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순례기: 한겨울 782km 천주교의 산티아고 5

산티아고를 향한 마지막 여정, 안개의 길 갈리시아

by 재현



The discipline of gratitude is the explicit effort to acknowledge that all I am and have is given to me as a gift of love, a gift to be celebrated with joy.
Resentment and gratitude cannot coexist, since resentment blocks the perception and experience of life as a gift. My resentment tells me that I don’t receive what I deserve. It always manifests itself in envy.

감사의 훈련이란 내가 지금 이 모습으로 존재하며 가진 모든 것이 사랑의 선물로 주어졌음을 의식적으로 인정하려는 노력이다. 기쁨으로 축하받아야 할 선물로. 원망과 감사는 공존할 수 없다. 원망은 삶을 선물로 인식하고 경험하는 것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원망은 내게 속삭인다. 나는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그것은 언제나 시기심으로 나타난다.

- Henri Nouwen,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A Story of Homecoming (탕자의 귀향)』


800km에 이르는 고행, 160여개 마을을 지나 도착한 산티아고 대성당(Catedral de Santiago)은 눈물이 흐를 정도의 감동과 벅차오름으로 자주 묘사되곤 합니다.


저의 마지막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무리한 발목은 심각하게 부어올랐고, 많은 구간을 통째로 건너뛴 여정은 급격하게 단절되었습니다. 비에 젖은 채 홀로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느낀 감정은 아쉬움과 원망이었습니다.


아침이 밝자, 겨울 장마가 쏟아지던 갈리시아(Galicia)에 오랜만에 눈부시게 화창한 하늘이 찾아왔습니다.


순례를 완수한 이름은 사제에게 호명되고, 향로 미사(Botafumeiro)의 축복 속에 후회가 걷히며 비로소 지난 순간들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지금의 대성당에 이르기까지 수많았던 도움과 오래도록 간직할 추억들.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아쉬움을 만날겁니다. 조금 더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할 걸, 누군가에게 서운했던 행동들 혹은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더 사랑한다고 말해줄 걸. 하지만 후회와 원망으로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기에 그것에 가려지게 될 순간들은 너무나도 많을 것이라, 어떤 것이든 저는 차분하게 걷어내 보려 합니다.


후회와 원망이 밀려올 때면 감사와 사랑을 떠올리자. 겨울의 천주교 순례가 내게 남긴 마지막 의미였습니다.





León (2023.1.8)


우리는 조금씩, 한 걸음씩, 성인들이 수년에 걸쳐 얻은 자기 숙달을 얻어야 한다. 모든 것에 대해 인내를 가지되,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인내하라. - 신심생활 입문(Saint Francis de Sales)


먼 길을 마주할 때 중요한 건 순간의 의욕이나 자존심, 버틴다는 목표가 아니라, 신중한 준비와 차분한 인내라는 걸 20대 초반의 저는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800km라는 오랜 길을 걸어야 함에도 등산화 대신 일상에서 신던 무겁고 굽 높은 청키화, 방수도 안 되는 두꺼운 패딩, 변수와 여유를 고려 안 한 빡빡한 일정 등.


일정이 촉박했음에도 반드시 모든 구간을 걷겠다는 고집에 몸을 돌보지 않고 무리한 끝에 500km쯤에 이르러 왼쪽 발목이 심각하게 망가져 버렸습니다. 레온에서 하루 더 머물렀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저에겐 두 제안이 있었습니다. 오늘 막 레온에 도착한 게리는 사우나가 있는 호텔에서 2박을 하며 쉴 예정이었습니다. 호텔에서 같이 쉬게 해 줄 테니 며칠 더 머물며 휴식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순례를 중단했던 지 누나는 사리아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해 마지막 100km 구간을 걸으며 마무리 할 것이라 했습니다. 어릴 때 아픈 몸으로 무리하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며 함께 넘어갈 것을 권유했습니다.



해외여행에 무지해 여행자 보험을 들어두지 않아 병원 가는 것도 꺼려졌고, 크리스마스나 변수를 전혀 생각하지 못해 귀국 일정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다음 목적지인 템플 기사단의 도시 폰페라다를 지나쳐 최후반부인 사리아로 넘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폰페라다와 철의 십자가, 아스토르가 주교궁 등 순례길 후반부에 마무리했어야 할 기착지들을 모두 건너뛸 수밖에 없었습니다. 순례길의 순간순간이 내 인생에 남긴 의미를 생각해 보면, 아쉬움이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레온의 백화점에서 트레킹화를 구매했습니다. 배낭엔 조금도 여유가 없었기에 군 입대 전부터 함께한 저의 청키화는 레온에서 작별을 고했습니다.



