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순례기: 인도 히말라야 티베트 불교의 라다크 1

경적과 배기가스가 뒤엉킨 혼돈, 빠하르간지.

by 재현


2025년 8월, 고학년을 맞은 저는 해발 5,000m에 이르는 인도 하늘 위 히말라야. 티베트 불교의 밀교가 담긴 오온 깃발 고원을 홀로 여행하며 순례했습니다.


누가 사문 싯다르타를 윤회에서 죄에서 탐욕에서 어리석음에서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었소
아버지의 종교적 헌신, 스승의 경고, 자신의 지식, 자신의 탐구가 그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소
어떤 아버지가, 스승이 그를 지켜줄 수 있겠소

자신의 삶을 사는 것. 속세의 삶에 물드는 것. 죄책감으로 자신에게 짐을 지우는 것. 죄책감으로 인생의 쓴 맛을 보는 것.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을 누가 대신해 주겠소?

Hermann Hesse, 『Siddhartha (सिद्धार्थ)』


인도는 항상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했고 사소한 일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통해 무엇을 배울지는 스스로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पहाड़गंज (2025.8.19)


자정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다. 독립의 자손들이 모두 인간인 것은 아니었다. 폭력, 부패, 가난, 장군들, 혼돈, 탐욕, 그리고 후춧가루.. 나는 망명을 통해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자정의 아이들이 나 심지어 나조차도 꿈꾸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했다는 것을 - 한밤의 아이들 (Salman Rushdie)


제가 인도로 간 목적은 티베트 불교 고승들이 수행하고 있는 히말라야 고원의 한적한 오지 마을, 스피티 밸리(स्पीति घाटी)에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기차역에 가까운 빠하르간지에 첫 숙소를 잡았습니다.


학생이라 예산이 늘 빠듯했던 저는 저가항공사로 베트남을 경유했고 아주 긴 비행 끝에야 자정이 넘은 늦은 밤, 인도의 수도인 뉴델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공항을 떠나 우버에서 내리자마자 제가 인도에서 보게 된 풍경은 파리가 들러붙은 채 길바닥에 누워 잠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지저분하고 분뇨 냄새가 진동하는 밤거리를 지나 제 숙소는 골목 깊숙한 곳에 있었습니다.



호텔이라는 간판이 무색하게 그곳은 초라한 여인숙에 더 가까웠고 예약 사이트의 깔끔한 사진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리셉션 직원입니다.


마약에 취한 듯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계속해서 벽에 부딪히더니 제 방 안으로 비틀거리며 들어와선 소파에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간신히 일어나 에어컨과 조명을 확인하더니 제 침대에 드러눕기까지 했습니다.



간신히 직원을 내보냈지만 방 안에는 바퀴벌레가 벽을 타고 기어 다니고 담배꽁초와 침대 시트엔 머리카락과 정체 모를 얼룩도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샤워기를 틀어봤지만 물은 가늘게 흘러내릴 뿐이었습니다. 지저분한 거리 한가운데 자리한 탓에 창문을 열면 악취가 밀려 들어왔고 거리의 소음은 밤새 이어졌습니다. 편안한 휴식 같은 건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늦은 밤 인도에 홀로 도착했을 때의 첫인상은 상상도 못한 현실의 당혹감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비상식적 풍경에 앞으로의 여정에도 불신이 스며들었습니다.



नई दिल्ली (2025.8.20)


델리는 처음에는 부와 공포로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그곳은 미로였고 궁전들의 도시였으며 열린 하수구였고 섬세한 격자를 통해 걸러진 빛이었고 둥근 천장들의 풍경이었으며 무정부 상태였고 사람들의 압박이었고 매연의 질식이었고 향신료의 향기였다. - 진들의 도시 (William Dalrymple)


긴 비행 끝의 피로로 잠은 들 수 있었지만 침대는 더러웠고 씻을 수 없어 몹시 불쾌했습니다. 싸구려 중국산 배낭은 첫날부터 터져버렸고 땀에 젖고 찝찝한 몸으로 응급처치한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아침이 밝으니 골목에는 등교하는 아이들도 보였고 어젯밤의 퇴폐적인 공기는 옅어져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형태의 이국적 풍경에 기분은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을 먹기 위해 여행 전 미리 알아봐 둔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그때 한 인도인 아저씨가 다가와 여행자냐며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제게 몸이 좋다며 본인은 헬스 트레이너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어디로 갈 예정이냐는 물음에 제가 스피티 밸리로 간다고 하자 뉴스도 안 보냐며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냐고 황당하게 웃으셨습니다. 지금 스피티 밸리가 있는 히마찰 프라데시는 홍수로 사망 사고를 포함해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길도 통제되고 있다 합니다.



