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순례기: 한겨울 782km 천주교의 산티아고 4

끝없는 매세타 평원과 천주교의 유산, 카스티야 이 레온

by 재현



Each man’s life represents a road toward himself. No man has ever been entirely and completely himself. Yet each one strives to become that. … We can understand one another; but each of us is able to interpret himself to himself alone.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리를 해석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자기 자신 뿐이다.

- Hermann Hesse, 『Demian (데미안)』


세계 각지에서 저마다 이유로 순례를 떠나온 이들은 목적지를 향하다가도, 운명처럼 만나 잠시 동행하며 서로가 가진 삶의 이야기와 생각을 전하기도 합니다.


스테인드글라스 대성당이 맞이하는 중세 왕국의 수도, 레온(León)으로의 매일은 각기 다른 세상을 품은 순례자들과 유럽의 오랜 역사가 담긴 길을 단둘이 걸으며 함께 나눴던 분위기와 대화가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길의 풍경보다도 강렬했던 동행의 존재감은, 문득 인연이란 무엇이고 내게 어떤 의미일지 돌아보게 합니다.





Burgos - Hornillos del Camino

(2022.12.31)


내일은 아직 실수가 하나도 없는 새로운 날이라고 생각하니 좋지 않나요? ..한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는 한계가 있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그 끝에 도달하면 저는 실수들을 다 끝낸 거죠. 그건 아주 위안이 되는 생각이에요.
- 빨강머리 앤 (L.M. Montgomery)


한 해의 마지막, 레온을 향한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험난한 길을 함께 지나오며 돈독해진 작은 순례자 무리와 새벽녘 다같이 떠나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키가 크고 목폴라를 입은 프랑스 청년이 무리에 섞여 옆에서 말을 걸어왔습니다. 어젯밤 처음 만난 아일란이라는 이름의 친구는 순례길에서 보기 드문, 저와 같은 20대 초반의 순례객이었습니다.


아일란은 순례길에서 처음 만난 제 남자 또래였습니다. 길을 걸으며 많이 친해져서 다른 누나들이 너희들 왜 이렇게 아련하냐며 놀렸던 기억도 문득 생각납니다.



로그로뇨에서 순례를 계속할지 고민하던 모습이 무색할 만큼 앤 누나는 힘차게 앞서 나갔습니다. 게리가 그 모습을 보고는 “Look at Anne go!” 하고 외쳤고 앤 누나는 팔을 흔들며 응답했습니다.



Villalbilla (301.2km ~ 307.4 km)



아일란, 게리와 셋이 나란히 걸을 때 작은 성당 하나를 만났습니다. 꼭대기나 십자가 위에 새들이 튼 둥지는 순례길에서 쉼과 귀소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아일란은 무려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서부터 걸어왔다고 합니다. 몽팰리에부터 생장까지 500km가 넘는 거리라든 걸 생각하면 이미 800km 넘게 걸은 셈입니다.



남자들끼리 남게 되니 힘든 것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재미있고 웃긴 대화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일란은 프랑스인 특유의 어조로 제게 귓속말하듯 게리를 놀리곤 했고, 게리는 꼬맹이 너를 땅에 처박아주겠다는 미국식 농담으로 웃으며 받아쳤습니다.


게리가 미국에선 플로리다에 글래머러스한 여성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아일란과 함께 플로리다를 가는 것은 아직 우리의 버킷리스트로 남아있습니다. 그런 다국적 티키타카가 너무 재미있었던 길입니다.



Rabé de las Calzadas

(307.4 km ~ 311.0 km)



마을에 도착하자 아일란이 갑자기 집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밥을 얻어먹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참 특이한 친구입니다.


저게 유럽의 자유로운 감성인가 싶었는데 뒤따라오던 스페인 사람인 베드로가 제게 아일란이 뭘 하는 건지 묻더니 대답을 듣고 황당해했습니다. 반응을 보니 유럽에서도 흔한 행동은 아닌 듯합니다.


그래도 이제 막 성인이 된 친구가 이 먼 길까지 혼자 걸어와 보여주는 행동이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로그로뇨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길을 혼자 걸었는데 유독 즐겁고 맑았던 길입니다. 이틀 전까지 폭우를 뚫으며 고통스럽고 험난한 길을 걸었던 것이 무색했습니다.



