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순례의 문턱, 폭우 치는 오카 산맥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if a manor of thy friend’s or of thine own were;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어떤 사람도 그 혼자서는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다.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은 그만큼 작아진다. 높은 곶이 사라져도, 혹은 너나 친구의 영지가 사라져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날 줄어들게 한다. 나는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는지 알려 하지 마라; 그 종은 바로 너를 위해 울리고 있다.
- John Donne, 『Meditation XVII (긴급 상황에 대한 묵상)』
끝이 보이지 않는 메세타(Meseta) 평원과 고딕 대성당의 첨탑(Flèche)이 기다리는 부르고스(Burgos)로의 길, 유럽 북서부를 휩쓴 겨울 장마가 쏟아지고 저는 전례없던 가장 험하고 고된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발에는 물집이 터지고 신발 속 스며든 빗물이 상처를 적실 때마다 걸음은 살이 벗겨지는 듯한 고통으로 되살아납니다. 비가 유독 차갑게 쏟아지던 날, 한국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누구도 혼자서는 온전한 섬이 아니다. 차가운 비와 진흙길 속에서 그 종이 나에게 울린 시점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여 지금껏 노크하고 숨결 불어넣고 빛을 비추며 고치려고만 하셨으니, 제가 다시 일어서려면 저를 쓰러뜨리시고 당신의 전능하신 힘으로 깨부수고 휘몰아치고 불살라 새롭게 빚으소서 - 신성 소네트 XIV (John Donne)
로그로뇨의 번화한 거리를 지나 푸에르타 델 레벨린이라는 고풍스러운 돌문이 나타납니다. 그 문을 통과해 15분쯤 걸으면 산 미겔 공원이 나옵니다.
순례길의 풍경은 주로 황토색 흙길과 녹색 들판으로 이어집니다. 산 미겔 공원은 전혀 다른 푸른빛이 펼쳐졌습니다. 그 선명한 색감이 색다름으로 다가왔습니다.
길을 걷다 청설모 한 마리를 구경하고 있는데 근처에 산책 중이던 스페인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와 먹이를 쥐어주셨습니다. 아저씨는 “Foto, foto!”라고 하며 웃었고 먹이를 내밀자 청설모가 망설이다 다가왔습니다. 앞발로 먹이를 움켜쥐고 갉아먹는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북서부 유럽의 겨울철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전까진 대부분 맑은 날씨였지만 이를 기점으로 간헐적인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았습니다. 12월부터 2월까지 서유럽은 북대서양 저기압의 영향으로 월평균 15-20일 이상 장마가 지속됩니다. 이는 고된 겨울 순례를 더 극심한 비수기로 만든 이유입니다.
와이너리 근처에서 라스 형을 만났습니다. 지나가던 순례자들이 와인을 음미하며 휴식할 수 있는 곳이지만 겨울철이기 때문인지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로그로뇨에서 크리스마스를 함께했던 지 누나는 순례를 포기하고 세비야로 떠났고, 앤 누나도 순례를 이어가야할지 진지하게 고민 중인 상황이었습니다.
나바렛에 도착했을 무렵 뒤늦게 출발했을 앤 누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더이상 걸을 힘이 없어 오늘은 일단 나바렛에서 멈추고, 포기를 고민할거란 말이었습니다. 옷으로 가득 찬 배낭은 무겁고 겨울길은 쓸쓸합니다. 얼마 되지 않던 순례자들도 하나둘 길에서 사라집니다.
저도 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포기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분명 어떤 의미가 오랜 고행 끝에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그렇게 붙잡곤 했습니다.
라스 형과 둘이 나바렛의 타파스 바에서 점심과 맥주를 먹었습니다. 스페인 특유의 따뜻한 타파스와 시원한 맥주 한 잔은 남은 길을 걸어갈 기력을 채워줍니다.
이어서 나헤라로 이어지는 길은 드넓은 포도밭 사이를 가로지릅니다. 중간엔 한 갈래 우회로가 있고 그 길을 따라가면 벤토사라는 작은 마을을 들를 수 있습니다.