아저씨는 릭샤를 대신 잡아주며 말했습니다. 정부 운영 여행자 센터로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20루피 이상은 절대 주지 말란 조언도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인터넷을 확인해보니 스피티 밸리로 가는 길 중 하나인 마날리 경유 루트도 공식 폐쇄된 상태였습니다.


본래 인도 여행이 아닌 스피티 밸리에서만 모든 일정을 보낼 예정이었기에 세워둔 계획과 여기에 온 목적마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혼란스러움으로 예정에도 없던 여행자 센터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자 센터에서 현재 상황과 여러 최신 뉴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심지어 몇 시간 전에는 히마찰 지역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까지 있었습니다.


직원들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짜이와 간단한 아침 식사를 내왔습니다. 비용이 드는지 의심스러워 물었더니 의외로 모두 무료라고 합니다. 정부 운영 시설이니 안심하란 답변이었습니다. 직원들은 스피티 대신 더 북부의 히말라야 지역인 라다크로 갈 것을 권했습니다.


대신 현재 히마찰 지역 육로가 막혀 비행기를 이용해야 하고 높은 고산 지대라 가이드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 했습니다. 숙박과 항공을 포함한 전체 비용은 1,100달러로, 제가 그만한 돈이 없다고 하자 그럼 라다크에는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왠지 붙잡히는 듯한 기분과 수상한 느낌에 그곳을 빠져 나왔습니다.



식당으로 가서 편안히 앉아 쉬면서 생각과 계획을 정리해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정부 소속이라며 목걸이 명찰을 내보이는 사람, 집요하게 엉겨 붙는 아저씨, 태워주겠다며 달려드는 릭샤꾼들까지 불과 800m 남짓한 짧은 거리에도 수많은 이들이 몇 초 간격으로 피곤할 정도로 몰려들었습니다.



마침내 식당에 도착해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던 중, 갑자기 정전이 발생했습니다. 헤드랜턴 불빛을 켜서 밥을 먹었고 선풍기마저 꺼져 찌는 듯이 더웠습니다.


대체 어디로 가야 나는 정상적인 휴식이라는 걸 취할 수 있을까. 호텔에서부터 쌓인 피로와 찝찝함에 더해 이 불확실함 자체가 매우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이미 저는 스피티 밸리로 가는 모든 교통편과 숙박을 예약해 둔 상태였고 기차는 오후 5시에 출발이었기에 생각을 정리할 만한 곳을 찾으며 델리를 활보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다음으로 찾고자 한 곳은 스파입니다. 찝찝함과 땀으로 인해 샤워가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델리에선 멀쩡한 스파 하나 찾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리뷰가 많은 곳을 찾아보고 릭샤꾼에게 데려다 달라했지만 자기가 아는 더 좋은 곳이라며 엉뚱한 데로 데려가거나 성매매를 알선하려고도 했습니다.



포기하고 관광이나 할 겸 빠하르간지의 골목을 걸었습니다. 매연으로 덮인 심각한 대기 오염과 귀를 찢는 소음, 도로를 가득 메운 쓰레기와 분뇨. 흥정을 전제로 한 지독한 바가지와 끊임없는 호객. 정신을 놓치면 바로 사고로 이어질 듯한 교통 상황과 미로처럼 얽힌 거리.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도 모르겠는, 완전한 혼돈이었습니다. 미로 같던 골목엔 상상조차 해본 적 없을 만큼의 고된 환경 속 살아가는 빈민들로 가득했습니다. 그 많던 사기와 호객마저 실상 이해가 될 만큼의 열악한 여건과 사회상을 마주하는 충격도 혼란을 더했습니다.



도시 전반의 분위기로 미루어 헬스 트레이너와 여행자 센터 역시 사기임을 직감했습니다. 히마찰 지역의 사고 소식들은 사실이었지만, 스피티는 이곳에 온 목적이자 유일한 계획이었기에 쉽게 떨치지도 못했습니다.


어디로 향하는 발걸음도 내딛기 어려웠습니다. 불신과 혼란으로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그나마 괜찮은 바를 하나 찾아 머물며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자문을 구했습니다. 여행자 센터처럼 사람들은 스피티 대신 라다크로 갈 것을 권했습니다.


라다크는 항공으로도 갈 수 있고 스피티보다 티베트 불교의 상징성은 더 크다 합니다. 그러나 라다크는 아무것도 모르는, 들어본 적조차 없는 곳이고 여태 놓인 상황 탓에 불신과 혼란이 도저히 가시질 않았습니다.


그때 익숙한 이름의 사람이 개인 톡을 보내왔습니다.


오늘 라다크에서 델리로 막 도착했는데 채팅방에서 제 이름을 보고 아는 사람이다 싶었고 카톡 친구도 이미 되어있었다 합니다. 알고 보니 그는 어린 시절에 같은 지역에 살며 학원도 함께 다녔던 동창이었습니다.



인도 델리의 골목에서, 무려 십여 년 만에 어린 시절 친구와 다시 만났습니다. 말도 안되는 우연이었습니다.