León - Sarria (2023.1.9)


아직 울릴 수 있는 종을 울려라. 당신의 완벽한 제물을 잊어라. 모든 것에는 금이 가 있다. 그것이 빛이 들어오는 방법이다. - 앤썸 (Leonard Cohen)


아침 일찍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는데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핸드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정의 후반부를 통째로 버스를 타고 넘어가게 된 게 계속 아쉽고 머리가 복잡해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알베르게로 돌아가려 했지만 넓은 도심에서 길을 찾는 게 어려워 한참을 아픈 발목으로 거리를 헤맸습니다. 겨우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감사하게도 청소부 분께서 제 핸드폰을 발견해 따로 보관해주고 계셨습니다.


저녁 늦은 시간에 도착한 환승 정류장에서도 마스크가 없어 타지 못할 뻔하다가, 한 아주머니가 먼저 나서 마스크를 제게 건네주신 덕분에 간신히 탈 수 있었습니다. 만석의 고속버스에서 사리아 정류장에 제 때 내리지 못하고 지나쳐 버렸을 때에도, 기사님께선 절 위해 버스를 돌려 사리아까지 되돌아가 내려주셨습니다.


어리고 부족했던 제가 무사히 순례를 다녀올 수 있었던 것도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임을 새삼 느낍니다.



Sarria (Bus: 483.5km ~ 670km)



사리아의 알베르게는 지 누나 외에도 일행으로 보이는 두 명의 스페인 아저씨들이 더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 둘이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고 지 누나와 넷이 스페인의 바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알베르게는 매우 좁은 방에 이층 침대 셋이 나란히 놓여있었고 1층에 있는 침대는 먼저 도착한 셋이 차지고 있어서 저는 지 누나의 침대 이층을 사용했습니다.


하루 종일 힘들었던 탓에 그날 새벽,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기절하듯 곤히 잠에 들었습니다.



Sarria (2023.1.10)


열여덟 살 때 T. E. 로렌스는 자전거로 프랑스 전역을 여행했다. 어린 소녀가 그런 모험을 떠날 수는 없을 것이고, 로렌스처럼 반사막 지대이자 위험한 나라를 걸어서 떠나는 일은 더욱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이런 경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큰 영향을 준다. 바로 이런 경험 속에서, 사람은 자유와 발견의 흥분 속에서 세상 전체를 마치 자신의 영토처럼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 - 제2의 성 (Simone de Beauvoir)


아침에 일어나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자 누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불이 꺼진 새벽, 어제 함께 식사를 했던 옆 자리 순례자가 바로 옆 침대에서 성희롱을 하며 자기 침낭으로 들어오라고 하거나 밤새 뚫어져라 쳐다보는 등의 행동을 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누나는 새벽 내내 잠도 못 자며 밖에 서 있었고 제게 카톡과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바닥에 충전 중인 폰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왜 날 안 깨웠냐 묻자 어제 고생해서 온 걸 알기에 미안해서 깨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방 밖에선 아직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그 두 순례자들은 짐을 꾸려 막 떠나려는 참이었습니다. 그는 영어를 하지 못했기에 밖으로 나가 캐리어를 걷어차고 화를 표출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 웃으며 저를 맞이하던 그는 크게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이라 다툼도 각오했지만, 생각 외로 그는 바로 머리를 조아리고 과장된 몸짓으로 연거푸 사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친절과 감사로 가득한 순례길이었기에 저는 알지 못한 그들의 얼굴에 혼란스러웠습니다. 순례길의 성희롱이나 불쾌한 스킨십에 대한 이야기는 간혹 들은 적 있었지만 직접 가까이서 마주한건 큰 당혹감이었습니다.



저는 누나에게 사리아에서 하루 더 쉴 것을 권유했습니다. 감정을 더 추스를 수 있었으면 했고 다음 마을에서 그들을 다시 마주칠 우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걷는 대신 하루 더 함께 머물기로 했습니다.


누나에게 살다 보면 그런 몹쓸 사람들도 만나지만, 나처럼 좋은 사람도 만나지 않냐며 나름 위로를 건넸습니다. 누나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습니다.



아무거나 먹는 저와 달리 누나는 맛집에 관심이 많았고 사리아의 유서 깊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알베르게로 돌아오는 밤길에 청년 무리들이 있었는데 누나가 너 없이 나 혼자 걷고 있었으면 쟤네들 분명 캣콜링이나 시비를 걸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세비야나 빌바오에서 혼자 다닐 때 이를 자주 겪었다고 합니다.


누가 미친 척 달려들어도 막말로 자신에겐 저항할 힘이 없다는 말. 내가 일방적으로 그런 대상으로 정의되는게 참을 수 없게 화가 났다는 말. 나는 체감해보지 못한 위협과 불편 속에 산다는 의미를 이해해 보았습니다.


내가 남자가 아니었다면, 지금껏 느끼게 되었을 감정과 기억은 많이 달랐을까. 그래서 세상이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에게는 난해했던 페미니즘에도 관심을 가져봅니다. 언젠가 내 목숨보다도 소중할 사람이 생긴다면, 암묵적인 어떤 기대나 폭력이 나의 무지함으로 그 아이의 삶에 심어지지 않길 바라니까.