Hornillos del Camino

(311.0 km ~ 321.2 km)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크리스티안과 호안이 먼저 와 있었고, 곧 앤 누나와 유진 씨도 도착했습니다.


침대에 누워 쉬고 있는데 아일란이 먹고 있던 작은 초코바를 쪼개 제게 건넸습니다. 벌써 콩 한쪽도 나눠 먹는 사이가 된 것만 같아 괜스레 고마웠습니다.



작은 마을의 알베르게에서 특별한 인연을 함께해 온 순례자들과 2022년의 마지막 밤을 맞이했습니다.


함께 호스트가 차려준 저녁 식사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일란이 갑자기 일어나 설거지를 했는데 호스트 대신 잡일을 하고 숙박비를 면제받았다고 합니다.



식사 후엔 따뜻한 거실에서 하루 종일 아일란과 어울렸습니다. 순례길에서 처음 만난 또래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매우 반가웠습니다.


프랑스와 한국 이야기를 나누며 아일란은 마르세유가 진짜 명소라고 알려주고, 담소 앙젤이라는 가수가 요즘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있다며 노래를 들려줬습니다. 알베르게에 놓인 체스를 두다가 여유롭게 이기던 중 방심한 사이 역전을 당했습니다. 멀리서 게리가 이겼냐고 묻자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20대 초반 나이에 순례길을 찾는 사람은 특히나 겨울철엔 매우 드물었기에 더 반갑고 즐겁게 느껴졌습니다.



아일란은 이듬해 여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중국을 거쳐 저를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넘어왔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샀다는 보드카를 인천 앞바다를 보며 마시고 한국에서 또 한 번의 여행을 함께했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음에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함께 국토종주를 하자던 약속도 있었기에 언젠가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스페인에서는 12알의 포도를 먹으며 새해의 열두 달 동안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작은 마을의 알베르게 안에서 국적도 나이도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타국의 전통 속에서 새로운 해를 맞이합니다.


순례길에서 맞이한 새해는 지금껏 나를 스쳐갔던 사람들을 돌아보게 합니다. 오랜만에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이들과, 지금 이 순간 함께하지 못한 라스 형과 지 누나에게도 마음을 담아 새해 축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Hornillos del Camino - Castrojeriz

(2023.1.1)


난 항상 믿어왔고 여전히 믿는다. 우리에게 어떤 행운이나 불운이 오든 우리는 항상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 청춘의 여행 (Hermann Hesse)


어젯밤 새벽까지 아일란과 어울리다 늦잠을 자버렸고 눈을 떠보니 다른 순례자들은 모두 떠난 뒤였습니다.


아일란과 둘이 새로운 길을 함께 나섰고 하루 종일 걸으며 20대 초반의 청춘들이 할법한 꿈과 미래, 고민에 대한 이야기들을 떠들었습니다.


아일란은 진로를 정하기에 앞서 더 넓은 세상을 먼저 경험해보고 싶다고 하며, 순례가 끝나면 영국에서 한 달간 어학연수를 하며 영어를 배울 계획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선 쉽게 상상하기 힘든 그런 사고방식이 오랜 입시를 한 제게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늘 같은 학교, 같은 문화, 같은 나라 등 일정한 범위 안의 사람들과만 인연을 맺으며 지내왔습니다. 하지만 아일란은 그런 틀을 벗어난 친구였습니다.


오랜만에 또래 친구와 단둘이 걷다 보니 유치하리만큼 들떴습니다. 원피스와 나루토 같은 소년 만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신나게 걷기도 하고 별것 아닌 일에도 눈물 날 만큼 웃으며 발걸음도 몹시 가벼웠습니다



Castrojeriz (321.2km ~ 341.8km)



카스트로헤리츠에 도착하고 아일란과는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부르고스에서부터 왼쪽 발목 상태가 심각하게 나빠진 저는 이곳에 머물기로 했지만 아일란은 일정상 훨씬 더 먼 곳까지 가야 했습니다.


아일란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멀리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더니 파스와 약들을 건넸습니다.


아일란은 제 발목의 상태를 알고 있었고 그게 마음에 걸렸던 건지 본인이 가지고 있던 약을 모두 건네주었습니다. 순례길에서의 아일란과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알베르게에 들어서자 이전에 만났던 그라뇽 삼인조 중 한 명인 독일인 스테판이 혼자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두 친구들은 마드리드로 도망가고 혼자 순례길을 끝까지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새해를 함께 보낸 사람들 중 카스트로해리츠는 거리가 그리 길지 않아서인지 컨디션이 좋지 않던 게리와 베드로, 유진 씨 셋 밖에는 머물지 않았습니다.