친구는 빠하르간지 뒷골목 깊숙한 곳에 나빈이란 인도인의 가게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잠시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곳은 아는 사람만 아는 한국인들 사랑방이자 비밀 아지트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나빈은 여러 가지 믿을 만한 현지 정보들과 조언을 들려주었습니다. 한국어에도 꽤 능숙했는데, 제가 여행자 센터에서 겪었던 일은 정부를 사칭하는 스캠이자 겁을 줘서 바가지 티켓을 강매하는 수법이라고 합니다.


스피티 밸리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사고는 히마찰 다른 지역이고 스피티로 가는 길은 괜찮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기차는 놓쳤고 불안도 남아 라다크행 항공권을 물어봤습니다. 인터넷 최저가보다 5만원은 싸게 예매해주며 원가와 수수료도 투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정상적인 휴식조차 혼자서는 장담할 수 없던 상황에 나빈은 호텔도 추천해 줬습니다. 고작 2만원 대로 깔끔하고 따뜻한 물도 나오는 제대로 된 숙소였습니다.



믿을 사람 하나없고 권모술수가 난무하던 델리의 혼돈에서 만난 나빈은 한 줄기 구원처럼 느껴졌습니다.


수없이 난무하던 속임수와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정직으로 업을 짓는 이가 있다는 것이 더 큰 감동을 줍니다. 나빈에게 500루피를 팁으로 건넸습니다. 이번 일에 대한 감사 뿐 아니라 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습니다.



동창은 1년 계약직 인턴을 마친 뒤, 동남아에서부터 시작해 아시아 세계 일주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녁내내 오랜만에 만난 동창 친구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도 한복판에서 이렇게 절묘한 타이밍에 동창을 만난 것이 계속해서 너무 반갑고 신기했습니다. 기막힌 우연으로 만난 동창과의 즐거움 덕분이었는지, 여전히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델리였지만 이전과 달리 그것마저도 몹시 신나게 즐겁게 느껴졌습니다.



마침 제가 가려던 라다크에서 오늘 막 델리로 왔다며 인도에서의 여러 경험들과 조언을 전해줬습니다. 나빈의 여러 미담과 인품이 드러나는 순간들을 들려주기도 합니다. 동창은 내일 바라나시로 떠난다고 합니다.



저녁 식사도 나빈이 추천한 레스토랑에서 했습니다. 무려 에어컨이 있었고 뉴델리의 흔한 식당들과 달리 위생적이고 깨끗했습니다. 멀쩡한 휴식과 식사조차 어떤 곳에선 당연한 게 아닐 수 있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동창과 나빈을 만난 뒤 혼자선 벅찰 만큼 혼란스럽고 정리되지 않던 상황에서 심리적으로나 앞으로의 여행에 있어서나 큰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나빈은 궁금한 점이나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카카오톡으로 도움을 주겠다고 합니다. 앞으로의 여정에 믿을 수 있는 든든한 수호 천사가 생긴 기분이 들었습니다.


빠하르간지 뒷골목 깊숙한 곳에 있던 나빈의 가게


호텔에서 편안히 하루를 보낸 뒤 나빈이 마련해 준 픽업 을 이용해 다시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비록 원래의 목적지였던 스피티에 가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남았지만 어제의 우연이 안겨준 놀라운 인연과 즐거움을 떠올리며 전혀 알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 또 다른 우연에 몸을 맡겨보기로 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생애 처음 맞이한 해발 3,500m 히말라야 고원의 청명한 공기와 장엄하게 펼쳐지는 풍경에 태어나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시작도 전에 어긋난 계획 그리고 스피티 밸리 대신 북부 국경에 인접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향하게 된 라다크. 고산의 희박한 공기에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레에서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던 여정은 이어졌습니다.






아래 대목은 김사업 저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 수업』 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물이 컵 모양을 하고 있을 때라도 결코 컵 모양에 구속되어있지 않다. 컵 모양에 구속되어 있다면 바가지에 들어가도 순식간에 바가지 모양으로 변하지 못한다.


컵 모양을 하고 있는 그때에도 컵 모양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우리의 본래 모습도 이와 같아 어떤 처지나 상황에 있더라도 그것에 구속되어있지 않고 자유롭다. 그래서 때가 되면 잘 살 수 있다. 성공과 실패, 칭찬과 비난 어느 것에도 구속돼있지 않고 자유롭다. 나는 벼락에도 멍들지 않는 허공과 같다.”


동창과 나빈을 만나며 느꼈습니다. 물은 컵이 깨져도 바가지로 흘러가듯, 계획이 틀어져도 새로운 인연은 흘러들어온다는 것. 라다크의 청명한 하늘 아래 더 이상 상황에 매여 흔들리기보단, 어떤 인연이든 온전히 받아들이며 걸어가야 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 보았습니다. 그것이 이번 여행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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