저는 방향을 틀어서 벤토사로 향했고 라스 형은 본래 경로로 걸어갔습니다. 굳이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한 건 작은 마을 하나 놓치고 싶지 않던 마음 때문입니다.
벤토사 루트에선 언덕 위 한복판에 있는 산 사투르니노 성당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정상에 오르면 포도밭과 붉은 지붕의 마을이 어우러진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성당 안에 들어가 보기 위해 갑자기 쏟아진 비를 맞으며 힘겹게 언덕을 올라갔지만 아쉽게 잠겨있었습니다.
벤토사의 바 앞에서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만났던 중국인 가족들을 오랜만에 다시 마주쳤습니다. 이후 길에서도 여러 번 다시 만나 서로를 응원했습니다.
건장한 성인 조차 주저앉는 이 장대한 길 위에서 어린아이와 노인의 손을 잡고 묵묵히 걸어가는 중국인 어머니의 모습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나헤라에 도착해 언덕길을 오를 때 야외에서 놀던 동네 아이들이 저를 보더니 “부엔 까미노!“하고 외쳤습니다. 순례길을 지나는 수많은 이들을 보며 자란 아이들은 응원하고 존중하는 법도 자연스레 배우는 듯합니다.
공립 알베르게는 모두 문을 닫았고 유일하게 열린 사립 알베르게에 들어섰습니다. 놀랍게도 앤 누나가 저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나바렛에 영업 중인 알베르게가 없어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고 마음이 꺾여 포기하려던 때, 나헤라까지 도착할 수 있던 자신을 보고 다시 걸을 용기를 얻었다 합니다.
방에 들어서니 미국인 순례자 한 분이 침대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옆방에는 벤토사에서 다시 만난 중국인 가족이 계셨고 잠시 뒤 저녁을 먹고 온 라스 형도 도착했습니다. 게리라는 이름의 이 미국인 아저씨, 앤 누나, 라스 형과 함께 한 방에서 머물렀습니다.
게리에게 함께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습니다. 앤 누나와 게리, 저는 식당을 찾아 마을 밖으로 나섰습니다. 아스케타에서 만난 자넷이 따뜻한 어머니 같은 분이라면, 게리는 든든하고 유쾌한 아버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게리는 양팔의 문신과 건장한 체격으로 첫인상은 다소 강렬했지만, 막상 이야기를 나누니 유쾌하고 배려가 많은 성격의 순례자였습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살며 파드레스 구단에서 일한다고 소개해주셨습니다.
게리는 생장에서 지 누나, 비랄과 함께 첫날을 보냈다고합니다. 저보다 하루 먼저 출발한 셈입니다. 앤 누나는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지만 특유의 적극적인 표정과 몸짓으로 외국인들과 능숙하게 소통했습니다. 그래서 인지 누나를 좋아하는 외국인 순례자들이 많았습니다.
맥주를 기울이며 웃고 떠든 바디랭귀지, 서툰 영어가 뒤섞인 식탁이 굉장히 즐겁고 유쾌했던 추억입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캔터베리를 향하여 밤이 되자 그 숙소에 스물아홉 명이 한 무리로 왔으니 다양한 사람들이 우연히 교제 안으로 모였고 그들은 모두 순례자였다, 캔터베리를 향해 가려는. 나는 그들 모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곧 그들 교제의 일원이 됐다. - 캔터베리 이야기 (Geoffrey Chaucer)
아침 어스름 속 나헤라 수도원의 고요를 뒤로하고 게리, 라스 형, 앤 누나와 함께 출발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대부분 홀로 길을 나섰지만, 이날은 전날 함께 머물렀던 이들과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게리는 특유의 유쾌한 입담과 중년의 연륜이 묻어나는 미국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긴 거리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만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웃고 이야기하며 걸었습니다.
각자가 지나온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와 인생에 대한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오갔습니다. 누구는 가족의 이야기, 누구는 순례길의 동기에 대해 털어놓았고 그때 나눈 대화들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확실히 혼자 걸을 때보다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걷는 길은 훨씬 덜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아소프라의 식당에서 넷이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대충 챙겨 온 샌드위치나 타파스가 아닌 오랜만에 먹을 수 있던 든든한 점심입니다. 게리는 미국 시민이지만 아일랜드 출신으로 어릴 때 이민을 왔다 합니다. 그래서인지 술을 몇 잔을 마셔도 전혀 끄떡이 없었습니다.