마을 뒤편 언덕 위에는 중세 성곽의 폐허가 남아 있어 메세타 평원의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았습니다.


베드로, 게리, 유진 씨와 함께 카스트로 헤리츠의 전통 바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순례길에 모인 세계 각국의 순례자들은 그만큼 삶의 배경도 다양합니다.


베드로는 여행 블로거였습니다. 물가가 비싼 곳에 장기간 머물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미얀마, 네팔, 인도 같이 물가가 싼 곳을 주로 여행해 왔다 합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고 유심히 바라보았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들려준 삶의 이야기는 정형화된 삶의 방식 밖에 알지 못했던 제게 매우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베드로가 직접 제 노트에 적어준 스페인에서 가봐야 할 도시들. 아일란에게 추천받은 프랑스 명소와 함께 언젠가 유럽을 다시 방문해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Castrojeriz - Frómista (2023.1.2)


젊음에는 성찰의 기회가 거의 없어, 경험을 통해서만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 - 젊음의 방랑 (Johann Wolfgang von Goethe)


광활한 메세타의 이번 동행은 배드로와 하루 종일 둘이 함께했습니다. 여행 블로거답게 배드로는 스페인과 순례길의 역사에 대해 굉장히 해박했습니다.



베드로는 순례길에서 벗어난 곳까지 저를 데려가 숨은 장소들을 알려주고 그곳의 역사적 배경을 소개해줬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그가 실제로 어린 시절 살았던 마을도 있었는데 그의 추억도 함께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 미얀마나 네팔 등 제게는 낯설었고 잘 알지 못했던 나라들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그곳에서 겪은 여러 흥미로운 에피소드들과 감상도 들려주었습니다.



Mostelares (341.8km ~ 345.3 km)



모스텔라레스 고개를 넘어 정상에 도착하니 갑자기 베드로가 저를 붙잡아 멈춰 세웠습니다. 뒤를 바라보니 광활한 메세타 평원이 넓게 퍼져있었습니다.


잠시 멈춰 베드로와 함께 앉아 광활한 평원과 화창하게 떠오르는 해를 함께 바라보았습니다. 황혼이 저물던 용서의 언덕과는 다른 활기찬 아름다움이었습니다.



Boadilla (345.3km ~ 361.5 km)



지나치는 마을마다 베드로는 오래된 흔적들로 저를 데려왔습니다. 외딴곳에 떨어진 반원형 건물에 들어서자 배드로는 이게 무슨 건물이었을 것 같은지 물었습니다.


저는 우물이나 수로일 것이라 대답했지만 정답은 빨래터였습니다. 지붕 하나 없이 열려 있는 이 석조 공간은 빗물과 우물물을 함께 받아 중세부터 근대 초기까지 여성들이 모여 세탁을 하던 공동 장소였다 합니다.


베드로는 이처럼 마을 곳곳에 담긴 역사와 의미를 직접 자세하게 설명해 주며 단지 걷기만 할 때는 생각해볼 수도 없었던 순례길의 깊이를 일깨워주었습니다.



Canal de Castilla (361.5 km ~ 363.5 km)



거대한 운하의 다리에서 베드로는 저를 운하의 하부로 데려갔습니다. 그는 지금은 빌바오에 살고 있지만 어린 시절을 이 운하 근처 마을인 에레라 데 피수에르가에서 자라왔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운하를 따라 걷는 내내 그의 아버지와 함께 이곳에 자주 왔던 추억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곳에 살아온 베드로와 함께 걸으며 그의 추억을 듣는 동안 순례길은 더 이상 낯선 이국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삶이 스며든 살아있는 공간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이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Frómista (363.5 km ~ 368.8 km)



마침내 프로미스타에 도착했습니다. 베드로에게 배가 고프다고 하자 그는 저를 현지 맛집에 데려가준 후 영업 중인 알베르게를 찾으러 갔습니다.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성당을 둘러본 뒤 유진 씨와 베드로, 게리와 저녁을 함께했습니다. 순례길 중 가장 술을 많이 마신 밤이었습니다.


