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디자인은 불필요한 일을 줄인다.
서비스 디자인 공부를 하며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 왜 서비스 디자인 솔루션은 ‘앱’이 많을까? 공간, 감각, 제품.. 디자인 장치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앱 기반 인터페이스가 과연 가장 좋은 해결책인가? 우선 나부터 반성한다. 시간에 쫓길 때 나는 불안함에, 스크린을 그려냈다. 백지를 제출하는 것보다 ‘앱 스크린’을 제출하는게 평타는 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앱이 얼마나 불필요한 단계를 많이 만들어내는지 꼬집어준다. 저자는 차문을 여는 앱을 사례로 든다. 단계 2부터 단계 12까지는 앱 기반 인터페이스가 만들어낸 단계다.
1.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2. 스마트폰을 꺼낸다.
3. 스마트폰을 켠다.
4.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한다.
5. 마지막으로 실행한 앱을 종료한다.
6. 방금 종료한 앱이 속해있던 폴더를 빠져나온다.
7. 엄청나게 많은 앱 아이콘 중 자동차 앱을 찾는다.
8. 아이콘을 선택하여 앱을 실행한다.
9. 앱 로딩을 기다린 뒤, 문열림 버튼이 화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본다.
10. 메뉴의 기능을 추측해보면서 제어 버튼을 선택한다.
11. 문열림 버튼을 선택한다.
12. 슬라이더를 밀어 잠금 장치를 해제한다.
13. 차 손잡이를 당겨 문을 연다. (나의 목표)
불필요한 인터페이스를 걷어낸다면, 단계 1과 단계 13만 남는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렇게 모든 문제에 ‘앱’을 구겨넣게 되었을까? 저자는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사용자가 학습할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장애를 해결하는 데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거나 과도하게 스크린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라 이야기하며, 이를 위해 사용자의 ‘일반적인 행위를 고려하여 평소에 하던 행동대로 디자인’하기를 제안한다.
저자는 스크린 기반 사고가 만연하게 된 원인을 2가지로 지적한다.
하나는 UI/UX 디자인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구인 공고를 보면, 'UI/UX 디자이너 모집'이라는 제목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는 '두 개념의 구분이 모호한 상태에서 채용을 하고, 인터페이스를 설계하는 디자이너를 채용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일단 스크린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우리의 직무를 규정해버렸기 때문'이다. 디자인 업계에서도 UI/UX/CX/SD 개념은 구분이 어렵고, 의견이 분분한 개념이다. 하물며 디자인 종사자가 아닌 인사 담당자는 어떻게 개념 차이를 이해할 것인가? 이를 보며, 무엇보다 디자이너로서 나의 정체성, 내 직무의 정체성을 규정하기를 게을리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는 광고 기반 미디어 회사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2011년 구글 수익 380억 달러 중 96%가 광고로 벌어들인 수익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런 기업들의 일반적인 목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용자가 앱에 더 오래 머무르며 로그인된 연결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고, 더 많은 인터페이스를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시선을 잡아두어야, 광고를 팔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며, 주주들을 더욱 기쁘게 만들고 더 오랫동안 서비스를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의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해주는 일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중독시킬지를 고민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문제가 더 크고 복잡한 문제라고 느꼈다. 비지니스와 사용자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가 사용자를 대변한다고는 하지만, 기업의 수익성을 거슬러 사용성을 주장하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문제와 원인 다음으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저자는 스크린 기반 사고를 벗어나 '의미 있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 3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번째 원칙. 화면부터 설계하는 대신 평소에 늘 하는 행동을 먼저 생각하자.
적어도 디자이너라면, 개발자라면, 가능한 최대한 우아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리서치를 하게 되면 우리가 풀어내야 할 새롭고도 특수한 문제들이 드러난다. 창의적 사고를 통해 사용자의 동기를 파악하는 일은 굉장히 멋진 시작이다. 그러나 그 다음, 우리는 너무나 자주 그리고 당연하게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통찰+통찰+통찰 = 스크린. 이 과정은 계속 반복된다. (p. 122)
두번째 원칙. 컴퓨터의 시중을 드는 대신 제대로 활용하여 대접받자.
센서는 풍부한 정보를 기기에 전송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이 굳이 ‘전송’ 버튼을 누르지 않더라도 기계가 지속적으로 상황을 읽어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신호를 수집하여 머신 인풋으로 이어지게 한다. 컴퓨터가 결과값을 스스로 찾아내고 걸러낼 수 있도록 하자. 사용자의 고충을 해결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강력한 컴퓨팅 시스템이 존재한다면 사용자는 더 이상 드롭다운 메뉴와 싸울 필요가 없어진다. (p.151)
세번째 원칙. 개인화하기
이러한 시스템을 강력하게 해줄 방법 중 하나는 산더미 같은 정보 속에서 추천 값을 찾아주는 능력이다. 즉, 과거의 기록을 바탕으로 학습하는 것이다. 사용자를 잘 안다는 것은 적절한 데이터 세트를 통해 올바른 질문이 가능하고, 관찰된 내용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는 프레임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가 먼저 언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말하기도 전에 그것들을 제공할 수 있다. (p.182)
처음 이 얘기가 나온 것(The best interface is no interface)이 2012년이다. 얘기가 나온지 6년이 지났음에도 스크린 기반 사고는 여전하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건드려야 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원칙은 디자이너가 알면 좋을 것,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저자의 앱 기반 사고의 문제점, 그리고 그 원인을 짚은 것이 통찰력 있게 느껴졌다. 사용자가 화면 안에 머무는 시간으로 광고 수익을 버는 비지니스 모델에 대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