이후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로 이어지는 길은 메세타 지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구간입니다. 원래 드넓은 밀밭이 펼쳐진다고 하지만 겨울의 메세타는 나무 한 그루 없이 뻥 뚫린 황량한 벌판이었습니다.
라스 형, 앤 누나, 게리는 모두 산토 도밍고에 머물고, 저는 고민 끝에 이들과 작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함께했던 시간들도 즐거웠지만 이대로 같은 사람들과만 걸으면 낯선 이들과 마주칠 때 설렘과 용기를 점점 잃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순례길에서의 만남은 늘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이고 낯선 이들과 만나는 하루가 이 길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였습니다.
함께 걷던 이들과 헤어지고 혼자가 되니 급격히 힘들어졌습니다. 함께일 땐 대화가 피로를 분산시켰지만 혼자가 되는 순간 감각은 다시 내면으로 향합니다.
라 리오하 끝자락 소규모 농촌 마을 그라뇽에 도착했습니다. 마을 중앙엔 고풍스럽고 투박한 모양의 교회가 있습니다. 오늘 알베르게는 바로 이 교회 내부입니다.
교회 옆 부속건물이 아니라 14세기에 지어진 교회 본당, 그 자체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습니다. 순례자들은 오래된 본당의 다락방에 이불을 펼치고 잠을 청합니다.
자원봉사자들의 기부로 운영되는 이곳에선 식사 준비, 식탁 정리, 설거지까지. 순례자들은 각자의 역할을 맡습니다. 낯선 이들과 함께한 소박한 노동도 묘하게 따뜻하고 의미 있는 순간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이날 겨울 치고는 꽤 많은 순례자들이 머물렀습니다. 중국인 가족, 푸엔테 라 레이나 이후 오랜만에 다시 만난 크리스티안과 호안, 그리고 미국인, 오스트리아인, 독일인으로 구성된 처음 보는 삼인조 무리까지.
새로운 한국인 순례자도 만났습니다. 영상 강사인 30대 여성 유진 씨로, 저보다 4일 늦게 출발했고 오랜만에 비랄의 근황을 들을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비랄은 유진 씨와 다른 20대 초반 여학생이 도착했을 무렵에야 겨우 짐을 찾아 생장에서 함께 출발을 했다합니다.
식사를 마치면 불이 꺼진 성당 본당으로 이동해 2층 합창석에 둘러앉아 촛불 명상을 합니다. 작은 촛불을 들고 침묵 속에서 짧은 묵상과 성경 낭독이 이어집니다.
명상이 끝나고 성당 전체에 불이 켜지는 순간, 2층에서 내려다본 본당의 전경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벅찼습니다. 탐방 중에는 오스트리아인 마누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졌습니다.
성당을 돌던 중, 중국인 아주머니가 설거지를 하느라 함께 오지 못했다는 게 떠올랐습니다. 알베르게의 주방으로 돌아가 본당에 있는 아이들에게 가라며 남은 정리를 대신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고맙다며 인사하시는 아주머니의 얼굴에 뿌듯했습니다.
절 시간이 되면 중세 시대처럼 다락방 위에 얇은 매트리스 하나씩을 깔고 그대로 눕습니다. 사적인 공간도 없고 숨소리와 뒤척임까지 그대로 전해지는 구조이지만, 그 단출함 속에서 오히려 더 진한 감각이 남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중국인 여자 아이가 한국 문화를 좀 아는지 제게 오빠라고 부르며 다가왔습니다. 안에 있는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중국,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미국, 한국. 다양한 국적의 순례자들이 이 비좁은 교회 다락방에 옹기종기 모여 웃고 이야기하다가 하나둘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우리 모두 여기서 함께 느꼈던 좋은 순간을 결코 잊지 말자, 우리를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선하고 친절한 감정으로 하나 된 순간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Fyodor Dostoevsky)
오늘은 유진 씨와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걷는 동안 더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유진 씨는 10년 전에 처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그 경험이 인생에서 큰 의미로 남아 10년마다 같은 길을 다시 걷기로 다짐했고, 이번이 그 약속을 지킨 두 번째 순례인 셈입니다.