식당을 나서자 취기가 오른 베드로가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대마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고, 심지어 제게도 권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마를 피면 감옥에 간다고 하자 베드로와 게리가 오히려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제가 신경이 쓰였는지 숙소로 돌아온 베드로는 책상에 앉아 대마 잎을 보여주며 식당에서도 옆자리 사람이 자연스럽게 피울 정도로 이곳에선 흔한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생각만큼 해롭지 않고 담배와 달리 중독성도 없다고 차분히 부연했습니다.


그래도 좁은 숙소에 대마 냄새가 퍼졌기에 그의 다른 문화권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맡아보는 미묘한 대마 향과 함께 밤을 보냈습니다.



Frómista - Carrión de los Condes

(2022.1.3)


친구가 서로에게 미치는 좋은 영향은 너무나 강력해서 우리의 영혼을 형성하고 우리를 그들 자신으로 변화시킨다. - 고백록 (Saint Augustine)


아침이 밝자 베드로는 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합니다. 스페인 현지인인 그에게 순례길은 완주해야 할 목표라기보단 잠깐 들르는 산책에 가까웠을 겁니다.


베드로는 제 어깨를 두드리며 남은 여정을 응원해 주었습니다. 베드로가 마음에 들었는지 게리는 이후에도 계속 그를 언급하며 그리워했습니다.



프로미스타를 나서니 바로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안개가 뒤덮고 있었습니다. 희뿌연 안갯속을 혼자 걷다 멀리서 스테판의 실루엣을 발견했습니다.


오늘 함께 길을 걸을 동행은 스물아홉의 독일인, 스태판입니다. 스테판은 오래전 그라뇽에서 처음 마주쳤지만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는 키가 굉장히 컸고 몹시 차분한 성격이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데다 길 표시마저 불친절해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함께 멈춰 서서 고민하고 다시 걷기를 반복했습니다. 어느 지점에선 완전히 길을 잃어 한참을 헤매기도 했습니다.


스테판은 뒤에서 올 유진을 위해 표시를 남기자고 제안했습니다. 헷갈리는 갈림길마다 저는 스테판과 함께 돌멩이를 쌓아 작은 이정표를 만들었습니다.



Villalcázar de Sirga

(368.8km ~ 382.2km)



스테판은 특이한 친구였습니다. 매일 밤 일기를 쓰고 새벽이면 조용히 혼자 명상을 합니다. 채식주의자이고, 스마트폰 대신 2G 폰을 사용합니다. 게리는 그를 보고 스물아홉 치고 믿기지 않을 만큼 성숙하다 말했습니다.


그날의 안개 낀 길도 어쩐지 스테판을 닮았었습니다. 희뿌연 안개 탓인지 고요하고 차분하게 흘러갔습니다.


스테판은 자신에 대해선 많이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모습이 이미 그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안갯속을 걸으며 그 차분함이 제게도 조금 스며들길 바랐습니다.



Carrión de los Condes

(382.2km ~ 387.2km)



길이 단일 평지인 덕분에 매번 오후 늦게 도착하던 다른 날들과 달리 오늘은 점심 무렵 일찍 도착했습니다.


까리온의 알베르게는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곳입니다. 따스하고 경건한 분위기로 들어서는데 방에 들어가자마자 어딘지 군대 막사를 닮아 PTSD가 왔습니다.



알베르게에서 짐을 정리하던 중,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깜짝 놀랐습니다. 생장에서 첫날 아침을 함께한 비랄을 약 20일 만에 재회한 것입니다.


그동안 서울에서 부산을 훌쩍 넘어서는 거리를 이미 지나왔던 후입니다. 그동안 크리스티안이나 유진 씨를 통해 비랄이 어디쯤 있는지 소식만 풍문처럼 듣기만 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났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비랄은 생장에서 유진 씨와 함께 출발한 동기답게 재회를 무척 반가워했고, 둘 사이가 굉장히 돈독해 보였습니다. 저녁에는 비랄, 게리, 유진 씨와 함께 성당을 둘러보고 레스토랑으로 향했습니다.


누군가와 헤어지고 예상치 못하게 다시 만나는 반가움 또한 순례길이 주는 특별한 즐거움입니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 한국인 여자친구가 있어 한국어를 조금 아는 비랄이 “배고파, very 배고파! “를 연신 외쳐 웃음이 터졌습니다. 비랄은 식당에서 제 신발을 지적했습니다. 저는 등산화도 러닝화도 아닌 일상에서 신던 굽 있는 청키화로 400km를 넘게 걸어왔습니다.