제가 사리아로 오지 않았다면 누나는 그 아저씨들과만 남아 더 두렵고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모릅니다. 길을 건너뛴 아쉬움을 그리 달래 보려 했던 것 같습니다.



Sarria - Portomarín (2023.1.12)


나는 아버지께로 가고 있습니다. 큰 어려움 끝에 여기까지 왔지만 지금 나는 여기에 이르기까지 겪은 모든 고난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닌 상처와 흉터는 내가 그분의 전투를 싸웠다는 증거이며, 그분은 이제 나의 보상자가 되실 것입니다. - 천로역정 (John Bunyan)


사리아 이후에는 오랜 시간 걸어온 여정과의 급격한 단절감, 그리고 인생에 단 한 번 뿐일 경험을 온전히 완성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항상 맴돌았습니다.


늘 감사와 신뢰로 걸어왔던 길이지만 어제 일을 계기로 사람에 대한 불신과 길에 대한 혼란이 스며들었고 이 길이 더 이상 순례처럼 느껴지지 않기도 했습니다.



대서양과 맞닿은 갈리시아 지방의 하루 종일 습하고 흐린 날씨는 기분을 더욱 꿀꿀하게 만들고,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발목의 통증은 계속해서 후회를 남깁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고대하던 순간마저 이런 찝찝한 감정으로 마무리되지는 않을까. 오래고 고된 순례의 끝이라는 상징을 난 과연 후련함과 감동으로 마주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머리에 감돌기도 했습니다.



Morgade (670km ~ 683km)



사리아에서 약 13km를 걸어 모르가데를 지나면 산티아고까지의 거리가 100km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석과 이를 기념하는 작은 공간이 나타납니다.


이를 기점으로 남은 거리는 마침내 두 자릿수로 표시되기 시작합니다. 제게 그 순간은 오랫동안 걸어온 끝이 아니라 많은 구간을 넘겨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한 탓에 미완과 아쉬움의 감정을 남겼습니다.



Ferreiros (683km ~ 684.4km)



한 길목에서 한국인 순례자 무리를 마주쳤습니다. 고등학교 교사 한 분과 막 학교를 졸업한 제자들 대여섯 명으로 사리아에서부터 순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저에게는 여정의 막바지였던 사리아가 누군가에게는 순례의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사리아는 순례 인증서를 받을 수 있는 최소 조건인 도보 100km를 충족할 수 있고 며칠 내에도 완주가 가능한 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무리가 너무 웃겼던 게, 선생님은 매우 활기차고 열정에 가득 차 있었는데 제자들은 하나같이 죽상인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탐험 대장처럼 부르는 말투도 시트콤처럼 느껴져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들 역시 이 길 위에서 저들 만의 순례의 추억을 만들어갔을 것입니다.



Portomarín (684.4km ~ 692.2km)



포르토마린은 미뇨 강을 따라 형성된 계곡 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마을로 진입하기 위해선 강 위의 긴 다리를 건너고 로마네스크 양식의 돌계단도 넘어야 합니다.


순례길 전체에서 가장 이질적이고 특이한 마을이었는데 이는 중세 시대에 수몰된 후 고지대로 옮겨 재건된 마을이라는 독특한 역사적 배경 때문인 듯합니다.



그날 밤, 포르토마린의 알베르게에서 지 누나에게 보타페메이로(Botafumeiro)라는 향로 미사에 대해 처음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는 축일이나 일요일에 가끔 이 특별한 미사가 열린다고 합니다.


60kg이 넘는 거대한 향로를 성당 천장에 매달아서 흔들며 향을 피우는 이 의식은 긴 여정을 걸어온 순례자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향으로 정화하는 축복입니다.


저와는 무관하고 멀게 느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일요일은 오늘부터 3일 뒤였는데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그 안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향로 미사라는 것 자체를 이 날 처음 들어 더 현실감이 없었습니다.



Portomarín - Palas de Rei

(2023.1.13)


밤은 어둡고 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날 인도하소서. 내 발을 지켜주소서. 나는 먼 광경을 보길 구하지 않나이다. 한 걸음이면 충분합니다 -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Cardinal Newman)



아직 해가 뜨지 않은 포르토마린의 바에서 커피와 함께 아침을 먹었습니다. 안개가 강을 감싸던 몽환적인 분위기의 길을 건너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랐습니다.


오르막 끝에서 사진을 남겼습니다. 그렇게 오래 걸었는데 순례길 위에서 혼자 찍은 사진은 이게 처음입니다.



Gonzar (692.2km ~ 700.4km)



곤자르에서 누나를 만나기로 해서 기다렸다가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오래 전 렐리고스에서 만났던 또래의 캐나다인 제임스를 생각지도 못하게 재회했습니다.


제임스는 자전거로 순례 중이라 하루에 훨씬 긴 거리를 이동했고 버스로 구간을 건너뛴 저와 여기서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는 산티아고까진 포르토마린에서 만난 순례자들과 천천히 함께할 것이라 합니다.