유진 씨는 비랄, 한국인 여학생과 함께 걸어온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또래이기도 하고 닮은 점이 많아 언젠가 길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궁금했습니다.
집집마다 그려진 벽화가 인상적인 마을. 그림에 담긴 의미를 상상하며 걷다 보니 마을 전체가 이야기로 가득 찬 한 권의 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유진 씨와 도착한 빌라프랑카의 알베르게엔 호안과 크리스티안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보는 한국인이 나타났습니다. 유진 씨가 말했던 제 또래 여학생 다현 씨였습니다. 유진 씨와 다현 씨는 서로를 알아보자 소리를 지르며 반겼습니다.
곧이어 라스 형과 앤 누나도 도착해 깜짝 놀랐습니다. 산토도밍고 이후 일반적인 루트는 벨로라도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게리는 벨로라도에 혼자 머물고 있다는데 라스 형과 앤 누나는 그를 두고 온 것에 마음이 쓰이는 듯 했습니다. 이어서 그라뇽에서 봤던 3인조도 도착했습니다. 미국인 쿠퍼의 직업은 PD로 한국 드라마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식사는 알베르게 식당에서 모두 함께했습니다. 순례길 초반엔 혼자 밥을 지어 먹고 잠드는 날이 대부분이었지만, 어느새 더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절망에는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완전한 우울에서 낙담으로 낙담에서 고뇌로 고뇌에서 우수로 올라간다. 우수는 고통이 어두운 기쁨으로 변하는 황혼의 상태다. - 레미제라블 (Victor Hugo)
지독한 비와 거센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도 간헐적인 비가 내렸지만, 이날은 아예 차원이 달랐습니다. 폭우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고 바람은 차갑고 강하게 불어댑니다. 하필 또 이날은 몬테스 오카의 가파른 오르막까지 올라야 했습니다.
빌라프랑카에서 어렵게 발걸음을 내딘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으로 소식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이미 신체적 한계에 다다른 몸으로 비바람 속 산길을 오르는 것은 고문에 가까웠습니다. 그 순간, 갑작스러운 소식은 마음마저 무너뜨렸습니다.
더 이상 걸을 의지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당장이라도 어딘가에 주저앉아 쉬고 싶었지만 겨울 순례길은 그런 여유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문을 연 숙소를 찾기 위해 억지로 앞으로만 가야 했습니다.
항상 따스함만이 가득할 순 없나 봅니다. 이 날은 지칠대로 지친 육체와 가라앉은 상념으로 가득했습니다.
저는 산길 중턱의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었던 탓에 다른 일행들과는 많이 뒤처져 있었습니다. 제가 아헤스에 도착했을 무렵, 전날 함께 머물렀던 모든 순례자들은 이미 다음 마을인 아테푸레르카로 떠난 뒤였습니다.
작은 마을의 적막한 거리를 걸으며 문이 열린 알베르게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또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견뎌야 했지만 더이상 걷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풍성한 만찬과 포도주의 화기애애한 저녁이 불과 어제 밤이었는데 비에 흠뻑 젖은 채 낯선 현지 주민들 사이로 혼자 테이블에 앉아 조촐한 식사를 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이어질 장마, 한계에 이른 채력, 심란한 마음. 이 길을 계속 걸어야 할 의미도 희미했습니다. 그렇게 홀로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마음이 꺾여가고 있을 때 누군가 갑자기 뒤에서 제 어깨를 붙잡았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어젯밤 메시지로 작별 인사까지 나눴던 게리였습니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가, 비에 흠뻑 젖은 채 환하게 웃으며 서 있었습니다.
벨로라도는 여기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몸 상태도 좋지 않던 그가 폭우 속에 여기까지 올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철저히 홀로 남겨질거라 생각한 순간에, 극적일 만큼 그가 반가웠습니다.