부르고스부터 악화된 왼쪽 발목이 결국 그 무리를 견디지 못한 것 같습니다. 게리는 제 발목을 보고 놀라며 레온에 도착하면 꼭 병원에 가보라고 당부했습니다.


저녁 식사 중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터부시되는 주제이며 동성 결혼도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자 게리는 어이없다는 듯 웃고 비랄은 열변을 토했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것도 아닌데 왜 국가에서 이를 금지해야 하냐고.


캐나다와 미국에서 온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한국이 국제적 관점에선 꽤나 보수적인 사회임을 실감했습니다.



Carrión de los Condes - Sahagún

(2022.1.4)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그것에서 등을 돌려야 한다. 사람들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는 한동안 그들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 시지프 신화 (Albert Camus)


귀국일이 타이트해 일정이 넉넉하지 않았던 저는 사하곤까지 꽤 먼 거리를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로그로뇨에 이어 두 번째로 40km가 넘는 길을 걷게 된 날입니다.



안개 가득한 길에서 게리, 스테판, 유진 씨와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안개 자욱한 길을 향해 오랜만에 홀로 길고 고독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비랄을 제외한 이들과는 이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순례자들은 모두 각자만의 여정이 있었고, 순례길은 늘 새로운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곳이었습니다.



사하곤으로 가는 길은 제가 오기 전 상상했던 겨울 순례길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눈과 서리가 길을 뒤덮고 차갑고 청명한 공기가 뺨을 스칩니다. 숨을 내쉴 때면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습니다.



안개가 뒤덮은 일직선의 길이 아득히 이어졌습니다. 특유의 분위기와 끝없이 펼쳐진 직선 덕분에 혼자 오래 사색하고 성찰하며 걷기 좋은 길이었습니다.



Calzadilla de la Cueza

(387.2km ~ 404.2km)



17km가량의 기나긴 안갯길을 벗어나자 같은 날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른 날씨가 펼쳐졌습니다.


안개를 지나 맑은 하늘을 만나고 조만간 다시 안갯속으로 들어가기도 했는데 이러한 급격한 환경 변화의 연속이 이날 얼마나 먼 거리를 걸었는지 체감하게 합니다.



Ledigos (404.2km ~ 410.2km)



레디고스의 거리에서 새로운 순례자를 만났습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온 밀란입니다. 그도 마트를 찾고 있었는지 외곽에서 몇 번 스쳐 지나친 끝에 마트 앞에서 극적으로 마주쳐 인사를 나눴습니다.


밀란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해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이후 밀란을 잊을 수 없는 동행자 중 하나로 만들게 됩니다.



Ermita de la Virgen del Puente

(410.2km ~ 425.8km)



사하군 근처에 도착했을 무렵 안개가 자욱이 깔린 몽환적인 성당을 마주쳤습니다. 해는 저물고 안개가 매우 짙어 현실이 아닌 꿈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체력은 한계여서 걷다 죽어 사후세계에 들어선 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몽롱했습니다.



Sahagun (425.8km ~ 428.8km)



아픈 발목을 끌고 오느라 우테르가 이후 처음으로 해가 완전히 진 늦은 밤에 간신히 사하군에 도착했습니다.


알베르게를 한참 동안 찾지 못해 주민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사하군의 알베르게는 커다란 중세 성당 건물 안이었습니다. 투박한 계단으로 연결된 2층이 통째로 순례자 숙소였습니다..


고작 6유로였던 사하군의 알베르게는 넓고 깔끔한 원목 인테리어가 좋았습니다. 처음 보는 할아버지 순례자 둘이 책상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배가 너무 고파 인사도 못 한 채 곧장 식당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 날 사하군의 레스토랑에서 허기지고 지친 상태에서 먹은 저녁은 순례길을 통틀어, 아니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맛있던 식사 중 하나였습니다. 새우 요리를 먹었는데 음식이 이렇게까지 맛있으면 천국이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드는구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니 1층에서 미사가 한창 끝나 많은 주민들이 예배당을 나오고 있었습니다. 숙소는 다락방 같은 형태라 미사나 종교 행사 등 소란스런 1층의 소리가 그대로 들려옵니다


상당 건물 안에 직접 머문다는 점도 이방인으로서 군중 속에서 느낀 고독한 감정도 홀로 고독하게 잠든 밤도 한참 전 아레에서 보낸 밤이 묘하게 떠올랐습니다.