버스로 멀리 건너뛰어 이전 순례자들은 아무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줄 알았기에, 재회가 더 반가웠습니다.



Lestedo (700.4km~714.4km)



갈리시아는 서늘하고 습한 대서양 기후가 이어지는 지역입니다. 비가 그친 뒤 숲 속엔 젖은 흙길과 나뭇잎 끝에 맺힌 물방울이 정적 속에 스산한 기운을 남깁니다.


해가 기울 무렵 유칼립투스 숲에 노을이 붉게 번지며 어딘가 쓸쓸하고 멍해진 마음도 짙게 물들입니다



Palas de Rei (714.4km ~ 717.3km)



발목이 좋지 않아 늘 해가 질 때쯤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고는 했습니다. 팔라스 데 레이는 라틴어로 왕의 궁전이라는 뜻으로 규모가 꽤 큰 마을이었습니다.



중세 시대 귀족 저택, 돌로 만든 십자가, 탑 모양의 주택 등 역사적 건축물이 곳곳에 남아 있어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많이 느껴지는 마을입니다.



이 날 알베르게에서 지 누나와 트러블이 있었습니다. 누나는 신체적으로 예민해진 시기였는데 어린 저도 서툴렀습니다. 누구나 예민한 순간은 있기 마련이라 상대의 말이나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단 여유를 갖고 무던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Palas de Rei - Arzúa (2023.1.14)


점심 식사가 끝났고 다음 날 그들은 여관에 도착했다. 산초 판사에게 큰 공포와 두려움을 안겨주었던 그 여관이었다.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여관 주인의 아내, 여관 주인, 그의 딸, 그리고 마리토르네스가 돈키호테와 산초가 오는 것을 보고 큰 기쁨을 보이며 그들을 맞이하러 나왔다. - 돈키호테 (Cervantes Saavedra)


겨울 순례길 특유의 한적하고 깊은 분위기는 남지 않았습니다. 사리아를 지나 막바지에 접어들며 순례자들의 수는 눈에 띄게 많아졌고 전반적인 느낌도 많이 달랐습니다. 이전까지가 긴 여정의 성찰이었다면 어느새 가벼운 트레킹에 가까운 분위기로 변해있었습니다.



함께 길을 공유하던 순례자들과의 만남과 재회도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그로 인한 단절감도 커져갔습니다.


좋은 인연이자 동행자였던 지 누나와의 갈등도 겹치며 산티아고로 향하는 마지막은 어딘가 계속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걷는 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Melide (717.3km ~ 732.1km)



멜리데는 갈리시아 특유의 문어요리인 뽈뽀로 유명한 마을입니다. 중세부터 풀페이라(Pulpeira)라고 불리는 문어 요리 장인들이 장터와 축제에서 문어를 삶아 팔았고 오늘날까지도 그 문화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문어 식당 한 곳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맞은 편에는 제임스가 있었고 함께 식사를 하자고 했습니다.


제임스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던 중 순례자 무리들이 하나둘씩 들어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제임스가 함께하고 있다고 말한 그 무리인 듯합니다.



이들은 모두 스페인 사람들로 같은 마을에 살며 트레킹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리아에서부터 순례를 시작했다는데 어린 나이에 먼 나라에서 혼자 온 제게 순례를 왜 온 것인지 등 여러 질문을 했습니다.


축구나 술 같은 가벼운 이야기를 외딴 마을에서 온 스페인 현지 사람들과 나누며,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맥주와 함께 식사하는 시간도 나름 즐거웠습니다.



Boente (732.1km ~ 737.9km)



Arzúa (737.9km ~ 746.0km)



아르수아의 알베르게에는 순례길에서 처음으로 열댓 명이 넘는 많은 순례자들이 방을 가득 메웠습니다. 그리고 혼자 순례를 온 사람은 저 밖엔 없었습니다.


한국인 노부부도 계셨는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전에 곤란한 상황들에 처했을 때 많은 도움을 주셨다는 한국인 순례자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셨습니다.


혹시 그 이름이 라스 형이냐고 묻자 놀란 표정으로 맞다며 어떻게 아느냐고 되물으셨습니다. 할아버지와 따로 주방으로 나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오랜만에 반가운 이름도 듣고 그간 느끼고 있던 이전 경험들과의 단절감이 해소되는 느낌이 들어 즐거웠습니다.


저녁을 먹으러 레스토랑에 들어갔는데 점심에 멜리데에서 함께 문어 요리를 먹었던 그 스페인 동호회 분들이 테이블에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비욘~!” 하고 손을 흔들며 반갑게 불러 저녁 식사도 함께했습니다.


