말, 한국에서 2개의 장례 문화 관련 스타트업도 런칭했습니다. (아래 참조) 죽음에 관한 대화를 진솔하게 열어주는 디자인 장치가 좋은 장례 디자인의 관건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포스트를 마칩니다.
참고 자료
스타트업
- 대장정
- 페어웰
컨퍼런스
- End Well Symposium: Design for the End of Life Experience
(San Francisco, USA / 2018. 12. 06)
기사/통계
- Being and Dying Design Research Group
- OPEN IDEO End of Life Design Challenge Stories
- Design Council, 21세기에 죽음을 재창조하다
- Queensland Gov, 왜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게 중요한가
이 글은 pxd 팀블로그(http://story.pxd.co.kr/)에 동시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