발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는데, 특히 발목이 심각했습니다. 앞으로의 길에 대한 걱정으로 밤을 보냈습니다.



Sahagún - Reliegos (2022.1.6)


몸은 하난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 고린도전서 12:12–13



사하군의 맑은 아침은 안개와 어둠이 잔뜩 껴있던 전날 밤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흐린 날씨의 안갯길만 걷다 오랜만에 맑은 날씨에 홀로 길을 나서니 순례길 초반 부의 분위기가 떠올랐습니다.



카페나 식당이 없어 아침을 먹지 못했고 길이 유독 찾기 어려워 실제 거리보다 훨씬 더 많이 걸은 날입니다.


중간에 순례길을 놓쳐 차량이 빠르게 오가는 소음이 심한 도로변으로 한참을 걸었습니다. 차들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위협 속에서 걸었기에 순례길보다 거리는 짧았지만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유독 크게 다가왔습니다.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순례길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버렸습니다. 길을 되돌리려 애쓰는 중에 담장이 가로막고 있어 배낭을 던져 넘긴 뒤 담을 기어오르고 벌판을 넘어서야 다시 순례길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El Burgo Ranero (428.3km ~ 446.3km)



엘 부르고 라네로에서 밀란과 다시 마주쳤습니다. 그는 어제 비랄과 함께 모라티노스에서 묵었고 오늘은 이 마을에서 보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밀란은 알베르게를 찾으러 가고 저는 아침을 먹지 못해 배가 고파 식당을 찾아 한참 동안 마을을 헤맸습니다. 어디서도 문을 연 식당이나 마트를 찾을 수 없어 다음 마을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Bercianos (446.3km ~ 454.3km)



배가 고파 너무 힘이 들었지만 다음 마을인 베르시아노스에서도 끝내 영업 중인 식당이나 마트 하나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순례길에서 처음으로 단 한 끼도 먹지 못하고 하루 종일 걸어야 했던 날입니다.


도로변을 걷다 담을 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기에 허기와 피로가 더 서럽게 다가왔습니다. 울적한 마음으로 마을 한편 벤치에 앉아 가방 속 과자를 꺼내먹었습니다.


구석에서 과자를 먹고 있던 중 놀랍게도 밀란을 다시 만났습니다. 머물려고 했던 숙소에 대마를 피우는 순례자가 있어 다음 마을까지 걷기로 했다 합니다.


모라티노스에서 출발한 그에게 오늘 하루는 갑작스레 40km를 넘게 걸어야 하는 여정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는 많지 않았지만 밀란도 저도 몇 걸음 못 가 짧게 쉬기를 반복했습니다. 예상 못한 상황 때문에 남은 길은 비교도 안되게 벅차게 느껴졌습니다.


극심한 허기 속에 저는 이미 베르시아노스에서 더는 갈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고 있던 참입니다. 그런 순간에 뜻밖의 밀란과의 재회는 묘한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나란히 걷다가 멀어지고, 앞지르기도 뒤쳐지기도 하고 다시 마주쳐 함께 걷는 걸 반복하는 마지막 고행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의지가 되고 뭉클함이 생깁니다.



Reliegos (454.3km ~ 467.2km)



몇 번의 언덕을 넘으니 안개와 함께 갑자기 주변 분위기가 확 바뀌었습니다. 짙은 안갯속 석조 건물들이 모여있던 작은 마을, 렐리고스에 이르렀습니다.


알베르게에 안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번호로 전화를 걸어 호스트를 불렀고 한 명의 순례자가 더 올 것이라 전달했습니다. 조만간 밀란도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마트를 찾아갔더니 앞에서 자전거를 탄 외국인 한 명이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마트는 문이 닫혀 있었고 자연스레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청년의 이름은 제임스로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왔다고 합니다.


제임스는 아일란 이후 두 번째로 만난 또래 동성 친구입니다. 자전거로 하루 50~60km가량을 이동한다했고 오늘을 끝으로 다시 만날 일은 없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또 생각지도 못하게 비랄을 만나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그도 내일까지 레온으로 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알베르게에는 제임스, 밀란, 비랄, 저, 이름을 물어보지 못한 순례자 총 5명이 머물렀습니다.