늦은 시간 알베르게에 도착한 지 누나는 내일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로 넘어가 향로 미사를 보고 바로 귀국할 것이라고 합니다. 아픈 발목 때문에 누나의 등산 스틱을 하나 빌려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누나는 떠나기 전 우산 꽂이에 세워둔 스틱을 보더니 돌려주지 않아도 되니 꼭 잊지 말고 챙겨가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어제 다투지 않았더라면 더 좋게 마무리하며 이별할 수 있었을 텐데. 비슷한 시기, 이전 여정을 공유할 수 있는 순례자는 이제 제 곁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Arzúa - O Pedrouzo (2023.1.15)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도착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보다 더 외로운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산티아고로 걸어가야 했던 것은 그곳에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충분히 쉬웠을 것이다), 걷는 것 자체 때문이었다 - 와일드 (Cheryl Strayed)


제임스도 미사를 보기 위해 새벽 일찍 자전거로 곧장 산티아고까지 간다고 합니다. 향로 미사 의식의 상징성도 의미가 있겠지만 제겐 끝까지 두 발로 걸어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알베르게를 나와 혼자 아침을 먹었습니다. 순례길 초반 부에도 대부분 혼자일 때가 많았는데 어쩐지 그때보다 훨씬 쓸쓸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O Pedrouzo (746.0km ~ 765.5km)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 오 페드로조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종착지인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단 20km도 남지 않았습니다.



오 페드로조의 텅 빈 레스토랑에서 혼자 식사를 하려던 참에 딱 봐도 순례자로 보이는 한 분이 건너편에 혼자 자리에 앉으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순례자인지 물어보고, 함께 식사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토머스로 사리아 이후 처음 만나는, 생장에서 출발했다는 순례자입니다. 산티아고를 향하기 전 마지막 저녁, 토머스에게 지금까지 제가 걸어왔던 이야기와 심경을 털어 놓았습니다.


토머스는 8년 전에 자전거를 타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페이스북을 켜서 그 당시의 사진들을 제게 보여줬습니다.


그는 산티아고 대성당이 순례길의 공식적인 종착지이긴 하지만 그 이후에도 대륙의 끝 바다 마을인 피니스테라(Finisterre)와 묵시아(Muxía)까지 순례의 여정을 이어가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산티아고에 도착해도 어딘가 아쉬움과 공허함이 남는다면, 그 바다에서 자신 만의 여운을 남겨보는 건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토머스는 식당 점원에게 볼펜까지 빌려 식탁보 위에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에필로그 같은 이 여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피니스테라는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대서양 끝자락의 마을, 묵시아는 성모 마리아의 전설이 깃든 해안 마을로 치유와 영적 위안을 얻기 위한 장소라고 합니다.


묵시아는 이전에 들어본 적 있어 방문을 고민해보기도 했는데 토머스의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산티아고 도착 이후 ‘세상의 끝‘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피니스테라로 향해보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O Pedrouzo - Santiago de Compostela (2023.1.16)


내 마음속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우린 스스로를 속인다. 유령을 붙잡으려 하고, 실제를 이상과 혼동하면서. 내 보물을 찾으려다, 나는 단지 내가 찾고 있던 것들의 노예였을 뿐
- 인간의 대지 (Antoine de Saint-Exupéry)


산티아고로 향하는 아침이 밝았습니다. 낙엽이 수 없이 깔린 유칼립투스 숲을 지나 산티아고의 도심으로 향하게 됩니다. 마지막 길은 거세고 차가운 비와 흐린 날씨 속에 유독 힘겨웠고 쓸쓸했던 길입니다.



폭우 치는 유칼립투스 숲은 시리듯이 춥고 음산했습니다. 숲을 걷던 중 토머스를 우연히 다시 만났습니다. 토머스와 마지막 길도 잠시 함께 걸었습니다.



토머스는 산티아고 진입 직전 마지막 언덕은 기쁨의 언덕(Monte do Gozo)이라고 불린다며 그곳에서 처음으로 대성당의 첨탑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중세의 순례자들은 성 야고보가 잠들어 있는 대성당의 탑을 처음으로 육안으로 확인하며 벅찬 감동 기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날씨가 흐려 대성당의 첨탑은 보이지 않았고 그 막막한 풍경도 어쩐지 제 마음과 닮아 있었습니다.



San Paio (765.5km ~ 769.6km)



한 달 전, 그렇게 많이 걸었다고 느꼈는데도 670km 넘게 남았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막막함도 느끼던 때.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이 머나먼 길을 지나 마침내 산티아고에 도달했을 때 나는 과연 감정으로 마주하게 될까. 분명 큰 감동과 후련함일 줄 알았습니다.



도심 초입에 들어서며 이 무척이나 길고 멀었던 여정도 서서히 끝을 향해 간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 순간 감돈 것은 못다 한 미완의 허무감과 지난 여정과 완주의 기쁨을 나눌 사람 하나 없었던 쓸쓸함이었습니다.



Santiago de compostella

(769.6km ~ 782.0km)



산티아고 대성당 앞의 오브라도이로 광장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전해집니다.