게리는 함께 밥을 먹으며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라스 형이 게리의 우비가 망가진 걸 알고 길목에 여분의 우비를 그를 위해 놔두고 간 것이었습니다.
그 작은 배려가 없었다면 그가 이 긴 폭우를 뚫고 제가 있는 아헤스까진 절대 올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의 사소한 배려가 다른 이의 위로가 되고, 그렇게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를 붙잡아주고 있었습니다.
이날 알베르게에는 저와 게리 둘 만이 머물렀습니다. 빨래를 하려 했지만 현금이 없던 제게 게리는 거리낌 없이 10유로를 내밀었습니다. 불 꺼진 방, 침대에 누운 채 난로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축축한 추위에도 난로의 온기는 흩어지고, 같은 길을 걷는 이와 나눈 말들은 예상치 못한 위로였습니다.
둘이 하나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 전도서 4:9-10
게리와 함께 아헤스를 나설 때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둠이 짙었습니다. 그 와중에 비바람은 거세게 몰아치고 우리는 길을 잘못 들어 어쩔 수 없이 기나 긴 차도를 따라 걸었습니다.
어둠 속 차도 위, 우비가 바람에 뒤틀릴 때면 서로의 옷을 잡아주며 걸었습니다. 게리의 손전등이 앞길을 비추고 그 작은 빛에 의지하며 발을 내디뎠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과 세차게 부는 비바람, 함께 의지하며 길을 헤쳐나가던 그 순간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어제만큼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핸드폰을 꺼낼 수조차 없을 정도여서 그날의 기억을 담은 사진도 몇 장 있지 않습니다. 만약 게리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저는 아마 부르고스까지 결코 이르지 못했을 겁니다.
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비바람이 거셀 땐, 근처 성당에 몸을 피하고 휴식을 취하곤 했습니다. 거친 바깥 날씨와 달리 교회 안은 은은한 조명과 평온한 분위기 덕분에 마치 성스러운 피난처처럼 느껴졌습니다.
로그로뇨 이후 거센 비바람 속에 펼쳐진 끝없는 길을 지나, 마침내 부르고스 대성당의 첨탑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속옷까지 젖은 몸, 진흙물로 가득 찬 신발.
게리와 저는 어느 순간 말도 없이 서로의 걸음에 맞춰 걸으며 우비를 고쳐주고 등을 두드려주곤했습니다.
비에 젖은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회색빛 하늘 아래 웅장하게 펼쳐졌습니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부르고스 거리로 들어선 순간 내가 정말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실감과 잠시 말문이 막힐 정도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부르고스에서 그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던 순례자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크리스티안과 호안, 대학생 3인조, 앤 누나, 중국인 가족, 유진 씨, 세비야를 여행하다온 지 누나까지.
처음 보는 스페인 아저씨와 프랑스 청년도 있었습니다. 라스 형은 먼저 다음 마을로 떠나있었습니다. 대도시의 큰 알베르게는 공간이 넉넉했지만, 고난을 함께 해치며 돈독해진 게리와 전 2층 침대를 나눠 썼습니다.
알베르게에서 시간을 보내다 저녁에는 게리, 지 누나와 함께 성당을 구경했습니다. 성당 안의 정교하고 웅장한 내부를 감탄을 하며 보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순례길은 늘 평온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 시련의 순간들이 때로 혼자선 결코 버티기 어려울 만큼 무겁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저를, 아니 우리 모두를 일으켜 세운 건 다름 아닌 함께라는 여운이었을 겁니다.
이 길이 결국엔 혼자의 것처럼 보여도 실은 수없이 많은 인연과 만남 위에 놓여 있다는 걸. 사소한 응원과 말 한마디, 짧게 남겼던 글귀, 스쳐갔던 작은 순간들마저 우리 삶의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되어줌을 떠올립니다.
누군가가 혹은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 버린 것들도 어느 순간 나의 혹은 누군가의 삶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마주치는 어떤 인연도 소중히 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짧은 인사든 긴 동행이든 스쳐가는 순간이든.