Reliegos - León (2023.1.7)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쓸 때, 우리 주변의 모든 것도 더 나아진다. 이것이 연금술이 존재하는 이유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보물을 찾고, 그것을 발견하고, 그리고 예전의 삶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도록. 그게 연금술사들이 하는 일이다. - 연금술사 (Paulo Coelho)


마침내 대도시 레온을 향하는 날입니다. 렐리고스에서 조금 떨어진 만실라의 바로 아침을 먹으러 갔습니다.



Mansilla (467.2 km ~ 472.5 km)



든든한 아침을 먹고 출발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발목이었습니다. 욱신거리는 통증을 참으며 걸었는데 중간쯤 갑자기 차원이 다른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도저히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느껴 택시를 부르거나 버스라도 타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라 아픔을 참고 걸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비명과 신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걸었습니다.


레온 진입 전 KFC에서 발목을 부여잡고 홀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레온까지의 거리는 길지 않았지만 순례길 전체를 통틀어 가장 고통스러운 구간이었습니다.



León (472.5 km ~ 483.5 km)



레온은 여태 지나온 팜플로나, 로그로뇨, 부르고스를 능가하는 가장 큰 도시였습니다. 가우디의 흔적이 남은 고딕 건축물들이 곳곳에서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알베르게는 4인 1실에 전용 화장실을 갖춘 기숙사 형태였습니다. 뷔페식 조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과 엘리베이터까지 갖춘 호텔 같은 곳이었습니다.


전날 렐리고스에서 함께했던 이들이 제임스를 제외하고 그대로 제 룸메이트가 되었습니다. 제 방엔 밀란과 이름을 모르는 순례자가 이미 자리 잡고 있었는데 들어가자마자 따뜻하고 묵직한 악취가 풍겨왔습니다.


할 말을 잃고 1층 로비에서 기다리다가 지 누나, 앤 누나와 오랜만에 재회했습니다. 라스 형은 지 누나와 어제 시간을 보내고 다음 마을로 떠났다 합니다.



레온 시내 바닥에는 금속판 형태의 발자국 마크가 있는데, 수많은 이들이 지나갔다는 것을 기념하는 의미로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모두 이곳에 발을 맞대고 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저도 한 장 남겼습니다.



레온의 분위기 좋은 바에서 셋이 저녁을 먹었습니다. 와인을 마시며 각자만의 지나온 이야기를 떠들었습니다. 오르니오스에서 헤어진 후 앤 누나의 순례 이야기, 지 누나의 스페인 관광 이야기.


앤 누나는 크리스티안과 단 둘이 알베르게에 머물기도 하고 난로 앞에 매트리스를 끌고 와 머리를 맞대고 자며 친해진 계기 등 특별했던 에피소드들을 들려줬습니다.


각자만의 길을 걸어오다가,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저녁을 먹는 그 순간이 또 새삼 즐겁습니다.



오랜만의 소회를 풀며 술을 잔뜩 마시고 함께 불빛이 예쁜 레온의 밤거리를 활보했습니다. 시청사 근처에는 소규모 플리마켓·수공예품 판매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지 누나와 앤 누나가 제 방 냄새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며 잠시 들어왔다가 화들짝 놀라 달아났습니다. 지 누나는 향기 나는 화장품을 잔뜩 빌려줬습니다. 방에는 비랄도 이미 도착해 자고 있었습니다.


레온에서의 밤은 술기운과 함께 찾아온 묘한 들뜸 속에 순례길에서 지나온 여러 인연들이 밤새 떠올랐습니다. 산티아고가 가까워질수록 고행이 끝난다는 안도보다는 끝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커져만 갑니다.






내가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인연들은 멀리서 바라보면 어느 단 하나도 우연함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만남은 내 안 깊은 곳에서 시작되었을 의식으로부터, 아마 그들 또한 나를 그렇게 마주한 것이겠지요.


그리고 여전히 부족한 내 곁에 당신 같은 좋은 사람이 남아있다는 건 그나마 내가 애써온 어떤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온 시간들은 그제서야 비로소 이유가 됩니다.


의식적인 노력 속에 우연이 아닌 만남으로 가치 있는 인연을 더 마주할 수 있기를. 그리고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오래도록 좋은 인연 곁에 머무를 수 있기를.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남아 언젠가 그날의 만남들 또한 참 다행이었다고 말해볼 수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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