오랜 순례를 마친 이들이 감격과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하여 눈물의 광장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대성당 앞 광장에서, 홀로 억지로라도 그런 감정들을 느껴보려 애써봤지만 끝내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본래 목적대로 오랜 여정을 한 걸음도 건너뛰지 않고 끝까지 온전히 순례를 끝냈다면 어떤 감정이었을까.정작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까지의 길에서는 어떤 깨달음도, 의미도 찾아지지 않고 공허했습니다.



산티아고의 외딴 알베르게에 홀로 잠을 청했습니다.


일정을 좀 더 여유롭게 짰어야 했는데, 너무 무리하지 말고 몸부터 잘 돌봐야 했는데. 더 신중하게 알아보고 준비할 걸. 차라리 사리아로 그렇게 많이 건너뛰지는 말 걸 그랬나. 감정적으로도 더 여유가 있었어야 했는데.


순례를 마친 그날 밤 제 마음은 오히려 후회와 잡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그 애써왔던 모든 과정들이 부정당하는 듯한 허탈감이 오기도 했습니다.


다음 날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천 년의 역사가 담긴 순례길의 깊이를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을.



Santiago de Compostela (2023.1.17)


산티아고는 신에게 묻는다. 누더기가 되어 수도원에 돌아왔을 때 수도사의 웃음에서 그를 구해줄 수는 없었냐고. 바람 속 목소리가 답한다. 그럴 수 없었다고, 왜냐하면 그것이 그로 하여금 아름다운 피라미드를 보게 했기 때문이라고.
- 연금술사 (Paulo Coelho)


순례자 여권으로 공식 인증을 마친 다음 날, 순례자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대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사리아에 도착한 이후 단 한 번도 화창한 날씨를 볼 수 없었는데.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믿기지 않을 만큼 눈부시도록 맑은 날씨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겨울철, 비와 안개가 이어지는 장마철 갈리시아에서 맑은 하늘은 매우 드뭅니다. 순례를 마친 다음 날 오랜 구름과 비가 걷히고 맑게 갠 하늘이 저를 맞이했습니다.



화창한 날씨의 대성당은 그 분위기도 어제와는 달랐습니다. 미사를 받기 위해 성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들어가 미사를 위해 자리에 착석했습니다. 미사가 시작되면 전날 완주 인증을 끝낸 순례자들의 국적과 출발지가 하나하나 낭독됩니다.


대성당의 미사에서 사제는 오랜 길을 걸어온 저를 가장 고귀한 여정을 완수한 이로서 축복해 줍니다.


이어지는 성경 낭독과 사제의 설교는 길 위에서의 고난과 믿음, 내면적 성장을 성경 이야기와 연결시켜 전달하고, 고개를 숙인 채 지난 여정들을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전혀 생각치 못하게 일요일도 아닌데 특별한 날에만 열린다는 그 향로 미사(Botafumeiro)의 축복까지 직접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천장의 아치형 궤도를 따라 거대한 향로가 크게 흔들리며 성당 전체에 향을 퍼트리고 성가가 울려퍼집니다. 그 속에 땀과 먼지, 복잡했던 감정들마저 모두 향으로 씻겨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사제의 축복과 지난 여정을 되새기게 하는 설교. 그리고 쌓여 있던 감정과 잡념마저 향으로 씻어내는 듯한 향로 의식. 미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구름이 걷히고 눈부시게 밝은 하늘이 저를 맞이했습니다.


그 모든 순간이 마치 하나의 기적처럼 느껴졌습니다.



그제야 후회와 원망 속에 가려져있던, 이 기나긴 여정에서 정말로 소중했고 간직해야 할 순간들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눈앞의 아쉬움과 후회 때문에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그것이 최종 종착지인 산티아고가 제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습니다.



내가 실수나 잘못된 선택이라 생각되는 것들도 결국엔 현재의 나를 만든 재료가 될 것임을. 모든 순간에 나는 당시 가진 정보에서 최선을 다했을 걸 믿어주길.


어떤 후회로도 마음을 짓누르며 살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저는 이 순례가 제게 남긴 마지막 교훈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



대학 저학년, 한 달 넘게 매일같이 오래고 고된 길을 걸어온 저의 한겨울 순례는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출발과 도착이 있고, 만남과 이별이 있으며, 때로는 외롭고 또 벅찬 순간들이 교차하는 800km의 그 여정은 어쩌면 우리의 인생과도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팜플로나의 광장에 떠오르던 태양과 그곳으로 향하던 나의 첫 발걸음은 삶은 견디는 것이 아닌 추구하는 것. 내게 그 선택의 가능성과 자유를 깨닫게 했습니다.


마치 크리스마스의 기적같던 로그로뇨의 길. 간절한 도움과 따뜻한 친절이었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길. 그렇게 삶을 쌓아나갈 수 있길 다짐해봅니다.


겨울 장마와 거센 비가 덮친 부르고스의 시련. 누군가의 사소한 배려는 다른 이의 위로가 되고 우리 삶의 보이지 않는 그 울타리를, 내가 자각하고 지키게 합니다.


레온까지 누군가와 함께 향하던 그 긴 동행. 걷던 길의 분위기마저 결정짓던 인연이라는 마법은, 나에게 그 의미를 다시금 곱씹고 성찰해보게 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반추한 산티아고에서, 사제의 설교와 향로 미사의 축복 속에 저는 후회로 마음을 짓누르지 않고 나를 괴롭게 하지 않는 법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천 년의 축복을 품은 겨울 순례길이 남긴 사랑(ágape, 아가페)이 앞으로 내가 걸어갈 모든 길에 함께하길.







순례자 미사를 끝으로 저의 순례는 막을 내렸지만, 이후에도 순례의 이야기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은 이어집니다. 대성당의 미사 그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Finnistera (2023.1.17 ~ 2023.1.18)


어떤 이들은 카미노가 여기서 끝난다고 말한다. 세상의 끝에서. 그들은 틀렸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순례자는 자신의 마을로, 직장으로, 학교로, 가족과 친구들에게 돌아가 카미노를 계속 걷는다. 많은 면에서 그들의 카미노는 여기서 시작된다. - American Pilgrims on the Camino (2024)


순례자 미사를 마친 뒤 저의 마지막 동행자였던 토머스의 조언대로, 저는 세상의 끝이라는 이름의 피니스테라를 향했습니다. 피니스테라는 고대 로마인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시절, 더 이상 땅이 없는 지점이라 여긴 유럽 가장 서쪽 끝자락에 있는 마을입니다.



안개가 자욱하고 비가 내리고 있어 세상의 끝이라는 이름처럼 몽환적인 분위기의 바다 마을이었습니다.



피니스테라에도 알베르게는 있었습니다. 예수처럼 길게 수염을 기른 독일인 남성, 벨기에 여성분과 함께 호스트가 정성스레 차려준 저녁을 함께 먹으며 흐린 바닷가 마을에서의 밤을 마무리했습니다.


새롭고 낯선 곳의 알베르게에서 다른 순례자들과 잠을 청하는 것도 함께 가족처럼 앉아 식사를 하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묘한 여운이 남습니다.



아침이 밝자 카보 피니스테라(Cabo Fisterra) 등대로 이어지는 마지막 길을 떠났습니다. 유럽 대륙의 가장 끝 절벽 위에는 0.00km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있으며,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마지막을 의미합니다.


이제 완전히 끝난 줄로만 알았던 여정의 아침에, 다시 한번 다음 목적지를 향해 나서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고 설렜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날은 유럽 서부에 기록적인 폭풍우가 닥친 날이었습니다. 피니스테라 등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절벽 위에서 저는 움직일 수조차 없는 강풍을 만났습니다.


양옆으로는 안전망 하나 없는 바다 절벽이 펼쳐져 있었고 몰아치는 바람에 돌기둥을 끌어안은 채 간신히 버텼습니다. 세상의 끝에서 정말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건 아닐까 하는 위협을 느꼈습니다. 멀리서 마을의 자율 방범 차량이 보였고 온몸으로 도움을 청했습니다.


차량은 제게 천천히 접근해 막대를 내밀었고 간신히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끝내 피니스테라 등대와 0km 표지석까지 가지 못한 채 마을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황당하고 지나고 보니 웃음이 나는 기억입니다.


마을을 돌아다니던 중 놀라운 우연으로 스페인 동호회 무리 중 한 명이었던 크리스를 마주쳤습니다. 크리스와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소회를 나누었습니다.


크리스 말로는 피니스테라가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관광지라 식당 물가가 많이 비싸다 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구석에서 샌드위치를 먹겠다며 떠났습니다.



잠잠해진 피니스테라에서 혼자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며 순례가 끝났다는 여운과 감상을 정리했습니다.



마침내 산티아고에는 라스형도 도착했다고 합니다. 버스를 타고 다시 산티아고로 돌아온 저는 대성당 앞에서 라스 형과 그의 동행자였던 두 남자 순례자들을 만나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마침 비랄도 그날 산티아고에 도착했다는데 늘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시 만난 운명이 참 신기합니다. 라스 형, 비랄, 두 남자 순례자와 즐겁게 식사를 했습니다.




Santiago de Compostella

(2023.1.19)


우리는 탐험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탐험의 끝은 우리가 시작한 곳에 도착하는 것
그리고 그 장소를 처음으로 아는 것
- 4개의 4중주 (T.S. Eliot)


1월 16일 순례길의 시작점인 생장에서 저와 앤 누나, 라스 형은 같은 날 순례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앤 누나는 산티아고에서 저와 라스 형을 만나기 위해 함께 걷던 동행자들과 잠시 떨어져 홀로 부지런히 걸어 제가 산티아고를 떠나기 전에 도착하겠다 전했습니다



아침이 되자 저는 라스 형이 머물고 있던 알베르게로 짐을 옮겼습니다. 어제 함께한 순례자는 군대에서 취사병으로 복무했었고, 조리 아르바이트 경험도 있어 순례길의 '상디'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날 오후 산티아고의 한인 마켓에 함께 들른 뒤 상디는 푸짐한 한식을 차려주었고 아주 오랜만에 따뜻한 집밥 같은 한식을 알베르게에서 먹을 수 있었습니다.


식사를 막 끝내고 정리하던 참, 앤 누나가 마침내 산티아고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배고픈 앤 누나에게 가위바위보로 라면을 끓여줄 사람을 정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져서 앤 누나를 위해 라면을 끓여드렸습니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셋이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 손동작은 저희가 생장에서 출발했던 날을 상징했던 것 같은데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마지막 날이기도 하니 셋이 산티아고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거하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같은 날 같은 곳에서 출발했지만 서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도 뿔뿔이 흩어지기도 하면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까미노 어워드라고 지칭하며 가장 좋았던, 혹은 최악이었던 알베르게, 제일 기억에 남는 인연과 에피소드 등 저마다의 지나온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유진 씨가 걷다 만난 외국인 순례자와 연인이 되었다는 놀라운 소식도 전해주었고, 다현 씨는 지치지도 않는지 피니스테라로 도보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늦은 밤까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지나온 길을 이야기하며 웃고 공감했던 순간들, 그리고 알베르게로 돌아오는 길에 지났던 비에 젖은 산티아고의 밤거리는 아름답고, 또 잊혀지지 않는 장면입니다.



앤 누나는 저와 라스형에게 편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산티아고 알베르게의 어둡고 따뜻한 난로 앞 소파에 앉아 그 편지를 천천히 읽으며 이제 정말 산티아고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주어진 만큼의 삶을 살아내는 우리 인생이 되자는 엽서의 마지막 말처럼, 순례길은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인생의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귀국을 위해 포르토로 향하는 버스는 새벽에 출발이었기에, 전 모두가 잠든 새벽에 알베르게를 떠났습니다.



Seoul (2025.7.21)


길은 계속 이어지고 이어진다. 그것이 시작된 문에서부터 아래로. 이제 길은 저 멀리 가버렸고, 나는 따라가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열망하는 발로 그것을 추구하며, 그것이 더 큰 길과 만날 때까지. - 반지의 제왕 (J.R.R. Tolkien)


그때의 여운은, 같은 길을 걷던 우리 모두에게 오래도록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2023년 6월, 함께 길을 걷던 프랑스인 또래 아일란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중국을 거쳐 절 만나기 위해 한국까지 찾아왔습니다. 한국 곳곳을 함께 돌아다니고, 마치 알베르게를 떠올리게 하는 찜질방에서 함께 잠을 자며 그 추억이 자연스레 되살아나기도 했습니다.


2025년, 문득 그 시절에 썼던 일기를 다시 펼쳐보며 지나온 이야기들을 다시 정리하던 중 잊고 있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그러다 3년 만에 라스 형과 앤 누나에게 용기 내어 다시 연락을 드려봤습니다.


공교롭게도 제 생일이었던 날, 생장에서의 첫날 아침과 산티아고에서의 마지막 밤을 함께했던 생장 동기들과 아주 오랜만에 서울에서 다시 만남을 가졌습니다.


저는 산티아고 순례의 다음 여정으로 인도 히말라야의 해발 4,000m 고원지대인 스피티 밸리로 향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앤 누나가 무려 8년 전 그곳을 다녀온 보기 드문 경험자였습니다.


앤 누나는 순례길에서 크리스티안과 돈독해졌고 이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그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답니다. 크리스티안은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처음 만났던 독일인 순례자로 EU 소속 직업 군인 아저씨입니다.


크리스티안은 작년에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었고 누나가 결혼을 하면 다시 와서 축하를 해주겠다고도 약속했다 합니다. 정년을 앞두고 주말마다 직접 손수 은퇴 후 거주할 집을 짓고 있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이런 삶의 방식이 흔하다고들 합니다. 남은 여생을 보낼 그 집이 한층 낭만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앤 누나는 크리스티안에게 제가 조만간 인도에 갈 예정이라는 말을 전해줬는데 인도를 다녀온 적이 있었던 크리스티안은 제게 이 말을 전해달라 했다고 합니다.


“변은 너무 나이스해. 그래서 거기 가서는 사람들 너무 믿지 마.”


유진 씨는 순례길에서 연인이 되었던 외국인 순례자와 아직도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하며 아마 결혼을 하시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외에도 서로가 알고 있던 다현 씨, 아일란, 게리 등 다른 순례자들의 소식은 물론 서로의 근황과 지난 이야기들도 오랜만에 나눴습니다.


순례는 끝났지만, 그 길 위에 맺었던 인연들과 시간이 남긴 흔적은 여전히 우리 삶 속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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